치유의 힘을 가진 정원을 꿈꾸며...제주도 핫한 신상카페 카페드노아
뛔미정원은 제주도 서귀포시 위미라는 시골 마을 한적한 과수원 길에 위치한다. 위미의 옛 지명인 뛔미, 뙤미에서 착안하여 정감 있는 느낌이 좋아 이름 짓게 되었다.
시내를 벗어나 전형적인 제주도 과수원들이 이어진 인적이 드문 좁은 길을 따라가다보면 지루함을 느낄 즈음 하얗고 모던한 유럽풍의 카페 건물을 마주하게 된다. 밖에서는 잘 보이지 않는 뛔미정원은 그 카페 드노아 건물 안쪽에 마치 비밀의 화원처럼 숨어있다.
약 2년 전 온통 감귤 과수원이었던 땅을 개간하여 화이트와 블랙 컬러의 체스판을 연상케하는 카페 건물을 짓고 유럽 정원의 느낌을 살린 사계 장미정원과 화이트 애나벨 수국정원, 제주도 바나나와 선인장이 있는 실내 온실정원, 붉은 동백길, 동산을 오르는 재미를 준 귤밭 과수원 오르막 오솔길, 가장 고도가 높아 위미 앞바다와 지귀도가 보이고 북쪽으로는 한라산 정상이 한눈에 들어오는 전망대, 옛 감귤 창고를 개조하여 빈티지한 느낌으로 오르간과 아코디언, 옛 물건들을 전시해 놓은 전망대 쉼터를 만들었다.
뛔미정원은 조경 업체의 손을 빌리지 않고 남편과 함께 직접 한 걸음 한 걸음 나아가듯 조금씩 시간을 들여 친구들과 함께 만들어왔고 지금도 생각이 흐르는 대로 마음이 닿는 대로 그림 그리듯 완성해가고 있는 과정 중에 있다.
이 정원을 만들게 된 이유가 무엇인지 궁금해하는 사람들이 많다. 특히 나는 의사라는 직업을 갖고 있기 때문에 그러한 질문을 많이 받았다. 사람들이 부러워하는 좋은 전문직이 있으면서 무엇 때문에 고되고 힘든 정원 일을 하고자 할까 라는 질문에 많은 고민과 과정이 있었음을 말하고 싶다.
문학을 좋아하고 예술적 삶을 꿈꾸며 넓은 세상에서 자유로운 인생을 희망하던 어린 시절의 나는 넉넉하지 않았던 가정 형편으로 쉼 없이 공부와 일을 해야만 했다. 학창 시절과 의과 대학에서의 공부, 병원에서 수련하는 기간을 거쳐 개원 의사로 진료하는 지금 이 순간까지 근 30년은 그야말로 젊은 시절을 회상하고픈 추억 한 자락 갖지 못한 채 책상과 컴퓨터 앞에서 앉아 있던 시간이었고 늘 긴장의 연속인 전쟁 같은 시기였다.
치료가 잘 되어 좋아지는 환자들을 보면서 보람을 느끼기도 하지만 환자를 치료할 때 느끼는 긴장감과 강박감 속에서 정작 나의 마음은 편안하지 않았다. 더구나 아픈 이들에게서 느껴지는 어둡고 우울한 에너지가 나에게도 감정적 전이를 일으키며 우울감은 커져만 갔다. 어떤 전환점이 필요한 시기였다.
우연한 기회에 시내 근처에 타운하우스 입주가 가능하다는 것을 알고 망설였다. 잔디 정원이 있는 이국적인 주택이었는데 무척 예쁘고 좋아 보였지만 손이 많이 가는 잔디 정원을 정신 없이 바쁜 내가 가꾸며 살 수 있을까? 무척 어려운 모험 같았지만 설레는 마음이 더 컸고 지금껏 해보지 않았던 초록의 세계로 도전해보기로 했다.
혹자는 말했다. 원예는 치유의 힘이 있음을. 우울증을 앓고 있던 어떤 이는 정원에서 일을 하면서 관심사를 자신의 외부로 돌리게 되었고 자신이 비교적 좋은 사람이고 무언가를 자라게 할 수 있는 능력을 가진 존재라는 걸 깨달아 가며 안정감과 자신감을 가지게 되었다고 했다
당시의 나는 복잡한 정신 세계를 벗어나 근심 없이 무언가에 집중하고, 숨이 찰 정도의 육체적 노동을 해보고, 노동 후 피로와 땀 냄새가 뒤섞인 공간에서 풀 내음을 맡으며 파란 하늘 파라솔 아래 의자에 앉아 물 한잔을 마시며 느끼는 한 순간의 휴식이 필요했던 것 같다.
하지만 야심 차게 시작한 정원 생활은 쉽지만은 않았다. 봄, 여름은 잡초와 벌레, 무더위와의 전쟁이었고 선선한 가을을 지나 겨울이면 낙엽과 죽은 가지 더미로 황량한 무언의 공간이 되어 버렸기 때문이었다. 초보 식물 집사는 무엇보다 어떤 시기에 어떤 꽃과 식물을 심어야 하고, 성장해서 아름다운 모습을 보여주기까지 얼마의 시간이 걸리는지 너무나 원예 지식이 없었다.
몇 년을 키워야 꽃을 볼 수 있는 식물을 지식 없이 마구 심어 대니 내가 상상하던 베르사이유 정원은 먼 나라 이야기만 같았지만 인터넷과 책을 뒤지면서 공부를 시작했고 얼마 지나지 않아 꽃 중의 꽃 장미와의 사랑을 시작하게 되었다. 장미는 주변에 흔하게 보이기는 하지만 병충해도 많고 영양분을 충분히 공급해 주어야 예쁘고 탐스러운 꽃들을 볼 수 있기 때문에 사실 잘 키우기가 오히려 어려운 꽃나무 중에 하나이다.
