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 정부와 다시 한번 '원팀'···선제투자로 中 추격 뿌리친다
◆ 아산에 4.1조 설비투자
OLED TV 최초 개발 日 소니도
투자 적기 놓치자 순식간에 밀려
천안에 세계 최고 클러스터 구축
中과 격차 벌리고 지역산업 육성
정부도 R&D·인재양성 등 지원
삼성디스플레이가 4일 발표한 4조 1000억 원 규모의 차세대 유기발광다이오드(OLED) 투자 계획에는 중국에 대한 ‘초격차’를 유지하면서 지방 OLED 산업 생태계를 육성해 균형 발전을 이루겠다는 다양한 포석이 깔려 있다. 올 2월에 이어 이날 두 달여 만에 삼성디스플레이 아산 캠퍼스를 다시 방문한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은 “끊임없이 혁신하고 선제적으로 투자해 누구도 넘볼 수 없는 실력을 키우자”고 거듭 강조했다.
우선 한국을 매섭게 추격하고 있는 중국을 이번 투자를 통해 뿌리친다는 게 삼성의 목표다. 반도체와 마찬가지로 디스플레이도 투자의 적기를 놓치면 한순간에 세계 1위 자리를 내줄 수 있다고 전문가들은 경고한다. 박재근 한양대 교수(한국반도체디스플레이기술학회장)는 “디스플레이 부문에서 세계 1위였던 일본도 순식간에 경쟁에서 밀려났던 것처럼 우리나라도 중국을 뿌리치기 위한 선제적 투자와 정부의 지원이 절실하다”고 지적했다.
일본의 세이코엡손은 1983년 세계 최초로 액정표시장치(LCD)를 개발해 초기 디스플레이 시장을 장악했지만 삼성과 LG가 2001년부터 5세대 LCD에 본격 투자하는 과정에서 대응에 실패해 시장을 내줬다. 5세대는 디스플레이 제작에 사용되는 유리원판(마더글래스)의 크기를 뜻한다. 원판이 커질수록 한번에 생산해낼 수 있는 패널의 양이 늘어나기 때문에 더 앞선 기술로 인정받는다. 5세대급(1100㎜×1250㎜)에서 한번 앞서가기 시작한 우리나라 기업들은 이후 6·7·8세대에서도 잇달아 한발 앞서 제품을 양산할 수 있었다. 이번에 삼성이 투자하기로 한 생산 시설은 8.6세대(2250㎜×2600㎜)급이다.
OLED TV 역시 최초 상용화에 성공한 곳은 소니였지만 삼성에 최초 양산 타이틀을 내주며 경쟁에서 밀렸다. 삼성의 한 관계자는 “2007년 10월 천안 사업장에서 기자 간담회를 열고 세계 최초로 OLED 양산에 성공했다고 공식 발표하자 소니·엡손·산요 등 일본 디스플레이 업계가 깜짝 놀란 일이 있었다”며 “기술을 갖고 있는 것과 양산을 하는 것은 전혀 다른 차원인데, 여기에 제대로 된 투자가 이뤄지지 않은 결과”라고 설명했다. 이후 일본 디스플레이 업계는 한국과의 격차를 좁히기 위해 소니와 파나소닉, 재팬디스플레이(JDI)가 손잡고 ‘JOLED’라는 합작 기업을 만들었으나 끝내 격차를 줄이지 못하고 최근 공식 파산을 신청했다.
문제는 경쟁에서 완전히 뒤처진 일본과 달리 중국은 정부의 막대한 지원을 등에 업고 한국을 추격하고 있다는 점이다. 중국 디스플레이 기업은 전체 투자금의 10%만 보유해도 나머지는 정부 지원을 받아 공장을 건설할 수 있다. 디스플레이가 대표적 장치산업인 점을 감안하면 막강한 경쟁력을 갖춘 셈이다. 이에 따라 현재 LCD 시장에서는 삼성과 LG가 사실상 철수해 중국이 세계 1위로 올라섰고 OLED 분야에서도 한국과 중국의 격차가 급격히 줄어들고 있다.
정부와 삼성은 또 이번 투자 결정으로 충남 일대에서 세계 최고 수준의 디스플레이 클러스터가 구축될 것으로 보고 있다. 삼성은 앞서 6세대 OLED 양산 시설에 대대적인 투자를 단행한 뒤 이번 8.6세대까지는 중소형 OLED 생산에 집중해왔다. LCD 생산에서도 철수하면서 지역 산업계에서 한때 우려의 목소리가 나왔다. 하지만 2026년까지 4조 1000억 원을 투자하기로 하면서 지역 경기 전반에 활기가 돌 것이라는 전망이 제기된다. 현재 천안·아산 지역에는 삼성디스플레이를 비롯해 소재 업체인 삼성코닝정밀소재와 각종 디스플레이 협력사들이 몰려 있다. 이번 투자로 국내 설비 및 건설 업체가 2조 8000억 원에 이르는 매출 증가 효과를 보고 2만 6000명의 고용 창출 효과도 낼 수 있다는 것이 정부 측의 추산이다.
정부도 다양한 지원 정책을 실시하기로 했다. 산업통상자원부는 OLED 생산 기술 혁신과 응용 제품 개발을 위해 4200억 원 규모의 연구개발(R&D)을 진행하겠다고 이날 밝혔다. 고질적인 인력난을 해소하기 위해 계약학과 개설을 추진하고 현장 중심의 아카데미 등을 운영해 9000명의 선도 인력을 양성하기로 했다.
재계의 한 관계자는 “정부가 디스플레이를 첨단전략산업으로 지정하면서 다양한 세제 혜택을 주기로 했고 삼성도 이에 호응해 대규모 투자 계획을 발표해 결과적으로 국가핵심산업의 경쟁력을 지킬 수 있게 됐다”며 “용인 반도체 클러스터에 이어 삼성과 정부가 다시 한번 ‘원팀’으로 성과를 낸 것”이라고 설명했다.
서일범 기자 squiz@sedaily.comCopyright © 서울경제.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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