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미 별세…실향민 1세대 가수

이재훈 기자 2023. 4. 4. 15: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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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내용 요약
'밤안개'로 유명한 가수, 4일 오전 별세…1960~70년대 풍미
베트남전 위문공연도…가수 노사연·배우 한상진 이모

[서울=뉴시스] 가수 현미. 2023.04.04. (사진 = 뉴시스 DB) photo@newsis.com *재판매 및 DB 금지

[서울=뉴시스]이재훈 기자 = 4일 별세한 가수 현미(김명선·85)는 1960~70년대를 풍미한 스타로 '실향민 1세대 가수'로 통한다. 근현대사의 아픔이 그녀의 삶에 녹아 있다.

1938년 평안남도 평양에서 8남매(2남·6녀) 중 셋째로 태어났다. 1·4 후퇴 때 피란을 갔는데 두 여동생인 넷째와 여섯째만 남쪽으로 내려오지 못했다.

과거 한 인터뷰에서 "인민군한테 잡혀서 산으로 가서 총살당할 뻔 할 때 정찰기가 와서 살기도 했다"고 털어놓는 등 우여곡절을 겪었다. 평양에서 대구까지 꼬박 두 달을 걸어 내려왔다고 한다.

1998년 중국 장춘에서 북한에 살고 있던 동생 길자 씨를 만나기도 했다. 당시 이틀밤을 같이 잤고 가족 이야기를 많이 나눴다고 했다. 이후 길자 씨는 현미를 몰래 만났다고 1년 동안 형무소에 가 있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2000년 개그맨 고(故) 남보원과 중국 베이징에서 조선민항 편으로 평양에 들어가 길자 씨와 명자 씨와 다시 만나는 걸 기대했으나 북한 내부 사정으로 불발됐다. 고향땅을 잠시 밟아보는 데 만족해야 했다. 현미는 이 경험을 바탕으로 2020년 이산가족 고향체험 가상현실(VR) 콘텐츠 제작에 참여하기도 했다.

현미는 1971년 베트남 전쟁터 한 가운데서 열린 위문공연에 참여하기도 했다. 베트남 전쟁을 배경으로 한 영화 '님은 먼곳에'(2008·감독 이준익)에서 수애가 맡은 '순이'가 위문공연하는 장면은 현미의 육성 증언을 바탕으로 한 것이었다.

[서울=뉴시스] 미8군 시절 활약하던 현미 모습. 2023.04.04. (사진 = 박성서 대중음악 평론가 제공) photo@newsis.com *재판매 및 DB 금지

현미는 덕성여대 2학년 때 돈을 벌기 위해 미8군 쇼에 출연했다. 전공이 고전무용이라, 칼춤 무용수로 무대에 섰다. 그러다 펑크를 낸 가수의 대타로 노래를 불렀다 1957년부터 본격적으로 마이크를 잡기 시작했다. 여성 보컬 그룹 '현시스터즈'를 결성해 활동하기도 했다.

그곳에서 당대 최고 작곡가 손석우(1920~2019)의 눈에 띄어 정식 데뷔를 하게 된다. 손 작곡가는 현미에게 영화 '동경에서 온 사나이' 주제가를 취입하자고 제안했고, 이것이 1962년 독집 데뷔 음반 발매로 이어졌다. 음반 제목은 '당신의 행복을 빌겠어요'였는데, '동경에서 온 사나이'의 주제가 제목이었다.

'당신의 행복을 빌겠어요' 등 손 작곡가의 곡과 당시 떠오르던 작곡가이던 이봉조(1932∼1987)가 편곡한 '밤안개' 그리고 역시 인기 작곡가 길옥윤(1927~1995)의 '내 사랑아' 등이 실렸다.

특히 '밤안개'는 미국 스타 재즈 가수 프랭크 시나트라와 냇 킹 콜 등이 불러 유명한 '잇츠 어 론섬 올드 타운(It's A Lonesome Old Town)의 번안곡이었는데 우리말 가사를 붙여 크게 히트했다. 음반 제목을 '밤안개'로 변경해 재발매되기도 했다. 곡도 좋았지만 허스키한 보컬로 재즈 풍의 노래를 능숙하게 소화하는 현미의 가창 실력도 인기 비결이었다.

