與 "민주, 국정운영에 부담주려"vs 野 "대통령이 민심·국회 거부"
여야가 4일 양곡관리법 개정안(이하 양곡관리법)에 대한 윤석열 대통령의 재의요구권(거부권) 행사 문제 등을 놓고 공방을 벌였다. 더불어민주당은 "윤 대통령이 농심도 민심도 국회도 거부했다"며 재투표 방침을 시사했고, 국민의힘은 "동일 법안 발의 움직임은 국정운영에 부담을 주기 위한 태도"라며 반발했다.
국회는 이날 오후 2시부터 서울 여의도 국회 본청에서 경제 분야에 대한 대정부질문을 진행했다. 이날 오전 윤 대통령이 양곡관리법에 대한 거부권을 행사한 만큼, 야당 의원들의 질의는 양곡관리법 문제에 집중됐다.
양곡관리법은 쌀 생산량이 목표량의 3~5%를 초과하거나 쌀값이 전년 대비 5~8% 이상 하락하면 정부가 초과 생산량을 전량 매입하는 내용이다. 지난달 23일 민주당의 강행 처리로 국회 본회의를 통과했다.
윤관석 민주당 의원은 이날 "윤석열 정부 1년은 한마디로 총체적 난국이다. 국가 시스템은 무너지고 민주주의는 후퇴하고 역사가 왜곡되고 민생은 파탄 나고 있다"며 "오늘 대통령이 양곡관리법 거부권을 행사했다. 농심도, 민심도, 야당도, 국회도 거부하고 마구 걷어차고 있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신정훈 민주당 의원도 이날 한덕수 국무총리를 향해 "윤석열 대통령의 거부권 행사는 국민의 삶과 쌀값 정상화에 대한 포기 선언이라고 생각한다"며 "대한민국이 세계 8번째 경제 대국이 되기까지 헌신을 다해온 우리 농업과 쌀 농업에 대해 정부가 의무를 다하는 것이 정당한 도리라 생각하는데, 어떻게 보느냐"고 따져 물었다.
그러자 한 총리는 "대한민국 경제발전에 농업 부문이 기여했다는 것은 전적으로 동의한다"면서도 "(양곡관리법과 같은) 가격을 지지하는 정책은 농민에게 충분한 도움이 되지 않는다. 강제 매입을 시행하면 2030년까지 쌀 초과 생산량이 평균 11.3%에 이르게 되는데, 매해 정부가 강제매수를 해야 한다"고 했다.
그러면서 "강제적으로 매년 시장격리를 해야 하는 이러한 상황은 농민에게 좋은 정책이 아니다"라며 "의무적으로 수량을 제한하는 정책은 어떤 가격 제도보다도 강하다. 쌀 강제매수는 수입 제한과 같은 농민을 정말 힘들게 하는 정책"이라고 말했다.
여당에선 양곡관리법 처리 과정 자체가 잘못됐기 때문에 거부권 행사는 타당한 조치라고 주장했다. 장동혁 국민의힘 의원은 이날 질의에서 "헌재는 안건조정위를 형해화시키고 제대로 된 토론 없이 통과한 '검수완박법'에 대해 여당 의원들의 표결권을 침해했다고 지적했다"며 "양곡관리법도 같은 문제점을 안고 있다. 절차를 무시한 이런 법들에 대한 재의요구권 행사는 타당하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이에 한 총리도 적극 동의했다. 한 총리는 "책임 있는 정부라면 해야 하는 조치라고 생각하고 있다"며 "이것은 정말 농민을 위하는 길이 아니다. 정말 열등한 정책이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또 장 의원이 "민주당이 다시 동일 법안을 발의하겠다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는데 이는 대통령의 국정운영에 부담을 주고 총선을 앞두고 재의요구권을 행사하는 모습을 보여주기 위한, 표를 의식한 태도라고 볼 수밖에 없는 것 아닌가"라고 묻자 한 총리는 "그런 정책(양곡관리법)은 정말 우리 국회에서 최대한 억제돼야 한다고 저희는 바란다"며 "여야 간에 충분히 협의를 하면 그런 잘못된 법률이나 정책들이 충분히 국회 차원에서 억제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한다"고 강조했다.
한일 정상회담도 화두에 올랐다. 윤관석 민주당 의원은 이날 한 총리에게 "한일정상회담 직후 일본에서 자체적으로 조사한 결과에 따르면 국민 65%가 긍정 평가를 했다"며 "두 나라 국민의 평가가 정반대다. 한일정상회담 이후에 여론이 극명하게 차이 난 경우가 있냐"고 물었다.
이에 한 총리는 "외교나 협약의 과정이 끝나고 나면 평가는 각각 다를 수 있다"면서 "과거 한미 간 자유무역협정을 타결했을 때 대한민국에서의 지지도는 굉장히 낮았지만, 결과적으로 한미자유무역협정이 대한민국의 어려운 대내외 사정을 극복하는 데 크게 기여하고 있다는 것은 현재 명백하게 보인다"고 답했다.
윤 의원은 또 한 총리가 지난 3일 대정부질문에서 일본 강제동원 피해 제3자 변제안 발표 이후 이뤄진 한일정상회담에 대해 '돌덩이를 치웠다'고 한 데 대해 "유감을 표명해야 하지 않느냐"며 문제 삼았다.
한 총리는 "제가 돌덩이라고 한 것은 한일 관계를 극도로 악화시킨 문제를 해결하고 치우려고 했다는 이야기를 한 것"이라며 "제가 어떻게 대한민국 국민들을 돌덩이라고 할 수 있나"라고 반박했다.
그러면서 "의도를 곡해하지 말라"고 거듭 강조했다. 이 과정에서 서로의 목소리가 높아지자 김진표 국회의장이 직접 중재에 나서기도 했다.
여당 의원들은 이날 질의에서 한일 문제나 양곡관리법 문제가 아닌 다른 경제 사안을 짚기도 했다.
강대식 국민의힘 의원은 연금개혁 문제에 대해 "모수 개혁과 수익률 제고뿐만이 아니라 좀 더 근본적인 대책인 구조 개혁도 논의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이에 한 총리는 "같이 검토를 해야 된다"며 "연금의 합리적인 개혁은 저출산 문제에도 굉장히 영향을 미친다고 저희는 판단하고 있다. 이런 연금 제도의 필요성과 시급성에 대해 정부도 충분히 인식을 하고 추진해 나가겠다"고 밝혔다.
김희곤 국민의힘 의원은 "금리 인상은 물가 상승 억제로 인한 불가피한 조치로 이뤄졌지만 그 부담은 고스란히 사회적 약자에게 돌아갔다"며 "정부가 취약 차주를 위한 다양한 패키지를 내놓고 있지만 고통받는 서민들이 체감하긴 아직도 갈 길이 멀기만 하다. 서민은 물론 청년 고령자 등 취약계층들을 위한 정책 패키지가 지금보다 몇 배로 더 확대되고 일시적인 현금 지원 아니라 지속 가능할 수 있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안채원 기자 chae1@mt.co.kr 오문영 기자 omy0722@m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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