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범 재판소에 선 ‘코소보의 조지 워싱턴’···코소보 전 대통령 재판 시작

선명수 기자 2023. 4. 4. 16: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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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소보 분리·독립운동 과정서 ‘해방군’ 지휘
전쟁 당시 살인·학대·고문 등 총 10개 혐의
“나는 죄 없다” 첫 재판서 혐의 전면 부인
하심 타치 전 코소보 대통령이 3일(현지시간) 네덜란드 헤이그에서 열린 코소보특별재판소의 첫 재판에 출석하고 있다. 로이터연합뉴스

잔혹한 ‘인종 청소’가 벌어졌던 1998~1999년 코소보전쟁 당시 세르비아군에 맞서 게릴라 부대인 코소보해방군(KLA)을 이끌었던 하심 타치 전 코소보 대통령(54)에 대한 전범 재판이 3일(현지시간) 시작됐다.

AP·로이터통신 등에 따르면 이날 네덜란드 헤이그 소재 코소보특별재판소에서 살인과 학대, 고문 등 10개 혐의로 기소된 타치 전 대통령과 전직 코소보 국회의장 2명을 포함한 측근 3명에 대한 첫 재판이 열렸다.

이들은 1998~1999년 당시 신유고연방의 자치주였던 코소보가 세르비아에서 분리·독립을 시도하는 과정에서 KLA를 이끌며 살인과 고문, 납치 등에 가담한 혐의를 받는다.

코소보 전쟁은 1989년 유고연방 해체 과정에서 세르비아의 슬로보단 밀로셰비치 대통령이 코소보의 자치권을 박탈하자 1998년 3월 코소보 분리주의 반군이 세르비아 경찰을 공격하며 시작됐다.

세르비아군이 진압에 나서면서 코소보 주민의 90%를 차지하는 알바니아계가 주로 ‘인종 청소’로 희생됐다. 이에 격분한 알바니아계가 KLA에 대거 참여하면서 전쟁이 확전됐다. 1년 넘게 이어진 내전은 북대서양조약기구(나토)의 무력 개입으로 1999년 끝났고, 코소보는 2008년 분리·독립을 선언했다.

3일(현지시간) 네덜란드 헤이그 소재 코소보특별재판소에서 하심 타치 전 코소보 대통령을 비롯한 피고인 4명에 대한 전범 재판이 열리고 있다. AP연합뉴스

이날 검사 측은 피고인들이 코소보 전역에서 반대 세력과 세르비아인, 집시 등 소수 민족을 열악한 시설에 구금했고, 그 중 102명을 살해했다고 밝혔다. 알렉스 휘팅 검사는 “KLA는 정치적 반대자를 포함해 (세르비아의) 협력자 등을 표적으로 삼는 매우 명확하고 명시적인 정책을 가지고 있었다”며 “사실 희생자 대부분은 동료 코소보 알바니아인이었다. 그들이 ‘반대자’라고 여기는 사람들을 제거하려는 의지가 결국 자신의 집단을 희생시켰다”고 밝혔다.

피해자 측 변호인은 교사와 경찰, 농부, 건설노동자 등 피해자들이 총구로 위협을 받아 본인의 의사와 무관하게 KLA에 끌려간 것이며, “이들의 삶은 단 하루로 인해 완전히 바뀌거나 끝났다”고 말했다.

타치 전 대통령을 비롯한 피고인들은 혐의를 전면 부인했다. 2년 간 수감 생활을 한 끝에 법정에 선 타치 전 대통령은 “공소제기 내용을 이해했고, 나는 전혀 죄가 없다”고 말했다. 그는 코소보 전쟁 당시 무력 대응은 세르비아의 압제에서 벗어나기 위한 ‘정당한 투쟁’이며 자신은 결백하다는 입장을 고수해 왔다.

타치 전 대통령은 코소보의 독립 선언 후 초대 총리에 올랐고, 2016년에는 대통령에 선출됐다. 그러나 독립 전 해방군의 지도자였던 그가 다른 게릴라들과 함께 세르비아인, 세르비아와 내통한 코소보 주민을 겨냥해 조직적인 전쟁 범죄를 저질렀다는 내용이 2010년 유럽평의회 보고서를 통해 공개됐다.

전쟁 당시 KLA가 세르비아계 주민들의 장기를 적출해 밀매하는 등 전쟁범죄를 저질렀다는 의혹도 제기됐다. 다만 장기 적출 및 밀매는 타치 전 대통령의 기소 내용에 포함되지 않았다.

코소보는 유럽연합과 러시아의 계속된 압박으로 2015년 KLA 지도자들의 전쟁범죄를 조사하기 위한 특별재판소를 설치했다. 특히 세르비아의 맹방인 러시아는 코소보가 자체적으로 전범재판소를 설치하지 않으면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에서 별도의 전범 재판소를 세워 가동하겠다고 여러 차례 코소보를 압박해 왔다.

다만 코소보 내에서 KLA가 독립을 이끈 ‘해방군’이자 ‘영웅’으로 대접받는다는 점을 고려, 증인 보호 차원에서 특별재판소는 코소보가 아닌 헤이그에 설치됐다.

2일(현지시간) 코소보 수도 프리슈티나에서 하심 타치 전 코소보 대통령을 지지하는 시민들이 시위를 벌이고 있다. 이들은 타치 전 대통령과 코소보해방군을 세르비아의 ‘독립 영웅’이라고 주장했다. 로이터연합뉴스

타치 전 대통령은 2020년 11월 특별재판소가 그를 기소하자 사임을 발표했다. 이전까지 그는 미국 등 서구권 정상들과 긴밀한 관계를 유지했으며,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은 부통령 시절 그를 ‘코소보의 조지 워싱턴’이라고 추켜 세우기도 했다.

기소 2년4개월여 만에 재판이 시작되자 코소보 수도 프리슈티나에서는 그를 지지하는 시위대 수천명이 집결했다. 헤이그 법정 앞에서도 지지자 수백여명이 몰려 들어 ‘KLA’를 연호하고 “피해자와 범죄자를 동일시하지 말라”며 시위를 벌였다.

AP통신 등은 많은 코소보인들이 이번 재판을 코소보 독립투쟁의 역사를 폄훼하고 다시 쓰려는 시도로 보고 있다고 보도했다.

하심 타치 전 코소보 대통령에 대한 첫 전범 재판이 열린 3일(현지시간) 네덜란드 헤이그 에서 타치 전 대통령의 지지자들이 ‘코소보 피해자, 세르비아 침략자’라고 쓰인 팻말을 들고 시위를 벌이고 있다. 로이터연합뉴스

코소보 전쟁이 종결된 후 세르비아 측 전범들은 10여년에 걸쳐 유엔 국제유고전범재판소(ICTY)를 통해 처벌 받았다. 밀로셰비치 전 대통령도 국제유고전범재판소에서 4년에 걸쳐 재판을 받았지만 2006년 재판 도중 사망했다. 코소보 쪽 전쟁범죄에 대한 재판이 마무리되면 ‘인종 청소’라는 말까지 나왔던 코소보전쟁에 대한 사법적 심판은 마무리된다.

다만 판결이 나오기까지는 상당한 시간이 소요될 것으로 보인다. 검찰 측은 증거 제시에만 2년 이상이 걸릴 것으로 예상했다. 다음 심리는 4일 열리며, 타치 전 대통령 측 변호인의 모두 진술로 시작된다.

선명수 기자 sms@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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