尹, 양곡관리법 거부권 행사로 급한불 껐지만…정부 숙제는 산적
쌀 공급과잉 해소 위한 근본적 대책 마련해야
쌀 관련 예산 대다수가 양곡매입·관리 비용
"전략작물직불금 늘이고 소비촉진 대책 마련해야"
[세종=이데일리 김은비 기자] 매년 1조원 이상의 혈세가 낭비되는 등 심각한 부작용 우려를 낳았던 양곡관리법 개정안이 4일 윤석열 대통령이 거부권 행사를 하면서 일단락됐다. 하지만 정부 입장에서는 쌀 공급과잉을 해소할 근본적인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는 숙제가 남았다.
윤석열 대통령은 이날 오전 용산 대통령실에서 국무회의를 주재하고 양곡관리법 개정안에 대한 재의요구안을 심의·의결했다. 지난달 23일 야당 주도로 국회 본회의를 통과한 개정안에 대해 사실상 거부권을 행사한 것이다.
“오히려 쌀값 떨어지고 농가 소득 줄어들 것”
예상된 수순이다. 정부·여당은 이 개정안이 거론되기 시작된 지난해부터 줄곧 반대 의사를 밝혀 왔다. 양곡관리법 개정안은 농가 보호를 위해 쌀이 수요의 3~5% 이상 초과 생산되거나 쌀값이 전년도보다 5~8% 이상 하락할 경우 정부가 쌀을 의무적으로 매입하도록 한 것인데 법 취지와 달리 부작용이 더 클 수 있다는 것이다.
정황근 농림축산식품부 장관은 이날에도 간담회를 열어 “(법이 시행되면) 지금도 남는 쌀을 더 많이 남게 하는 것은 물론 (정부가) 이를 사는데 들어가는 국민 혈세는 매년 증가해 2030년이면 1조4000억원대에 이를 것”이라며 “그럼에도 오히려 쌀값은 떨어지고, 쌀 재배농가 소득도 감소할 것”이라고 밝혔다.
윤 대통령 거부권 행사로 양곡법 개정안은 국회로 다시 넘어가 재표결에 부쳐지게 됐다. 법안 재의결은 재적의원 과반 출석에 출석의원 3분의 2 이상 찬성을 요건으로 한다. 재적 의원(299명) 중 여당인 국민의힘 의원(115명)이 3분의 1을 넘기 때문에 개정안은 폐기 수순을 밟을 것으로 보인다.
정부로선 당장 급한 불을 껐지만, 이번 논란을 촉발한 고질적 쌀 공급과잉 문제 해소 과제는 남겼다. 국민들이 밥을 줄이고 빵·고기 등을 더 먹는 상황에서 좀 더 근본적인 대책이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통계청이 지난 1월 발표한 ‘2022년 양곡소비량조사 결과’에 따르면 지난해 1인당 연간 쌀 소비량은 56.7㎏까지 줄었다. 30년 전 1992년 112.9㎏의 절반이다. 밥 한 공기가 보통 90g이라는 점을 고려했을 때 하루에 밥을 1.5공기 정도만 먹는 셈이다.
◇작물전환해 쌀 재배 면적 줄이고…쌀 소비 촉진 방안 찾아야
정부는 현재 전략작물직불제를 통해 쌀 수급 불균형 문제를 해결하려 하고 있다. 농가가 쌀 대신 가루쌀이나 밀, 콩 등 전략작물을 재배하면 보조금 성격의 직접지불금(직불금)을 주는 사업이다. 정부는 식량 안보 차원에서 작물별로 직불금을 차등 지급하는데 이를 통해 쌀 생산량을 줄이고 전략작물 생산량 확대를 유도하겠다는 것이다.
정부는 이를 통해 올해 쌀 재배 면적을 지난해 17만7000헥타르(㏊)에서 14만㏊로 3만7000㏊ 줄일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하지만 현장에서는 작물 전환을 유도하기에는 보조금 단가가 부족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벼의 1헥타르(㏊)당 순수익은 콩보다 290만원 많은데, 콩 농사로 전환했을 때 받는 직불금은 100만원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쌀은 기계화율이 높아 재배하기도 수월하다는 점을 고려하면 농가에서 작물 전환 유인은 더 줄어든다.
새로운 쌀 수요를 찾아내 쌀 소비를 촉진하는 대책도 필요한 상황이다. 정부는 이를 위해 각 대학교에서 1000원에 아침밥을 먹을 수 있도록 지원금을 주는 ‘천원의 아침밥’ 등을 추진하고 있는데, 이 같은 사업을 더 늘려야 한다는 게 많은 전문가의 지적이다.
김학수 농협중앙교육원 교수는 “재배면적 감축만으로 대응하는 수급대책은 실효성이 떨어질 수밖에 없다”며 “단순히 쌀 홍보에 그치지 않고 다양한 쌀 음식과 가공식품 개발 및 고품질 기능성 쌀 개발 등에 적극 힘써야 한다”고 말했다. 김성훈 충남대 교수는 “국내 쌀 소비 확대만으로는 한계가 있다”며 “쌀 수출 전략상품을 개발해 해외시장을 개척하고, 공적개발원조(ODA)에 쌀을 활용하는 방법도 있다”고 조언했다.
문제는 예산이다. 이미 정부는 올해 농업예산(17조3574억 원)의 4분의 1가량인 4조4000억원을 쌀 관련 정책에 투입하고 있다. 하지만 쌀 감축 및 소비 촉진 관련 예산은 1165억원(26%)에 불과하다. 나머지는 정부양곡매입·관리 비용 및 기반시설 유지에 들어가고 있다.
농식품부는 오는 6일 농업인단체와 당·정 협의를 거쳐 관련 대책을 마련할 예정이다. 같은 날 ‘2023~2027 농업·농촌 및 식품산업 발전대책’도 발표한다. 농식품부 관계자는 “농업단체에서 작물전환을 위한 구체적 방안과 농업·농촌 발전을 위한 종합대책을 요구하는 중”이라며 “이 같은 요구를 종합적으로 담은 농업·농촌 및 식품산업 발전대책을 마련해 추진해나가겠다”고 말했다.
김은비 (demeter@edail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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