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콩재벌 2세 비방 NBN 기자 "죄송하다…대표 지시였다"
NBN TV, 비방기사 삭제 대가로 거액 수수 혐의
경찰, 공동공갈 혐의로 NBN TV 본사 압수수색
기자, 맥신쿠에 "내 이름만 빌려서 기사 올라가"
NBN TV 국장 "경찰의 강압 수사로 기자 퇴사"
[미디어오늘 김도연 기자]
홍콩 재벌 2세 맥신 쿠(Maxine Koo)씨를 겨냥한 비방 기사를 연속 보도했던 NBN TV 기자가 “대표가 시켜서 한 보도였고 내가 직접 관여하지 않았다. 내 이름만 빌려 기사가 올라갔다”며 맥신 쿠에게 사과했던 것으로 확인됐다.
바이라인(by-line·기사 작성자)에 이름을 올린 기자가 강압적 지시에 의해 데스크가 던져준 자료를 검증 없이 보도했다는 취지의 증언으로 NBN TV 보도 공익성을 의심케 하는 대목이다. NBN TV 측이 비방 기사 삭제를 대가로 맥신 쿠로부터 거액을 갈취했다는 혐의를 수사하고 있는 수서경찰서는 지난달 27일 서울 서초구 NBN TV 본사를 압수수색했다.
블록체인 전문 미디어를 표방하는 NBN TV는 지난 2월10일부터 3월13일까지 맥신 쿠를 비방하는 내용의 기사 6건을 실명 보도했다. 이 가운데 5건의 작성자는 기자 생활 5개월차 신입 한아무개 기자다. 맥신 쿠에 관한 NBN TV 기사는 영문으로 번역·보도되기도 했는데 영문 기사 바이라인 역시 한 기자다.
관련 기사들은 사기 혐의로 피소된 맥신 쿠가 돌연 잠적했다는 내용으로 맥신 쿠에게 사기 당했다는 이들의 추가 제보가 잇따르고 있으며, 그 규모가 수백억 원대로 추정된다는 게 골자다. 이 매체는 제보자들을 인용해 “맥신 쿠는 여러 군데서 돈을 빌린 뒤 도박 자금으로 사용하고 도피 중이라 알려졌다”고 보도했고, 기사 말미엔 “맥신 쿠와 관련해 피해를 입으신 분들의 제보를 받는다”고 밝혔다. 근거나 자료, 물증보다 일방의 주장과 제보에만 의존하는 보도였다.
미디어오늘 확인 결과, 기사 작성자인 한 기자는 지난달 19일 맥신 쿠와 통화에서 “일단 모든 기사가 이 대표님 지시로 작성된 게 맞다”며 “나는 처음 기사가 나가고는 더 쓰는 걸 원치 않는다고 했다”고 밝혔다. 한 기자는 “근데 (이 대표가) 계속해서 써야 한다는 식으로 말씀하셨다. 내가 입사한 지 얼마 안 되다 보니까 대표님에게 '저 못 쓰겠습니다'란 말을 못했다”며 “그래서 이렇게 계속 쓰게 됐는데 내가 너무 맥신 쿠씨 마음을 상하게 하고 다치게 한 것 같아서 죄송하다는 말씀을 드린다”고 했다.
한 기자가 지칭한 '이 대표'는 NBN TV를 실질적으로 경영하는 이승익 탐사보도국장을 말한다. 이 국장은 지난 2월 맥신 쿠 측으로부터 광고 협찬을 빌미로 1억 원을 갈취했다는 혐의 등으로 피소됐다.
한 기자 기사에는 2011년 맥신 쿠와 함께 방송에 출연한 배우 유아인의 마약 투약 의혹이 언급되고, 맥신 쿠가 돈을 빌린 뒤 도박 자금으로 사용하고 도피했다는 내용, 맥신 쿠의 가족 관계도 등이 담겼는데 한 기자는 이 내용에 관해 “이승익 대표님이 다 그렇게 넣으라고 하나하나씩 지시했다”고 주장했다. “거의 내 이름만 빌려서 기사가 올라갔다고 보면 된다”는 게 한 기자의 주장이다.
