빅테크 때리던 시진핑, 이젠 금융권 정조준

한재범 기자(jbhan@mk.co.kr) 2023. 4. 4. 17: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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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연임 후 반부패 가속
20년 만에 고위 은행가 조사
6개 국유 은행 CEO 소환해
반부패 단속 '노골적 경고'
IB거물 바오판 두달째 실종

중국 당국이 2년여에 걸친 '빅테크 때리기'에 이어 금융권에 대해 대대적인 사정 작업에 돌입했다. 취임 초기부터 반부패 기조를 이어온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이 3연임에 성공한 후 금융권 부패 단속을 더욱 옥죄려는 시도로 풀이된다. 4일(현지시간) 블룸버그는 중국 당국이 국유 은행 최고경영자(CEO) 6명을 조사하고 있다고 보도했다. 이에 따르면 공산당 중앙기율위원회·국가감찰위원회(기율·감찰위)가 심각한 기율과 법률 위반 혐의로 조사 중인 류롄거 전 중국은행 회장과 관련해 최소 6개 대형 국유 은행 CEO를 불러 연루 여부 등을 조사했다.

중국은행은 중국 최대 규모 은행 중 한 곳에 포함되는 대형 금융기관이다. 류 전 회장 조사는 사실상 20년 만에 최고위급 금융권 인사에 대한 조사를 착수한 것과 다르지 않다. 이 같은 상황에서 중국 당국이 국유 은행 6곳의 최고위 인사를 소환한 것은 금융권 반부패 단속에 노골적인 경고장을 날린 것으로 풀이된다.

블룸버그 소식통에 따르면 기율·감찰위는 "류 전 회장 사례에서 교훈을 얻어야 한다"고 경고한 것으로 알려졌다. 또 "금융기관 고위 경영진은 법과 규정을 준수하고 규율을 강화해야 한다"고 주문했다. 중국 당국이 금융권에 대한 조사를 발표한 후 은행가를 소환하는 것은 드문 일이 아니다. 다만 이번 경고는 시 주석이 3연임과 함께 못 박은 반부패 드라이브와 궤를 같이한다는 분석이 나온다.

시 주석은 3연임 확정 이후 반부패 기조를 강화하고 있다. 지난 2월부터 중국 당국의 조사를 받거나 처벌받은 중국 금융회사의 재무 담당 임원만 최소 20명에 달한다. 실제로 올해 들어 왕웨이·왕즈헝 중국은행 부행장, 장이 농업은행 부행장 등이 연이어 사임하기로 했다. 이들이 사임한 이유는 공개되지 않았으나 부패 연루 가능성이 큰 것으로 전해졌다. 중국 투자은행(IB) 차이나르네상스를 이끌던 바오판 회장 역시 2월 중국 당국으로부터 신용대출 비리 명목으로 관련 조사를 받던 중 실종된 상태다. 기율·감찰위는 최근 국유 은행 외에 중국투자공사(CIC), 페트로차이나, 중국석유화공그룹(시노펙) 등 국유 공기업에 대한 반부패 조사도 병행하고 있다.

반부패 칼바람은 시 주석 집권 1기부터 이어져왔다. 시 주석은 2012년 집권한 이후 5년 주기의 두 차례 임기에서 부패 문제 해결을 우선순위에 둬왔다. 2017년 덩샤오핑의 손녀사위인 우샤오후이 안방보험 회장이 부패 혐의로 체포돼 18년형을 선고받은 것이 첫 신호탄이었다. 시 주석은 이 같은 부패 청산을 통해 잠재적인 경쟁자를 척결하는 일거양득을 챙겨왔다고 블룸버그는 짚었다.

시진핑 3기 출범과 함께 반부패 드라이브가 가속화될 것으로 전망된다. 시 주석은 지난해 12월 3연임 확정을 앞두고 공산당 중앙정치국 회의에서 "470만명의 공무원이 대상인 반(反)부패 캠페인은 '집권 3기'에도 계속될 것이며 내년에는 권력, 돈, 자원이 집중된 분야가 조사 대상이 될 것"이라고 천명한 바 있다.

다만 '부패와의 전쟁'에도 금융권 내 부패를 완전히 뿌리 뽑긴 어려울 전망이다. 중국 금융기관 내 부패가 만연한 근본적인 이유는 국유기업에 과도한 권력이 집중되기 때문이다. 이 같은 시스템에서는 부패를 견제할 수단이 많지 않다. 일례로 2021년 1월 29일 사형에 처해진 라이샤오민 전 화룽자산관리공사 회장은 강화된 반부패 기조에도 총 17억8800만위안(약 3044억원)에 달하는 천문학적인 뇌물을 수수한 것으로 드러났다.

또한 전문가에 따르면 중국 내 부정부패는 사실상 경제 성장의 딜레마처럼 묵인돼왔다. 사회 기강이 흐려지지만 한편으론 막강한 국가기관이 시장과 공생해 사회기반시설 등에 투자하는 등 역설적으로 경제 성장에 동력을 제공한다는 것이다. 실제로 중국 국가통계국에 따르면 중국 경제는 만연한 부패에도 지난 10년 동안 연평균 6.6%씩 성장했다.

반면 부패에 의존한 인프라 투자는 지속 가능성이 떨어지며, 장기적인 관점에선 비효율성 증대로 국가적 손실로 이어질 위험도 상존한다. 뤼샤오보 바너드대학 정치학 교수는 "부정부패는 시장을 창출하는 동시에 시장을 규제하는 역할 모두를 국가가 수행해야 하는 데서 오는 사회주의 중국의 딜레마"라고 말했다.

[한재범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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