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포커스] 이라크 전쟁 20주년, 비합리성이 낳은 비극
고아 되고, 인간성 파괴
도박 같은 선택이 남긴 상처
지난달 이라크 전쟁이 일어난 지 20년이 됐다. 2001년 9·11테러 직후 조지 W 부시 미 공화당 정부는 아프가니스탄에 숨어 있던 알카에다의 우두머리 오사마 빈라덴의 신병을 원했으나 탈레반 정권은 거절했다. 미국은 바로 테러와의 전쟁을 시작해 탈레반을 몰아냈다. 이어 이라크의 사담 후세인 정권이 알카에다를 지원하고 대량살상무기를 보유한다며 두 번째 전쟁을 외쳤다.
뒷받침할 증거는 없었다. 아랍 사회주의를 내세운 후세인 독재 정권은 급진주의 테러단체 알카에다와 경쟁 관계였다. 유엔 무기사찰단은 이라크에서 대량살상무기를 못 찾았다고 공식 발표했다. 프랑스가 개전에 적극 반대하고 독일과 캐나다도 비판적이었다. 중동의 대표 우방국 사우디아라비아 역시 이라크 침공은 지옥문을 여는 것이라며 말렸다. 백악관 국가안전보장회의에서 '알카에다의 공격을 받았다고 이라크를 폭격하는 건 일본의 진주만 공격을 받고 멕시코를 침공하는 것과 같다'는 얘기까지 나왔다.
그런데도 딕 체니 부통령과 도널드 럼즈펠드 국방장관과 같은 네오콘은 듣지 않았다. 세계 초강대국인 모국의 심장부를 강타당한 절체절명의 위기에서 벗어나려면 웬만한 위험은 감수해야 한다고 했다. 미국의 건재를 과시하고 애송이 악당 무리에게 교훈을 가르치려면 순진해 빠진 유엔이나 유럽의 의견 따위는 우스웠다. 이들 매파에겐 전쟁을 안 했을 때의 손실이 이득보다 훨씬 컸다. 이라크가 산유국이라서 국제 원유시장이 요동치겠지만 잠시 감수해야 할 손해일 뿐이었다. 네오콘은 속전속결이란 과신에 치우쳤다. 복수심과 애국심에 불타던 일반인은 프랑스가 괘씸했다. 부시 대통령의 지지 기반인 텍사스주에선 프렌치프라이를 프리덤프라이로 부르자고 요란을 떨었다. 텍사스주의 아웃라이어, 진보 도시 오스틴의 프랑스 골동품 가게엔 시 외곽의 목장 주민이 몰려와 스프레이를 뿌려댔다. 세계 곳곳과 미국 대학가에서 거센 반전 시위가 이어졌으나 부시 정부는 2003년 전쟁을 감행했다.
이라크 전쟁은 혼돈의 판도라 상자를 열어젖혔다. 미국은 이라크에서 전후 안정화에 실패해 잔혹한 종파 분열을 부추겼고 결국 극단주의 테러조직 ISIS란 괴물을 키웠다. 일당 독재 시절의 인력을 무차별 숙청하면서다. 유능한 인재가 후세인의 정당인 바아트당에 가입하는 일은 강제에 가까웠으나 일반 평당원까지 처벌했다. 후세인과 집권층이 수니파 출신이라서 인구의 35%인 수니파가 잠재적 숙청 대상이었다. 2006년에 들어선 누리 알말리키 시아파 정부는 미국의 종파주의 정책을 적극 활용했다. 시아파 정부의 탄압을 피해 수니파 주민의 절반인 450만여 명이 이웃 나라로 피하거나 국내에서 고향을 등져 난민으로 떠돌았다. 미군을 상대로 자살폭탄 테러를 벌이던 수니파 무장세력은 시아파 민병대와도 싸웠다.
미국에서 버락 오바마 정부가 들어서자 2011년 이라크 주둔군이 철수했고 이라크는 더 깊은 수렁에 빠져들었다. 형기를 마치고 출소한 후세인 정권 시기의 군경은 옛 조직원을 모은 후 수니파 극단주의 세력과 손을 잡았다. 알카에다 이라크 지부로 출발해 전 세계를 공포로 몰아넣은 빌런 ISIS가 태동한 것이다. 시아파 정부의 차별과 폭압에 진저리가 난 수니파 원로 그룹은 ISIS의 부상과 이라크의 분열을 방관했다.
이라크 전쟁이 일어난 후 20년간 이라크인 27만명, 미국인 8000명 이상이 전쟁과 테러로 목숨을 잃었다. 목숨을 구했어도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로 자살하거나 평범한 일상을 되찾지 못했다. 미군뿐 아니라 전쟁 고아가 된 이라크 아이들, 아부그라이브 교도소에서 미군에게 인간성을 짓밟힌 이라크 포로도 마찬가지다. 비합리적 인간의 도박 같은 선택이 낳은 참담한 비극의 결과다.
[장지향 아산정책연구원 중동센터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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