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럼] `한류의 힘`, 정부 정책에 접목하라

2023. 4. 4. 18: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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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영렬 서울예술대 영상학부 교수

"한국이 k-팝을 통해 이루는 힘은 한국이 개발할 수 있는 어떤 미사일 시스템보다 강력할 수 있다." 미국 외교 전문지 '더 디플로맷' 작년 2월호에 게재된 '한국 k-팝의 소프트 파워 순간'이라는 제목의 칼럼 내용이다.

윤석열 대통령의 방미를 한 달 앞두고 지난 달 29일 불거진 김성한 전 국가안보실장의 교체가 k-팝 그룹 블랙핑크의 축하 공연 관련 때문이라는 보도를 접하고 떠오른 말이다. 미국 국제정치학자 2명이 공동 작성한 이 칼럼은 "k-팝은 이전에 라디오와 영화산업이 그랬듯 국제관계에 실질적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소프트 파워(국제관계에서 매력을 통해 설득하는 힘)의 하나"라고 강조했다.

김 전 실장이 한미정상회담 축하 만찬행사에 블랙핑크와 미국 가수 레이디 가가의 협연을 하자는 바이든 대통령 부부의 요청에 답을 계속 미루고, 윤 대통령에게도 보고하지 않은 속사정을 알지는 못한다. 다만, 이 공연이 이뤄진다면 더 화기애애한 분위기 속에서 양국 간 현안들을 풀어갈 수 있고 블랙핑크에게도 국제적 홍보가 되는 일인데, 왜 적극 추진하지 않았는지 의문이다. 혹시라도 국가안보실의 중장년 비서들이 블랙 핑크의 세계적 명성을 잘 몰랐던 것인지, 아니면 일정 등 조율을 못한 것인지 궁금하다.

블랙핑크는 세계 최대 음원 스트리밍 서비스 '스포티파이'에서 88억 회로 여성 밴드 분야 기네스 세계 기록을 세운 4인 그룹이다. 유튜브에서 단일 뮤직비디오의 조회 수가 최대 20억 회를 넘고, 미국과 영국의 앨범 차트에서 1위(여성)를 기록한 첫 k-팝 그룹이다.

이들이 지난 달 18~19일 대만의 남부 항구도시 가오슝에서 공연을 하자 가오슝 지하철역에 새해맞이 인파보다 많은 50만 명이 몰려 국가적 관심사가 됐다. 입장권 가격이 37만 원이었지만, 암표 값이 그 45배인 1700만 원까지 올라 사회적 문제가 되어 대만 문화부장(장관)이 암표 근절을 위해 법률을 개정하겠다고 발표했을 정도다.

대만 언론에서는 블랙핑크의 가오슝 공연으로 관람객의 가오슝 방문과 숙박, 야시장 호황 등으로 약 85억 원의 직접적 경제효과가 있었다고 보도했다. 이 공연으로 대만 국민의 한국에 대한 호감도가 높아지자 중화항공은 지난 달 27일 타이베이-부산 노선을 부활시켰다.

한류의 인기는 국내보다 해외에서 더 높은 것으로 나타나고 있다. 서울대 아시아연구소와 중앙일보가 한국·미국·일본·중국 4개국의 최근 3년간 영문 보도 550만 건을 빅 데이타 분석하여 지난 1월 발표한 결과, 한류에 대한 관심과 이슈화 가능성(가속도 지수)이 미국(가속도 350.0), 중국(107.8), 일본(63.3), 한국(27.7) 순으로, 해외에서 훨씬 높았다. 국제 사회에선 이미 한류가 핵심 글로벌 이슈이자 트렌드로 자리 잡았음에도 정작 국내에선 한류가 가진 소프트 파워가 주목받지 못하고, 이를 활용할 준비가 부족하다는 의미라고 해석됐다.

한류가 해외에서 벌어지는 현상이니 한국에서는 외국에 비해 이에 대한 언급이 더 적을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한류라는 유례 없는 기회가 정부의 외교 통상·경제 영역에 접목되어 더 큰 외교·경제적 효과를 창출하지 못하는 점은 재고되어야 할 것이다.

전임 대통령들이 국내외 행사에 한류 스타를 불러 논란을 야기한 적이 있는데 이러한 일회적 '보여주기'가 아니라, 블랙핑크 같은 k-팝 그룹들의 국내 공연 유도나 k-드라마 촬영지 체험 프로그램 등으로 외국인 관광객을 국내로 끌어들이고, 한류 인기 지역에 대한 중소기업 수출이나 종합상사의 투자 유치 등을 지원하는 것이다.

외교에서는 한류 기반으로 해당 국가 국민들에게 직접 다가가 한국에 대한 인식을 개선하여 외교적 목표를 이루는 '공공 외교'를 더 강화하는 것이다. 외교 전문가들은 미·중 경쟁이 거세지며 각국이 피아(彼我)를 구분하고 있지만 대부분의 국가가 한류에 대해선 열린 마음으로 호응하고 있는 만큼 한류는 신냉전을 뚫을 무기라고 지적하고 있다.

한류는 20여 년 전의 드라마 '겨울연가'(2002) 이후, '대장금'(2003), '별에서 온 그대'(2013), 싸이의 강남스타일(2012)과 BTS를 포함한 k-팝 그룹들, 아카데미상 수상 영화 '기생충'(2019), 넷플릭스 드라마 '오징어 게임'(2021) 등으로 세계를 휩쓸어오고 있다. 최근에는 넷플릭스에서 '더 글로리'(2023)가 시청률 톱을 달리고 있고 지난 달 31일 공개된 영화 '길복순'이 이를 이을 것으로 기대되고 있다.

이러한 k-콘텐츠 인기 덕분에 한국의 국가 이미지가 높아졌다는 조사결과도 잇따르고, 그 결과 화장품·패션·식품 등 한류 관련 상품의 수출도 늘어난다는 보도도 이어지고 있다. 국가 이미지와 상품 수출의 연관관계를 분석하는 경영학 연구들에 따르면, 일반적으로 국가 이미지가 감정적 요소로 형성되었을 때는 그 나라 이미지가 좋으면 그 나라 제품도 선호되는 것으로 나타났다.

그런데, 한류가 국내에서 정책적으로 적극적으로 활용되지 않은 것은, 한류가 어떤 의도적인 노력에서 나온 산물이라기보다는 '예기치 않은 성공'이기 때문이라고 생각된다. 기업에서도 '예기치 않은 성공'은 구성원들이 기존에 가졌던 확실성이나 선입견으로부터 벗어나게 하여 무시되거나 거부되기까지 한다고 미국의 유명한 경영학자 피터 드러커는 지적한 바 있다. 정부 정책을 운용하는 중장년 관료들에게 k-팝이나 드라마, 영화, 게임, 웹툰의 매력이 실감나지 않고 한류의 지속성에 대한 확신이 약한 것도 원인일 수 있을 것이다.

드러커는 "'예기치 않은 성공'을 알아보고 그것으로부터 배우고 연구해야 혁신을 통한 새로운 부의 창출이 가능하다"고 강조한 바 있다. 정부가 한류라는 글로벌 문화현상을 지렛대로 삼아 이를 경제 영역과 외교통상 정책에 접목하여, 관광 등 내수 부진과 수출 감소, 해외 투자 유치 등 문제를 돌파할 '한류 경제' 정책을 마련하길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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