尹 “전형적인 포퓰리즘 법안”… ‘양곡법’에 첫 거부권 행사

“농촌에 전혀 도움 안 돼”
국회에 재의요구서 보내
與와 6일 대책 마련 발표
민주 “재표결에 임할 것”
총선까지 국정 난맥 우려

윤석열 대통령이 4일 “양곡관리법 개정안은 농업인과 농촌 발전에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 전형적인 포퓰리즘 법안”이라고 비판하며 법률안 거부권(재의요구권)을 행사했다. 대통령의 거부권 행사는 2016년 5월 박근혜 전 대통령이 ‘국회법 개정안’에 반대한 이후 약 7년 만이다.

국회 권력을 장악한 야권의 입법 독주를 대통령이 고유 권한을 발동해 제동을 건 것으로 ‘여소야대 국회’와 ‘여야 협치 실종’이 맞물린 윤석열정부에선 내년 총선 전까지 이 같은 국정 난맥이 이어질 것으로 전망된다.

윤석열 대통령이 4일 서울 용산 대통령실 청사에서 열린 국무회의에서 발언하고 있다. 연합뉴스

윤 대통령은 이날 용산 대통령실에서 주재한 국무회의에서 “농업의 생산성을 높이고 농가 소득을 높이려는 정부의 농정 목표에도 반하고 농업인과 농촌 발전에도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 전형적인 포퓰리즘 법안”이라며 “정부는 이번 법안의 부작용에 대해 국회에 지속적으로 설명해 왔습니다만 제대로 된 토론 없이 국회에서 일방적으로 통과시켜 매우 유감스럽게 생각한다”고 밝혔다.

지난달 23일 더불어민주당이 주도해 강행 처리한 양곡관리법 개정안은 이날 국무회의에서 부결됐다. 대신 해당 법률안에 대한 국회 재논의를 요구하는 정부의 재의요구안을 의결했다. 윤 대통령은 이를 곧바로 재가하며 양곡관리법에 대한 거부권을 행사했다.

윤 대통령은 “이번 양곡관리법 개정안은 시장의 쌀 소비량과 관계없이 남는 쌀을 정부가 국민의 막대한 혈세를 들여서 모두 사들여야 한다는 ‘남는 쌀 강제 매수법’”이라며 “법안 처리 이후 40개의 농업인 단체가 양곡관리법 개정안에 대해 전면 재논의를 요구했고, 관계부처와 여당도 현장의 목소리를 경청하고 검토해서 재의요구권 행사를 건의했다”고 말했다.

대통령실은 국회로 보낸 재의요구서에서 그 이유로 △쌀 산업의 구조적 공급과잉 문제 심화 △중대한 재정적 부담 초래, 쌀값 하락 △수입의존도 높은 곡물 생산 확대 제한, 식량 안보 걸림돌 △쌀 단일 품목 과다 지원, 농업 정책 혼란 △충분한 협의·사회적 공감대 형성 부족 등을 거론했다.

대통령실 고위 관계자는 이날 기자들과 만나 “2019년 쌀의무매입법을 여당인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발의하자 당시 문재인정부가 반대했다”며 “문재인정부는 왜 지금 우리처럼 이 법안을 반대했겠느냐”고 말했다. 그러면서 “농가와 국민을 위해 좌고우면할 이유도 없었고 당정은 6일 협의회를 열고 쌀 소득 안정, 농가소득향상, 농촌발전방안을 마련해 발표할 것”이라고 밝혔다.

더불어민주당 박홍근 원내대표가 4일 오전 서울 용산구 대통령실 앞에서 열린 '쌀값정상화법' 대통령 거부권 행사 규탄 기자회견에서 발언하고 있다. 연합뉴스

민주당 박홍근 원내대표는 이날 “국회 입법권을 부정하고 헌법을 유린한 행위”라며 국회법 절차에 따른 재표결에 임하겠다고 밝혔다.

대통령이 거부권을 행사한 법안이 다시 의결되려면 재적의원 과반수 출석과 출석의원 3분의 2 이상의 찬성이 필요해 재가결은 현실적으로 어려운 상황이다. 115석을 차지한 국민의힘이 집단 부결을 통해 자력으로 막을 수 있다.

1호 거부권이 현실화하면서 내년 총선 전까지 윤 대통령의 거부권 행사는 계속될 것이라는 관측이 나온다. 대통령실 핵심 관계자는 통화에서 “야당이 강행 처리한 법안에 위헌 요소가 있거나 민생에 악영향을 미칠 것으로 판단하면 대통령의 거부권 행사가 이어질 것”이라고 말했다.

이현미·김승환·김현우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