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평선] 대만 국민당 아이러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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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자주<한국일보> 논설위원들이 쓰는 칼럼 '지평선'은 미처 생각지 못했던 문제의식을 던지며 뉴스의 의미를 새롭게 해석하는 코너입니다. 한국일보>
대륙에서 쫓겨난 뒤 대만에서 점령군처럼 행세하며 요직을 차지한 외성인(대륙 이주민)과 피지배계층이 된 내성인(대만 원주민)의 갈등이 묘사되기도 한다.
□ 마잉주(馬英九) 전 대만 총통 겸 전 국민당 주석이 지난달 27일 중국을 방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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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일보> 논설위원들이 쓰는 칼럼 '지평선'은 미처 생각지 못했던 문제의식을 던지며 뉴스의 의미를 새롭게 해석하는 코너입니다.
남자가 군대를 간다. 결혼 약속을 한 여자를 두고 떠난다. 두 사람은 돈을 함께 모으며 미래를 도모해 왔다. 남자는 매일 편지를 쓴다. 여자는 편지를 매일 읽게 되고, 우체부와 매일 마주치게 된다. 남자가 제대를 1년가량 남겨뒀을 때 양안(중국-대만) 관계가 험악해진다. 면회나 휴가는커녕 편지조차 쓸 수 없다. 남자는 제대 후에야 연인을 만나러 간다. 여자는 우체부와 결혼해 있다. 대만 영화 ‘연연풍진’(1986)은 쓸쓸한 연애담에 엄혹했던 시대상을 새긴다.
□ ‘연연풍진’의 감독 허우샤오시엔(侯孝賢)이 ‘비정성시’(1989)에서는 대만 현대사 최대 비극을 다룬다. 1947년 발생한 2·28사건으로 수만 명의 희생자를 낳은 일이다. 당시 장제스(蔣介石) 총통이 이끌던 국민당은 국공내전에서 패퇴를 거듭하자 대만을 보급기지로 삼았다. 수탈이 이어졌고 민심이 폭발했다. 국민당은 대학살로 대응했다. ‘비정성시’는 1987년 계엄령이 해제될 때까지 언급 자체가 금기시됐던 사건을 들춰낸다. 1988년 장제스의 아들 장징궈(蔣經國) 총통이 죽고 민주화 바람이 불면서 제작이 가능했던 영화다.
□ 20세기 후반 대만에서는 현대사의 아픔을 그린 영화들이 잇달았다. 양더창(楊德昌) 감독의 ‘고령가 소년 살인 사건’(1991)도 그중 하나다. 불량 청소년이 저지른 살인 사건을 통해 국민당이 반공을 내세워 철권 통치했던 1960년대 억압적 사회 분위기를 소환한다. 대륙에서 쫓겨난 뒤 대만에서 점령군처럼 행세하며 요직을 차지한 외성인(대륙 이주민)과 피지배계층이 된 내성인(대만 원주민)의 갈등이 묘사되기도 한다.
□ 마잉주(馬英九) 전 대만 총통 겸 전 국민당 주석이 지난달 27일 중국을 방문했다. 전·현직 총통으로서는 사상 최초였다. 민진당 출신 차이잉원(蔡英文) 현 총통의 케빈 매카시 미국 연방하원의장 현지 회동에 대응한 성격이 짙다. 마잉주는 장징궈 이후 첫 외성인 출신 총통으로 국민당 본류로 평가받는다. 그는 중국 방문 중 “양안 간 적대감이 줄어야 평화가 있다”고 밝혔다. 중국 공산당과 맞서며 대만을 통치했던 국민당의 고위 인사답지 않은 행보다. 역사의 아이러니다.
라제기 영화전문기자 wenders@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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