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정부질문서 '양곡법 거부권' 후폭풍…野 "이제 국민이 대통령 거부할 것"
[서어리 기자(naeori@pressian.com)]
윤석열 대통령이 야당이 주도한 양곡관리법 개정안에 대해 거부권을 행사해 파장이 이는 가운데, 야당과 정부·여덩이 국회 대정부질문에서 양곡법 문제를 두고 한 치 물러섬 없는 대치전을 벌였다.
양곡관리법을 최초로 발의한 신정훈 의원은 4일 오후 국회에서 열린 대정부질문에서 '양곡관리법은 사전 생산 조정을 토대로 가격을 안정시키자는 취지의 법안으로, 사후 시장 격리는 극히 예외적일 것'이라며 법안의 필요성을 주장했다. 반면, 정부를 대표해 답변자로 나선 한덕수 총리는 '양곡관리법 내 강제 격리 조항이 있는 한 야당이 기대한 선제 조정은 절대 일어날 수 없을 것'이라고 맞받아 치며 팽팽하게 대립했다.
전날 양곡관리법 거부권 행사에 반대하며 삭발식을 진행한 신 의원은 "윤석열 대통령은 폭락한 쌀값을 정상화해달라는 절박한 농심을 짓밟고 끝내 양곡관리법 거부권을 행사했다"면서 "입법권에 대한 중대한 도전을 넘어서 국민의 삶과 쌀값 정상화에 대한 포기 선언"이라고 규탄했다.
신 의원은 "윤 대통령이 끝내 국민과 민생을 거부했으니 이제 우리 국민이 대통령을 거부할 것은 자명한 일"이라며 "오죽했으면 후쿠시마 멍게는 사주고 우리 쌀은 못 사주냐 그런 한탄이 있겠느냐"고 했다.
한덕수 총리는 답변대에 서서 "희생과 헌신을 다해온 우리 농업과 쌀 농업에 대해서 정부의 의무를 다하는 것이 정당한 도리라고 생각한다"는 신 의원의 지적에 대해 "가격을 지지하는 정책, 그것만으로는 우리 농민에게 충분히 도움이 되지 않는다"라며 "오히려 그 반대의 효과가 일어날 수 있다는 것을 정부는 걱정하고 있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한 총리는 윤 대통령이 양곡관리법을 두고 '남는 쌀 강제 매수법'이라고 말한 이유에 대해 "전문 연구소가 깊은 연구를 했다. 연구소 계산에 의하면 쌀의 초과 생산량은 평균 11.3%에 이른다"면서 "강제매수라는 제도가 매년 있게 되는 이런 결과를 초래하고, 그 얘기는 농민들이 가지고 있는 농지 면적을 줄여야 할 아무 인센티브가 없다(는 것)"라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이러한 정책은 농민을 진정으로 위하는 정책이 아니"라고 주장했다.
이에 신 의원은 "왜곡된 자료", "발생하지 않을 이야기"라고 반발하며 농림축산식품부의 '역대 정부 쌀 생산' 통계자료를 제시했다. 그는 "이명박 정부에서는 생산 조정만으로도 과잉 생산이 완전히 해결됐다"며 "사전 생산 조정을 통해서 사후적인 과잉 생산을 완전히 제거한, 이것이 제거하자는 것이 양곡관리법의 취지"라고 강조했다.
이에 한 총리는 "저한테 미리 이거(자료)를 주신 적도 없고 이 문제를 가지고 검토한 적도 없다. 제가 지금 가지고 있는 자료는 우리가 평소에 가장 전문가들이 모여 있다고 생각하는 (연구소의) 자료"라며 즉답을 피했다. 그러면서 "의무적으로 수량적으로 제한하는 제도는 그 어떤 가격 제도보다도 강하다"면서 "강제 격리가 있는 한 선제 조정은 안 일어난다"고 거듭 강조했다.
한 총리는 그러면서 "강제로 이런 수매를 하게 함으로써 농민들이 충분히 생산을 조정할 수 있는 정책을 제대로 마련하지 못한다면 그것은 정말 열등한 정책이다, 저희는 그렇게 생각한다"고도 했다.
