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곡법은 농민 아닌 정치인 위한 법"… 尹, 1호 거부권 결단
◆ 양곡관리법 제동 ◆
윤석열 대통령이 취임 후 첫 대통령 법률안 거부권(재의요구권)을 양곡관리법 개정안 저지에 사용했다. 법안 이름 자체도 생소한데다가, 특정 산업 종사자인 '농민' 이슈로 치부될 수 있는 해당 안에 윤 대통령이 1호 거부권을 행사한 것은 차기 총선을 앞두고 터져나올 포퓰리즘 법안을 사전에 차단하겠다는 의지의 반영으로 보인다.
4일 대통령실 고위 관계자는 "더불어민주당은 양곡법이 농민을 위한 법이라고 주장한다"면서 "그러나 실제 법안을 들여다보면 쌀 수급과 가격을 모두 왜곡시켜 농민을 불행하게 만들고, 국민의 혈세를 정치인들의 표를 위해 쓰는 법안"이라고 말했다. 또 다른 고위 관계자는 "2019년 민주당 의원이 쌀 의무매입법안을 발의했지만, 문재인 정부는 반대했다"면서 "당시 민주당은 여당이었다. 그런데 그 법안은 왜 소위원회를 통과하지 못하고, 국회를 통과하지 못했을까"라고 야당을 역공했다.
윤 대통령은 양곡법 개정안이 상임위원회를 통과했을 때부터 해당 법안에 반대 의사를 표명했다. 작년 10월 20일 윤 대통령은 도어스테핑(출근길 약식 회견)에서 "야당에서 비용추계도 없이 통과시켰다"고 말하면서 "법으로 매입을 의무화시키면 농업 재정 낭비가 심각해진다. 그 돈은 농촌 개발을 위해 써야지, (쌀 의무 매입은) 농민에게 도움이 안 된다고 생각한다"고 밝힌 바 있다.
다만 대부분의 일반 국민은 양곡법 개정안이 어떤 법안인지 정확히 모르기 때문에 윤 대통령과 정부도 시간을 들여 국민에게 해당 법안의 문제점을 알리는 등 예상보다 거부권 행사까지 '뜸'을 들였다. 법이 통과된 것은 지난달 23일로 거부권은 12일이 지나서야 행사됐다. 그사이에 윤석열 정부는 추경호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과 정황근 농림수산식품부 장관의 재의요구 건의와 한덕수 국무총리의 대국민 담화 등을 차례로 진행하며 국민을 설득하는 과정을 거쳤다.
재의요구권 행사가 확정된 직후에는 주무부처인 농림축산식품부의 장관이 다시 나서 브리핑을 열고 해당 법안에 대한 거부권 행사가 불가피했음을 강조했다. 정황근 장관은 "남는 쌀의 전량 강제 매수법에 대해 재의요구가 불가피했다"고 밝혔다.
정 장관은 개정안이 시행돼선 안 되는 이유로 낮은 경제성을 들었다. 국회를 통과한 국회의장 중재안의 의무 매입 기준은 야당이 애초 제시한 것보다 느슨하지만, 의무 매입 조항이 존재하는 한 대규모 혈세 투입은 막을 수 없다는 논리다.
야당인 민주당은 지난해보다 쌀 초과 생산량이 3% 이상이거나 쌀값이 평년보다 5% 이상 하락할 때 의무 매입이 작동하도록 하는 개정안을 발의했다. 하지만 여야 공방이 지속되자 김진표 국회의장은 초과 생산량은 3~5%, 쌀값 하락 폭은 5~8%로 의무 매입 기준을 완화했다.
이에 대해 정 장관은 "시장격리 기준을 3%로 하든, 3~5%로 하든 차이가 없고 결과는 동일하다"며 "강제 매입을 시행하면 최소 6%에서 최대 16%까지 (과잉 생산이) 늘어나게 돼 매년 초과 생산량 전부를 시장격리해야 한다"고 설명했다. 앞서 한국농촌경제연구원(KREI)은 양곡법 개정안이 통과되면 쌀 초과 생산량이 늘고, 이를 격리하는 데 연평균 1조443억원의 재정이 투입된다고 내다봤다.
정부는 양곡법 개정안이 식량 안보에도 부정적 영향을 미친다고 판단했다. 농가가 계속 쌀 위주 생산을 이어간다면 수입에 의존하는 밀과 콩 등 다른 주요 작물의 국내 생산을 늘리기가 어렵다는 것이다.
대통령이 야당을 거부권으로 압박하면서 정부·여당과 야당의 관계는 더 얼어붙을 전망이다. 특히 야당의 반발이 거세다. 박홍근 민주당 원내대표는 이날 오전 원내대책회의에서 "'농민의 생존권'조차 볼모로 잡고, '대통령 거부권'마저 정치적 수단화하는 윤석열 정권의 행태에 깊이 분노한다"고 말했다. 신정훈 민주당 의원은 대정부 질문에서 "윤 대통령이 거부권을 행사했다. 이제 국민이 대통령을 거부할 것"이라고 맹비난했다. 민주당은 용산 대통령실 앞에서 '쌀값 정상화법 대통령 거부권 행사 규탄 기자회견'을 열었다.
반면 김기현 국민의힘 대표는 페이스북을 통해 "양곡관리법은 궁극적으로 농민을 더욱 어렵게 할 '농가파탄법'이다. 재의요구권은 당연하다"고 맞받았다.
민주당은 앞으로 재의결 절차를 통해 '양곡관리법' 개정안을 다시 추진하겠다는 방침이다. 다만 현실적으로는 쉽지 않을 전망이다. 국회 재의결 절차에서는 재적 의원 과반 출석에 출석 의원의 3분의 2 이상이 찬성해야 하기 때문이다. 그동안 대통령이 재의를 요구한 안건이 국회 문턱을 다시 넘은 경우는 1988년 이후 단 1건에 불과했다는 점을 감안하면 통과 가능성은 높지 않은 상황이다.
[박인혜 기자 / 이희조 기자 / 위지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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