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동정담] 징조와 트리거
개미굴이 큰 둑을 무너뜨린다는 말이 있다. 사소해 보이는 것이 엄청난 위기를 촉발하는 단초가 될 수 있다는 의미다. 사마천의 '사기'와 '한비자'에 기록된 다음 일화도 "미세한 움직임을 보고 다가올 일을 안다"는 뜻의 '견미지저(見微知著)' 메시지를 전한다. 상나라 대부 기자는 주왕이 젓가락을 상아로 만들라고 명한 것을 듣고 망국의 징조를 봤다. 그는 이렇게 추론했다. "상아 젓가락을 쓰게 되면 그릇과 술잔도 비싼 옥으로 만들라고 할 것이다. 옥으로 만든 잔과 상아 젓가락은 하찮은 음식과 어울릴 수 없다. 옥그릇에 고기를 담을 것이고 옥잔은 귀한 술로 채울 것이다. 그다음엔 비단옷을 입을 것이고 궁궐을 화려하게 짓고 싶어질 게 뻔하다. 왕의 욕심이 날로 커진다면 백성은 궁핍해지고 나라는 어지러워질 것이다." 덜컥 겁이 난 그는 즉시 떠났다.
허버트 하인리히는 1920년대 보험회사 경영자였다. 그는 보험금 지급을 줄이기 위해 산업재해의 원인을 연구했다. 수만 건의 산업재해를 분석한 그는 '1대 29대 300' 법칙을 발견했다. 큰 재해가 발생했다면 그전에 똑같은 원인으로 29번의 작은 재해가 발생했을 것이고 운 좋게 재난을 피했다고 해도 같은 원인으로 부상을 당할 뻔한 사건이 300번 있었을 것이라는 가정이다. 그의 주장이 맞는지는 단언할 수 없다. 하지만 그가 말하고자 하는 뜻은 귀담아 들을 만하다. 어떤 일이든 큰 문제가 생기기 전엔 크고 작은 징후가 있게 마련이라는 것이다. '견미지저'와 일맥상통하는 메시지다.
한미정상회담을 코앞에 두고 김성한 전 국가안보실장이 사퇴했다. 상식적으로 납득하기 어려운 '보고 누락'이 빌미가 됐다는데 이에 대해 한 여권 인사가 이런 말을 했다고 한다. "등짐 위에 깃털 하나가 떨어져 낙타가 주저앉았다면 그 이유를 깃털 하나로만 설명할 수는 없다." 보고 누락은 단지 트리거(방아쇠)라는 이야기다. 그렇다면 다행이겠지만 무슨 징조라면 경계해야 한다. 노자는 "사소한 것을 보는 것이 밝음"이라고 했다. 국정의 난맥상은 없는지 돌아봐야 할 때다.
[장박원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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