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경춘추] 과학, 즐기고 계십니까?
필자에게 연구는 천직(天職)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고백하건대 연구의 대상인 과학을 진심으로 사랑해 왔다. 동시에 치열한 도전의 목표였기에 순수한 즐거움의 대상으로는 여기지 못하고 살아왔다. 미국에서 박사후연구원으로 지내던 시기의 일화다. 어느 날 동료가 캠퍼스에서 열리는 과학 페스티벌에 가보겠느냐 물었다. 자녀와 친구들까지 함께 데려와 즐기는 축제라기에 호기심이 일었다. 직접 가서 보니, 축제 속 참가자들에게 과학은 즐거움 그 자체였다. '진정한 과학 선진국의 모습이 바로 이런 것 아닐까' 생각했던 30여 년 전 그날의 기억이 여태 생생하다.
많은 선진국들이 과학문화 확산에 공을 들인다. 과학을 어렵고 낯선 것에서 누구나 친해질 수 있는 즐길 거리로 인식을 바꾸기 위해서다. 미국은 해마다 '세계과학축제'를 포함해 각 주(州)의 주요 도시에서 과학축전을 연다. 유럽에서도 과학은 연구실 밖으로 나와 국민과 함께한다. 가장 역사가 긴 영국 에든버러 과학축제에서는 전 세계 시민들이 함께 과학퀴즈를 풀고 토론하며 가족·연인·친구들과 소중한 추억을 쌓는다.
어린이와 청소년에게는 과학축제가 곧 미래 과학자의 꿈을 심어주는 교육의 장이 된다. 작년 우리나라 초등학생 장래 희망 순위에서 과학자는 운동선수, 의사, 유튜버의 한참 아래인 17위에 머물렀다. 2015년 8위, 2019년 13위로 순위가 계속 떨어지는 추세라니 마음이 더욱 무겁다. 그래서 아이들이 과학을 멋지고 중요한 것으로 인식할 수 있는 과학문화 경험이 필요하다. 작년 가을 연구소의 문을 열고 대중 대상의 과학탐방 프로그램을 진행했는데, 그 어떤 행사보다 반응이 뜨거웠다. 전국의 연구기관과 대학들이 과학 꿈나무 씨앗을 심는 마음으로 다양한 과학문화 프로그램을 제공하기를 기대해 본다.
과학은 어른들에게도 친숙하고 흥미로워야 한다. 나이나 교육 수준에 상관없이 국민 모두가 과학에 관심을 가지는 성숙한 과학문화가 국가 기술경쟁력의 근간이 된다. 수년 전부터 민간의 예술재단과 함께 새로운 작업을 시도 중이다. 바로 과학자와 예술가가 함께 자연 현상을 해석하여 예술 작품을 만들고 전시전을 여는 것인데 호응이 제법 뜨겁다. 바이러스, 기후 변화와 같은 재난도, 앞으로 도래할 AI 시대에서의 인간성에 대한 고찰도 예술의 옷을 입으면 대중에게 가까이 다가설 수 있다. 예술가와 협업하는 과정에서 과학자가 새로운 시각과 아이디어를 얻을 수 있는 것은 덤이다.
생텍쥐페리의 '어린 왕자'에 "배를 만들게 하고 싶다면 배 만드는 법을 가르치기 전에 바다에 대한 동경심을 키워주라"는 구절이 있다. 과학의 매력을, 그 내면의 아름다움을 널리 알리는 것이 미래 과학 인재를 키우고 과학기술계를 향한 국민의 지지를 확보하는 가장 좋은 방법이라 믿는다. 과학의 달 4월, 국민 모두의 삶 안에서 과학이 널리 향유되는 일상을 기대한다.
[윤석진 KIST 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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