유럽 장미들은 꽃이 크고 촘촘하고 화사하면서 파스텔 계열부터 진한 컬러까지 다양하고 종류가 많아 너무나 매력적이다. 이차 개화를 하면서 가을까지 꽃을 보여주긴 하지만 5~6월 만개하는 그 순간의 시기를 위하여 일년 간 공을 들이고 마침내 그 결과물은 동화 속 정원처럼 너무나 설레이게 하고 행복하게 한다. 화이트 수국과 함께 어우러져 서로의 이쁨을 뽐낼 때는 몽환적인 느낌으로 세상 근심과 걱정을 잊어버리고 그 누구라도 입가에 미소를 머금지 않을 수 없다.
식물을 키워서 자라게 하고 결실을 맺게 만드는 창의적이고도 성실한 노동은 어깨를 누르는 일상 업무의 중압감을 벗어나게 했고 예민해진 정신을 안정감 있게 다독거려 주고 소소한 행복이 어떤 것인지를 깨닫게 하는 만들면서 치유의 힘을 보여주었다.
존경하는 타샤 튜더 동화 작가는 30만평 황무지를 정원으로 가꾸며 야생 꽃들과 함께 자연 속에서 살다 자연으로 돌아가셨고 그 곳을 찾는 많은 이들에게 큰 감동을 주었다. 나 혼자만이 느끼는 정원의 힘이 아닌 찾아오는 누구에게나 아름다움과 안도감을 느낄 수 있는 그런 정원을 만들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제주도는 날씨가 따뜻하니 우리의 상상을 실현해줄 수 있는 적합한 섬나라 일 것도 같았다. 남편과 상의 끝에 제주의 과수원과 자연을 접목한 꽃 정원을 만들어 보자 의기투합했다. 사실 제주도 땅값을 이미 너무 오를 만큼 오른 터였고, 적당한 땅을 찾기는 너무 어려운 작업이었다. 날씨도 따뜻한 곳이었으면 좋겠고, 무엇보다 바람이 세지 않았으면 했다. 시내와도 너무 떨어지지 않아야 진료를 마치고 빨리 정원 일을 둘러 볼 수 있을 것 같았다.
우리에게 자본은 적으니 노동력으로 부딪히자 했지만 사실 일 할 수 있는 시간은 너무나 부족했고, 원예 일의 경험이 적은 탓에 어려운 일은 너무나 많았다. 더위에 어지러워서 쓰러질 것 같은 땡볕에도 준비 안 된 땅을 파고 또 파냈다. 길고 긴 제주도 장마 기간 동안 꽃은 녹아내리고 땅은 질퍽이며 잡초는 너무나 신나게 자라났다. 마구 꽃을 심으면 될 줄 알았던 초보 원예사들은 호된 자연의 가르침 앞에서 좌절과 희망을 번갈아 느껴가며 조금씩 성장해갔다.
남편의 친구들과 나의 친구들은 그러한 과정에서 정말 빼놓을 수 없는 중요한 존재였다 시간을 쪼개어가며 두 손 두 발 걷어 부치고 도와준 친구들 및 조력자들을 떠올리며 가벼운 목례를 보낸다. 같이 기뻐하고 같이 슬퍼하면서 흙을 다지고 길을 내고 화단을 꾸미고 돌을 쌓고 그 여정을 걸어오면서 우리의 주제는 명확했다.
여느 관광지 꽃축제에 광활하게 펼쳐진 꽃들보다는 사계절 꽃이 피고 지고 벌과 나비와 사람이 함께 어우러지는 자연주의 정원을 만드는 것이었다. 잡초가 많아서 사람의 손이 더 가고 계절 꽃은 때가 되면 사라지고 다시 피어나기 때문에 정원사들은 그야말로 엄청난 땀과 노력을 기울여야만 하지만 그러나 어려움 속에서 느끼는 만족감은 더 크리라는 것을 믿어 의심치 않는다.
인생이 흔들릴 때, 병이나 혹은 지독한 업무 스트레스가 있을 때 가끔은 아무 생각 없이 식물을 가꾸어보자. 머리는 쉬어두고 손과 몸으로 부딪히며 성취감을 얻어보자. 야외에서 시간을 보낸다는 것은 햇빛에 노출되는 시간이 길어진다는 이야기이고, 우리에게 필요한 비타민D와 세로토닌 호르몬의 생산을 늘릴 수 있을 것이다. 세로토닌은 행복감을 주고, 기분조절에 영향을 미친다. 또 고된 노동은 불면증에 시달리는 우리에게 때로는 가장 좋은 약이 되기도 할 것이다.
남편과 나는 오늘 아침도 일찌감치 서로의 일자리를 찾아 부지런히 집을 나선다. 우리는 어느 정도는 몸을 혹사하고 있으나 그것이 그리 기분 나쁜 통증은 아니다. 물론 일은 좀 줄여야겠지만 미친 듯한 화사함과 싱그러움으로 우리를 기다리는 정원이 있는 한 매일 길을 나설 것이고 꽃과 나무에게서 얻은 긍정의 에너지를 또다시 우리가 사랑하고 보여주고 싶은 이들에게 나누기 위한 긴 여정을 지속할 것이다.
사계절 아름다운 꽃이 피고 지는 정원, 장미와 수국, 야생화가 넘쳐나는 파스텔 컬러의 제주 정원을 꿈꾸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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