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中 반도체 싸움에 등터지는 삼성·SK하이닉스… 중국 반격에 첩첩산중

최지희 기자 2023. 4. 4. 17: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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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 기업들 사업 불확실성 커져
지정학적 리스크에 업황 악화 우려
“수요까지 움츠러들 수도”
중국 시안에 있는 삼성전자 낸드플래시 반도체 공장 내부./삼성전자 제공

중국이 미국 최대 메모리 반도체 기업을 상대로 제재를 시작하면서 미국과 중국 사이에 낀 국내 기업들의 사업 불확실성이 커졌다. 중국의 반격이 추후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로 확대될 것이라는 전망과 함께 가뜩이나 침체된 메모리 시장이 지정학적 갈등으로 더 얼어붙을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4일 업계에 따르면 중국의 마이크론 규제로 미중 간 반도체 공급망 싸움에 불이 붙을 전망이다. 중국과 미국에서 모두 사업을 벌이고 있는 국내 반도체 업체들은 사업 불확실성이 커져 잠재 수요 마저도 쪼그라들 수 있다고 보고 있다.

업계 관계자는 “중국의 마이크론 제재는 미국 주도로 재편되는 반도체 질서에 대해 ‘우리도 뭔가 할 수 있다’는 걸 보여준 것”이라며 “마이크론 제재로 국내 업계의 사업 불확실성이 더 커졌다고 봐야 한다”고 말했다. 일각에서는 세계 3위 메모리 기업의 중국 판매가 막히면 국내 업체들이 반사이익을 얻을 수 있다는 해석도 나왔으나, 업계의 시각은 정반대다. 시장의 불확실성이 커지면 오히려 발생할 수요도 움츠러들게 된다는 것이 업계의 중론이다.

앞서 중국 국가사이버정보판공실(CAC) 산하 인터넷안보심사판공실은 지난달 31일 마이크론에 대한 사이버 보안 조사에 돌입했다. 마이크론에 중국의 안보를 위협할 요인이 있는지 살펴보겠다는 취지다. 마이크론은 미국의 반도체 공급망 내재화에 따른 최대 수혜 기업으로 꼽혀왔다. 중국 현지 매체는 “중국이 마이크론을 첫 규제 대상으로 꼽은 건 미국발 규제로 가장 많은 이득을 봤기 때문”이라고 보도했다.

이번 조치에 마이크론은 성명을 내고 “중국 CAC에 전적으로 협력하고 있으며 회사는 원칙에 부합하는 사업을 충실히 이행하고 있다”며 제품의 안전성을 보장한다는 입장을 밝혔다. 중국이 미국 반도체 기업을 특정해 조사에 나선 건 이번이 처음이다. 업계는 중국의 압박이 마이크론에 대한 조사에서 그치지 않을 것으로 보고 있다. 차이나모닝포스트(SCMP)는 “미국을 따르면 어떻게 되는지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에 보여주는 경고”라고 해석했다.

삼성전자 텍사스주 테일러시 반도체 공장 공사 현장. /AFP

문제는 미국쪽 상황도 국내 기업에 부담으로 작용하고 있다는 점이다. 미국은 한국, 일본 등 동맹국을 상대로 대중(對中) 규제 동참과 미국 내 투자 확대를 주문하고 있다. 하지만 막상 미국이 투자 인센티브로 제시한 보조금 신청 조건은 민간 기업이 따르기에 부담스러운 조항이 많다. 반도체법 가드레일 조항에 따르면 미국 보조금을 받으면 10년간 중국에서 생산 시설을 5% 이상 확장할 수 없다. 이를 어기면 보조금 전체를 회수 당한다. 게다가 민감한 내부 자료로 여겨지는 공장 가동률과 종류별 웨이퍼(반도체 기판) 생산 능력, 예상 수율 등을 적은 엑셀 파일을 제출하도록 요구했다. 업계 관계자는 “영업 기밀에 속하는 정보가 외부에 유출되면 나중에 어떤 방식으로든 회사가 피해를 입을 가능성이 크다”고 했다.

박정호 SK하이닉스 부회장도 지난달 29일 정기 주주총회에서 미국의 요구 조건과 관련해 “엑셀을 요구하고 신청이 너무 힘들지만 그래도 많이 고민해보겠다”며 “우리는 패키징이니까 전체 수율 데이터가 나오지 않기 때문에 (생산)공장을 지어야 하는 입장보다는 약간 덜 할 수 있다”고 말했다. SK하이닉스는 150억달러(약 20조원)를 투입해 미국 내 첨단 반도체 패키징 공장 신설을 준비하고 있다.

미국에 파운드리(반도체 위탁생산) 공장을 짓고 있는 삼성전자는 신청 마감 기한까지 협상을 이어갈 것으로 보인다. 이정배 삼성전자 메모리사업부장(사장)은 지난달 15일 열린 삼성전자 정기 주주총회에서 “미국 반도체법의 세부 시행령이 발표된 이후 회사에 미치는 영향과 대응 전략을 다각도로 분석하고 있다”고 말했다.

여기에 반도체법과 별개로 작년 10월 7일 상무부가 발표한 수출통제는 여전히 국내 업계의 숙제로 남아있다. 미 상무부의 대중(對中) 반도체 수출통제 규제에 따르면 18㎚(나노미터·10억분의 1m) 이하 D램, 128단 이상 낸드플래시, 16㎚ 이하 로직칩을 생산할 수 있는 장비와 기술을 중국에 들일 경우 상무부의 별도 허가를 받아야 한다. 사실상 중국 반도체 공장 내 첨단 장비 업그레이드가 막혀 기업들은 중국에서 차세대 반도체를 만들 수 없게 된다.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는 올해 10월까지 1년간 규제 유예를 받았으나, 업계는 미국의 유예 조치가 길게 지속되지 않을 것으로 예측하고 있다. 미 정부의 제재 유예 조치가 극히 이례적인 일인 만큼 유예가 수년 이상 지속되지 않을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다. 삼성전자는 중국 시안에서 낸드플래시와 쑤저우에서 패키징 공장을 운영 중이고, SK하이닉스는 우시에서 D램, 다롄에서 낸드플래시를 생산하고 있다. 중국 시장이 큰 데다 전후공정이 엮여 있는 반도체 공장 특성상 현지 설비를 타국으로 옮기기도 쉽지 않아 업계는 최적의 운영 방안을 찾기 위해 고심하고 있다.

업계 관계자는 “시장 논리가 아닌 지정학적 요인으로 사업을 결정해야 하는 상황이 이어지면서 고민이 커지고 있다“며 “공급망이 지정학적 리스크에 좌우되는 것 자체가 시장의 불확실성을 키워 업황까지도 악화할 가능성이 높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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