한 기자는 맥신 쿠 기사를 영문으로 번역한 데 대해서도 “그것도 이 대표님이 영문으로 번역하라고 시켜서 어쩔 수 없이 번역해 드렸다”고 해명했다. 이어 한 기자는 “이 대표님이 처음부터 의도적으로 그런 기사를 쓰려고 접근하신 것 같다”며 “맥신 쿠씨가 너무 상처를 입으신 것 같아 죄송하다”고 했다. 이 국장이 맥신 쿠 측으로부터 광고비 명목으로 1억 원을 받은 것에 대해서도 “기사가 올라가고 나중에 알게 됐다. 기사로 돈이 오갔다는 것 자체가 솔직히 씁쓸하고 황당하다”고 털어놨다. 한 기자는 3일 미디어오늘과 통화에서 “현재 수사가 진행 중인 사안으로 더 드릴 말씀이 없다”고만 했다.
한 기자는 4월 초 NBN TV를 퇴사했다. 이승익 국장은 4일 통화에서 한 기자 퇴사 사유에 “경찰의 강압 수사 때문”이라며 “한 기자는 압수수색 열흘 전 경찰 조사를 받았는데, 경찰이 조사받은 내용을 회사에 얘기하지 말라고 했다. 겁이 난 기자가 사실상 경찰이 불러주는 대로 진술했고, 이를 토대로 압수수색 영장이 발부됐다”고 주장했다. 이 국장은 “경찰 수사와 맥신 쿠 측 회유 압박에 한 기자가 심적으로 버티기 어려웠던 상태”라며 “한 기자에게는 고소장 기사를 쓰라고 한 것뿐”이라고 했다. 정상적인 데스크 지시와 기자 취재가 이뤄진 보도였다는 주장이다.
이 국장은 경찰 수사도 비판했다. 그는 “지금 수서경찰서 관할 지역에 여러 강력 사건과 범죄들이 발생해 수사 인력이 부족할 것”이라며 “맥신 쿠 측 주장을 백번 양보해 받아들인다 해도 경찰 수사 인력이 부족할 상황에서 수사관 18명을 보내 NBN TV 본사를 압수수색하는 게 합리적인가”라고 반문했다. 이 국장은 압수수색 현장을 SBS가 단독 보도한 데 대해 “압수수색은 실수로도 누설하면 안 되는 정보”라며 “기자와 경찰이 동시에 현장에 나왔는데, 이를 어떻게 해석해야 하는가. 피의사실공표는 위법 아니냐”고 목소리를 높였다.
이 국장은 맥신 쿠 측으로부터 1억 원을 받고 기사를 내렸다가 다시 올린 데 대해 “기사 삭제를 전제로 1억 원을 받은 게 아니다”라며 “우리는 기사 정정을 위해 기사를 잠시 반려한 것뿐이며, 맥신 쿠 쪽에서 소송 취하를 하지 않았기 때문에 기사를 다시 올린 것”이라고 주장했다.
반면, 맥신 쿠는 “NBN TV는 언론사인데도 기사를 비공개 처리해준다는 명목 아래 1억 원을 갈취했다. 이는 형사 처벌 대상”이라며 “NBN TV가 다시 기사를 게재한 이유는, 작게는 소송을 취하하게 만들고, 나아가서는 나머지 1억 원을 갈취하기 위함”이라고 주장했다. 맥신 쿠는 “NBN TV는 최소한의 사실 확인도 하지 않고 허위 기사를 게재했다”며 “악의적인 허위 기사를 게재한 후 보도 피해자들로부터 금전을 받고 그 기사들을 비공개해주는 것으로 수익을 창출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맥신 쿠는 지난 2월 NBN TV를 상대로 법원에 인터넷 게재 금지 가처분을 신청했고 2억 원의 위자료 지급과 기사 삭제를 청구하는 소송을 제기했다. 이 국장과 사기 피해 호소인들에 대해선 폭력행위 등 처벌에 관한 법률위반(공동공갈) 혐의 등으로 경찰에 고소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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