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불 예방에 소용없는 국립공원 임도 확충 계획 철회하라”
지난달 11~12일 경남 하동군 화개면 지리산국립공원에서 발생한 산불은 최근 20년 동안 우리나라 국립공원에서 발생한 산불 가운데 가장 큰 규모였으나, 낙엽활엽수림으로 자연스럽게 변해가는 숲이어서 피해 정도는 침엽수림 산불보다 훨씬 적었던 것으로 조사됐다. 환경단체들은 “인간의 간섭을 최소화하는 것이 산불에 강한 숲을 만드는 지름길”이라며, 인위적 산림복원과 임도 건설 자제를 주장하고 나섰다.
국립공원을 지키는 시민의 모임, 경남환경운동연합 등 환경단체로 이뤄진 ‘지리산국립공원 화개 대성골 산불 피해 민간조사단’은 4일 경남도청 프레스센터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임도가 있다고 해서 산불 강도나 피해면적이 줄어든다고 볼 수 없다. 산림청은 과학적 근거도 없이 국립공원에 임도가 필요하다는 주장으로 불필요한 논란을 일으키지 말라”고 요구했다. 앞서 이들은 지난달 네차례에 걸쳐 토양·식생·안전 등 분야별 전문가들과 함께 경남 하동군 화개면 지리산국립공원 산불 피해지역을 현장조사했다.
지난달 11~12일 하동군 산불 발생 직후 산림청은 피해면적을 91㏊로 발표했으나, 민간조사단의 현장조사와 위성사진 분석 결과 실제 피해면적은 정부 발표보다 30㏊나 넓은 121㏊인 것으로 드러났다. 지난 2003년부터 지난해까지 최근 20년 동안 우리나라 전체 국립공원에서 136건의 산불이 발생해, 누적 피해면적이 111.82㏊인데, 하동군 산불 피해면적은 지난 20년 동안 전체 피해면적보다 넓은 것으로 나타났다.
하지만 매우 높음, 높음, 보통, 낮음 등 4단계로 분류하는 ‘정규산불지수’(NBR)에 따른 하동군 산불의 강도는 낮음이 80%(96.9㏊)에 이르는 것으로 나타났다. 반면 매우 높음은 전혀 없고, 높음도 3.3%(4.0㏊)에 그쳤다. 실제로 산불이 발생하고 불과 20일 만에 원추리 등 초본류가 싹을 틔워 땅을 뒤덮기 시작했고, 벚꽃과 진달래가 피는 등 활엽수도 큰 피해를 입지 않은 것으로 드러났다.
민간조사단은 “산불 강도가 낮았던 이유는 소나무림이 쇠퇴하고 산불에 강한 낙엽활엽수림이 발달하는 자연스러운 과정을 밟는 숲이었기 때문이다. 이번 산불 피해는 소나무 숲 부분에 집중됐는데, 이곳은 앞으로 낙엽활엽수림으로 빠르게 발달할 것으로 판단된다. 사실상 인위적으로 복원할 지역은 없었다”고 밝혔다. 민간조사단은 또 “산림청 등은 국립공원에 임도 설치 확충을 주장하는데, 임도는 주변 생태계 훼손과 연결성 파괴를 불러올 것이다. 인위적 간섭을 줄이는 것이 기후위기 상황에서 산불에 안전한 숲을 만드는 지름길”이라고 덧붙였다.
윤주옥 ‘국립공원을 지키는 시민의 모임’ 대표는 “임도는 산불 예방이 아니라 산불 진화에 필요한 것이며, 그나마도 헬기로 큰불을 잡은 뒤 잔불을 정리하기 위해 인력을 투입할 때에나 역할을 할 뿐이다. 따라서 국립공원에 산불이 났을 때 임도가 없어서 산불 진화에 어려움을 겪는다는 주장은 왜곡된 것”이라고 말했다.
이에 대해 송명수 산림청 목재산업과 사무관은 “산불이 났을 때 강한 바람이 불면 불씨가 최대 2㎞까지 날아간다. 이런 때 임도는 소용이 없다. 하지만 일반적으로 산불이 났을 때 소방차와 소방인력이 현장에 가장 빨리, 가장 가까이 접근할 수 있도록 해주는 것이 임도이다. 특히 짙은 연기나 안개 때문에 소방헬기를 투입할 수 없을 때 임도는 매우 중요하다. 낙엽활엽수림이 피해를 줄인 이유의 일부분은 될 수 있어도, 그것이 결정적 이유라고 하기는 어렵다”고 반박했다.
지난해 말 기준 우리나라 전체 임도는 산불진화용 488.6㎞ 등 3만8916.5㎞에 이른다. 하지만 올해 들어 지난 3일까지 경기 62건, 경북 51건, 경남 45건, 충남 42건 등 381건의 산불이 발생해 823.51㏊의 숲이 불타는 등 갈수록 산불의 발생건수와 피해면적이 늘어남에 따라, 산림청은 국립공원 등의 임도 확충을 계획하고 있다.
앞서 지난달 11일 오후 1시20분께 하동군 화개면 대성리 지리산국립공원 구역에서 산불이 발생해 다음날 오전 11시30분께까지 22시간 동안 산림 91㏊(산림청 발표 기준)를 태우고 꺼졌다. 당시 산불은 건조주의보가 발령된 상황에서 순간풍속 초속 7m의 바람을 타고 빠르게 번졌다. 산불 진화작업은 임도가 없는 급경사지에 짙은 안개까지 끼어 있어 어려움을 겪었다. 결국 11일 밤 10시4분께 야간 진화를 위해 현장으로 접근하던 진주시 소속 광역산불진화대원 1명(64)이 산 중턱에서 심정지를 일으켜 목숨을 잃었다.
최상원 기자 csw@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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