여당은 정부 엄호에 나섰다. 국민의힘 장동혁 의원은 "양곡관리법도 처음에는 어려운 쌀 농가를 돕겠다는 선의에서 시작되었을 것이지만 정치적 이해가 엮이고 덧칠해지면서 악법 중에 악법으로 변질되고 말았다"며 "야당이 169석으로 밀어붙인 이 법을 지금 이대로 시행하도록 했다면 쌀 과잉생산 구조는 더욱 고착화되고 농업의 경쟁력은 급속도로 후퇴하며 국가 재정에도 큰 부담이 되었을 것이다. 따라서 이 법은 폐기되어야 마땅하다"고 주장했다.
더불어민주당은 거부권 행사로 인해 국회로 되돌아온 양곡법에 대해 재의결을 추진하겠다고 밝힌 상태다. 박홍근 민주당 원내대표는 이날 기자들과 만나 "대통령 거부권 행사에 대해 헌법과 법률이 정한 절차대로 대응하겠다"며 "정부로부터 재의요구된 법률안이 이송되면 재표결에 임할 것"이라고 밝혔다. 박 원내대표는 "이 과정을 통해 독선적 통치행위와, 여당이 얼마나 '용산 출장소', '거수기'인지 국민과 농민이 지켜보게 할 것"이라고 했다.
한편 한 총리는 전날 '윤석열 대통령이 한일 정상회담을 통해 가장 큰 돌덩이를 치웠다'는 자신의 발언에 대해 철회나 사과를 할 뜻이 없음을 분명히 했다.
한 총리는 민주당 윤관석 의원이 "전날 답변 과정에서 '돌덩이를 치웠다'고 한 부분은 상당히 부적절해서 (강제동원 피해) 당사자와 국민이 상처를 받았고, 이에 대해 유감을 표명해야 할 것"이라고 지적하자 "의도를 곡해하지 말라"면서 "돌덩이라고 한 것은 한일 간의 관계를 극도로 악화시킨 문제를 해결하고 치우려 했다는 것이다. 제가 어떻게 국민을 돌덩이라고 얘기할 수가 있느냐"고 했다.
이에 본회의장 곳곳에서는 고성과 야유가 터져 나왔고, 윤 의원은 "대단히 오만한 태도"라면서 "역사 앞에 겸손해야 한다"고 질타했다.
한 총리는 그러나 물러서지 않고 추후 답변에서도 "(전날 발언은) 한일 간 최악의 관계를 가져온 기본적 요인, 어려운 문제를 해결했다는 차원에서 제가 그런 표현을 쓴 것이고 그것이 우리 징용 피해자나 국민을 지칭했다거나 한 것은 전혀 사실이 아니다"라며 "저는 그렇게 해석될 수도 없다고 생각하지만 여러 의원님께서 그렇게 생각하시는 분들이 계셨다는 것이 저로서는 참 상당히 안타까운 일"이라고 했다.
한편 이날 본회의장에서 장동혁 의원은 양곡관리법 반대 입장을 설명하는 도중 장애 비하적 표현인 '외눈박이 정책'이라는 말을 하기도 했다. 장 의원은 "국정이 선의에 기대 운영될 수 없다는 것을 잘 알고 있다. 한 편만을 바라본 외눈박이 정책은 다른 쪽에는 차별이고 불공정이라는 것을 경험을 통해 절감했다"고 말했다.
지난 2020년 곽상도 전 국민의힘 의원은 "한쪽 눈만 감고, 우리 편만 바라보고, 내 편만 챙기는 외눈박이 대통령이 되어서는 안 됩니다"라는 글을 썼고, 이에 장애인 5인이 지난 2021년 4월 장애인의 날을 맞아 소송을 제기하기도 했었다. 법원은 지난해 4월 '외눈박이' 등 장애 특성을 비하할 목적으로 사용한 표현은 혐오표현에 해당되긴 하지만, 손해배상을 할 정도의 책임은 인정할 수 없다고 판시했다.
[서어리 기자(naeori@pressi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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