이후 현미는 이봉조 작곡가와 3년 간 열애 뒤 함께 살았다. '보고 싶은 얼굴' '떠날 때는 말없이' '애인' '아빠 안녕', '두 사람' 등의 히트곡을 합작했다. 특히 이 작곡가는 재즈 풍의 노래로 현미를 알리는데 큰 역할을 했다.

[서울=뉴시스] 작곡가 이봉조·가수 현미 '보고싶은 얼굴' 음반(1964). 2023.04.04. (사진 = 박성서 대중음악 평론가) photo@newsis.com *재판매 및 DB 금지

또 이 작곡가는 가수 정훈희를 스타덤에 올리고 최근 박찬욱 감독의 영화 '헤어질 결심'을 통해 재조명된 '안개'를 만든 주인공이기도 하다. 현미는 이 작곡가가 이 곡을 자신에게 주지 않은 것에 대해 아쉬워했다. 그러자 이 작곡가는 '구름' '하늘' '태양의 유혹' '별' 등의 제목을 붙인 곡들을 내놓았다. 이 중 '별'은 1971년 제4회 그리스국제가요제 '송 오브 올림피아드'에 입상했다.

한국 근현대의 대표 작곡가 중 한명이자 걸출한 테너색소폰 연주자였던 이 작곡가와의 인연은 미8군 부대에서 시작했다. 그곳에서 이 작곡가는 밴드마스터로 활약했다. 바쁘게 지냈던 두 사람은 '연예인 마이카족 1호'라는 수식을 달기도 했다. 법적 부부가 아니었던 두 사람은 1975년 헤어졌다.

현미의 전성기는 1980년대 초에도 이어졌다. 1981년 미국 로널드 레이건 대통령 취임 기념 만찬 파티에 초청돼 노래를 부르고 기립 박수를 받기도 했다.

[서울=뉴시스] 현미. 2023.04.04. (사진 = 뉴시스 DB) photo@newsis.com *재판매 및 DB 금지

이후 여러 예능 프로그램 출연 등 방송 활동을 병행하면서도 2010년대까지 노래했다. 2007년 자신의 '50주년 기념 콘서트' 관련 기자회견에서 "목소리가 안 나올 때까지 노래하겠다"고 약속했던 걸 지켰다.

2017년 우리나이로 80세를 기념한 신곡 '내 걱정은 하지마'를 발표하는 등 노익장을 과시했다. 아울러 말주변이 좋고 성격이 시원시원해 주변에 사람이 끊이지 않았다. 특히 약 20년이 넘게 백화점 문화센터에서 '현미파워노래교실'을 이끌며 주부들 사이에서 큰 인기를 누렸다. 가수 노사연·배우 한상진의 이모이기도 하다. 가수 원준희의 시어머니이기도 하다.

올해 들어서도 건강에 큰 이상은 없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지난 1월 MBN '속풀이쇼 동치미' 531회에 출연해 며느리 자랑을 했다. 최근에도 지인들을 자주 만나 식사를 했던 것으로 전해졌다.

박성서 대중음악 평론가는 "숱한 명곡을 남긴 현미는 특유의 걸쭉한 허스키 보이스와 거침없는 입담으로 인기를 누렸다"고 기억했다.

한편, 경찰과 소방에 따르면 고인은 이날 오전 9시37분께 서울 용산구 이촌동 자택에서 쓰러진 채 발견됐다. 팬클럽 회장이 발견해 곧장 병원으로 이송했으나 결국 숨진 것으로 전해졌다. 경찰은 팬클럽 회장, 유족 등을 통해 정확한 사인을 규명할 계획이다. 고인은 현재 서울 동작구 중앙대병원에 안치돼 있다. 미국에 살고 있는 아들 등 가족들이 귀국하는 대로 빈소와 장례 형태 등을 결정할 예정이다.

☞공감언론 뉴시스 realpaper7@newsi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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