발각된 현장…‘제주 예비 검속’ 실체를 쫓다
[KBS 제주] [앵커]
제주 4·3 75주년인 올해는 6·25전쟁이 멈춘 지 70주년이 되는 해입니다.
6·25전쟁 직후 제주에선 4·3과 관련됐단 이유로 또다시 양민 학살이 자행됐는데요.
절대 극비로 진행된 이 예비검속의 실체를 3차례에 걸쳐 조명해봅니다.
첫 순서는 섯알오름 학살 사건과 인생을 바쳐 사건의 실체를 밝혀낸 유족의 이야깁니다.
안서연·고진현 기자입니다.
[리포트]
1950년 새벽 섯알오름으로 가는 길, 고무신 여러 개가 떨어져 있습니다.
주변에선 콩을 볶는 듯한 총소리가 퍼졌습니다.
[이경익/모슬포경찰서 예비검속자 유족/1999년 : "걸어올 때 본 영감 말이 고개도 못 들게 하더라는 거야. 한 15분쯤 있으니까 콩 볶는 소리가 크게 나더라. 굉장히 한참 났다. 필경 이거는 창고에 있던 사람들 아니냐."]
6·25 전쟁이 발발하자 인민군과 동조할 우려가 있다며 창고에 끌려갔던 이른바 예비검속자들.
총소리가 났던 탄약고 터에서 이들은 주검으로 발견됐습니다.
하지만 접근이 금지되면서 6년이 지나서야 수습할 수 있었습니다.
억울한 죽음을 위로하기 위해 위령비를 세웠지만 군사 정권이 들어서면서 훼손됐습니다.
왜 이토록 은폐하려 했던 걸까.
예비검속은 대통령이 공표하지 말라고 지시할 정도로 극비로 진행됐습니다.
학살의 참상을 알린 건 한 유족의 집념이었습니다.
3살 때 아버지를 잃고 연좌제 때문에 미국으로 망명한 이도영 박사.
그는 1997년부터 2012년 세상을 떠나기 전까지 미국과 한국을 오가며 예비검속을 추적했습니다.
KBS가 입수한 이 박사의 일기장과 영상엔 한 맺힌 그의 목소리가 고스란히 담겼습니다.
["1997년 12월 13일 악마의 손길이 할퀴고 간 생채기를 들여다보고 있노라니, 그 아비규환의 4·3, 그리고 6·25 직후의 검속령 장면, 쫓고 쫓기는 그리고 동족이 동족을 무참하게 죽이는 살인 광경이 파노라마처럼 나의 뇌리에 전개되어갔다."]
일기장엔 경찰 공문서들을 입수하게 된 경위부터 증언자들과 나눈 대화가 기록됐습니다.
미국 국립문서보관소에 살다시피 한 그는 섯알오름 학살 사흘 전 제주에 1,120명이 분산 수감됐다는 미국 비밀문서를 찾아냈습니다.
대전형무소 정치범 1,800명 처형 사진을 발굴한 것도 그였습니다.
이뿐만 아니라 모슬포에 주둔했던 해병대 지휘관을 직접 찾아가기도 했습니다.
[이도영·당시 지휘관 김○○/2001년 : "(전쟁 때 위급한 상황에서 일들을 하다 보면 잘못된 일도 많았겠죠. 지금 이걸 다 따져서 어떻게 하시겠냐는 거예요. 그렇잖아요.) 장군님 아버님이 억울하게 죽었으면 누가 와서 예를 들어서 갑자기 칼로 찔러서 죽였다 하면 밝히지 않으시겠습니까? 사실을 밝히지 않겠습니까?"]
이 울분은 '죽음의 예비검속'이라는 저서로 남아 4·3 진상조사보고서에서 진실을 규명하는데 인용됐습니다.
[故 이도영 박사/2001년 : "이거는 경찰 문서고, 이거는 미국에서 찾은 문서고 사진들이고. 이렇게 우리 아버지네 형님네 어머니네를 죽였다고 나는 고발하는 겁니다. 이거를 만천하에 고발하는 겁니다."]
진실과 화해를 위한 과거사정리위원회는 2007년 예비검속의 불법성을 인정했습니다.
KBS 뉴스 안서연입니다.
안서연 기자 (asy0104@kbs.co.kr)
고진현 기자 (jhko0920@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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