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해 73년 만에 세상으로 …진주 국민보도연맹사건 유해 발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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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3년 동안 이름 없는 산에서 아무도 모르게 묻혀 계신 것을 생각하면 가슴이 아픕니다. 이번에는 아버지 유해를 찾기를 바랍니다."
한국전쟁 전후 진주 민간인 피학살자 유족회 정연조 회장은 4일 경남 진주시 명석면 주민센터에서 열린 '진주 국민보도연맹 사건' 피해자 유해 발굴 조사 중간 보고회에서 이같이 말했다.
이번 발굴은 2기 진실·화해를위한과거사정리위원회가 1950년 7월께 진주시 명석면 관지리 일대에서 사망한 민간인들의 유해를 50여 구로 추정하고 진행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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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3년 동안 이름 없는 산에서 아무도 모르게 묻혀 계신 것을 생각하면 가슴이 아픕니다. 이번에는 아버지 유해를 찾기를 바랍니다.”
한국전쟁 전후 진주 민간인 피학살자 유족회 정연조 회장은 4일 경남 진주시 명석면 주민센터에서 열린 ‘진주 국민보도연맹 사건’ 피해자 유해 발굴 조사 중간 보고회에서 이같이 말했다.
중간 보고회에서는 유해 발굴을 담당한 동방문화재연구원 이호형 원장이 발굴 과정과 성과를 설명했다.
이번 발굴은 2기 진실·화해를위한과거사정리위원회가 1950년 7월께 진주시 명석면 관지리 일대에서 사망한 민간인들의 유해를 50여 구로 추정하고 진행했다. 조사 범위는 225㎡ 정도다.
유해는 지난달 27일부터 나오기 시작했다. 앞서 22일 개토제 이후 발굴을 시작한 지 6일만 이다. 불과 20㎝ 아래 땅속에서 70년 이상 억울한 죽임을 당한 채 묻혀 있었다.
발굴된 유해는 두개골 2점과 허벅지 뼈, 정강이뼈 등 80여 점으로 유해로는 20구 정도로 추정된다. 탄피와 탄두도 산발적으로 나왔다. 단추 칫솔 틀니 동전도 곳곳에서 출토됐다.
발굴이 진행된 규모는 길이 510㎝, 너비 210~240㎝, 깊이 최대 40㎝ 평균 20㎝ 정도다. 구덩이 안에 매장된 유해와 함께 이 구덩이를 덮은 복토층에서도 유해가 나왔다.
허벅지 뼈와 정강이뼈 등은 일정한 너비에서 2중, 삼중으로 중첩돼 나왔다. 완전한 형체의 유해와 정형성을 보이는 유해는 없다.
유해가 구덩이 내부 공간에 두세 겹 포개진 상태로 매장된 점, 정형성이 없는 점, 세워진 유골이 없이 지면에 편평하게 놓인 점으로 보아 주변의 유해를 이차적으로 이 구덩이에 모아 매장한 것으로 판단했다.
이후 조사는 구덩이와 유해·유품 위치에 대한 기록을 작성하고 현재까지 노출된 유해와 유품을 수습하고 추가 발굴을 할 계획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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