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즈풍 허스키 보컬로 60년대 한국팝 선도한 '영원한 디바' 현미

이태수 2023. 4. 4. 14: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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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타 작곡가 이봉조와 명콤비…80살에도 신곡 발표 '의욕'
'밤안개'·'보고 싶은 얼굴' 등 히트곡 다수
가수 현미 [박성서 대중음악평론가 제공. 재판매 및 DB 금지]

(서울=연합뉴스) 이태수 안정훈 기자 = 4일 별세한 가수 현미는 특유의 허스키한 재즈풍 보컬로 1960년대 한국 가요계를 선도한 디바로 평가받는다.

가요계에 따르면 현미는 1957년 미8군 무대에서 가수 김정애·현주와 함께 결성한 3인조 여성 보컬 '현시스터즈'로 데뷔한 이래 66년이라는 긴 세월 동안 힘 있는 목소리와 거침없는 입담으로 많은 팬에게 사랑을 받았다.

그가 내놓은 히트곡만 해도 대표곡 '밤안개'를 비롯해 '보고 싶은 얼굴', '떠날 때는 말없이', '애인', '두 사람', '몽땅 내 사랑', '별', '왜 사느냐고 묻거든' 등 여럿이다.

박성서 대중음악평론가는 "현미는 한명숙·이금희와 함께 이른바 '3대 여성 허스키보이스 시대'를 열며 '개성시대'로 불린 1960년대를 거침없이 질주했다"고 평가했다.

특히 현미의 발성이 얼마나 쩌렁쩌렁한지 출세곡 '밤안개'를 녹음할 때 마이크에서 두세 걸음 떨어져 불렀다는 일화가 전해져 온다.

현미의 이 같은 긴 음악 여정을 이야기할 때 빼놓을 수 없는 것이 바로 고(故) 이봉조(1931∼1987)다. 현미는 이봉조와 20대 미8군 가수 시절 처음 만나 뜨겁게 교제했고, 쇼단 단장이 이들을 갈라놓으려 하자 미련 없이 쇼단을 박차고 나오기까지 했다.

현미와 이봉조 콤비는 1960년대 가요계 '환상의 짝꿍'으로 1962년 첫 독집 음반을 필두로 숱한 히트곡을 배출했다. 이 독집 음반은 작곡가 손석우로부터 영화 '동경에서 온 사나이' 주제가를 만들자는 제의를 받고 제작됐다. 당시로서는 신인 가수의 데뷔 음반을 독집으로 내는 것이 흔치 않았는데, 그만큼 현미에 대한 기대가 컸다는 방증이다.

이 데뷔 음반에는 '당신의 행복을 빌겠어요'를 비롯해 이봉조 작곡 또는 작사의'밤안개'·'슬픈 거리를', 길옥윤 작곡의 '내 사랑아' 등이 수록됐다. 음반 타이틀곡은 '당신의 행복을 빌겠어요'였지만 당시 '잇츠 어 론섬 올드 타운'(It's A Lonesome Old Town)을 번안한 '밤안개'가 크게 히트하면서 타이틀곡을 바꿔 재발매하기도 했다.

당시 작곡가 길옥윤은 일본에서 활동하고 있었는데, 1962년 자신이 이끌던 '동경스윙오케스트라'와 함께 내한해 귀국 기념 음악회를 하며 만난 현미·이봉조 커플에게 '내 사랑'을 줬다. 길옥윤은 이들 연인이 잘 어울린다며 선물로 '내 사랑아' 악보를 줬다고 한다.

'내 사랑아'는 이후 패티김이 리메이크하면서 큰 히트를 기록했다.

가수 현미의 데뷔 음반이자 출세작 '밤안개' [박성서 대중음악평론가 제공. 재판매 및 DB 금지]

현미와 이봉조는 1960년대 밤무대와 방송 활동을 함께하며 전성기를 구가했다. 자가용 차량이 귀하던 시절 '연예인 마이카족 1호'라는 영예를 누리며 인기 가도를 달렸다.

이봉조는 이 시기 '구름', '하늘', '태양의 유혹', '별' 등 우주를 소재로 한 다채로운 명곡을 현미에게 선사했고, 이 가운데 '별'은 1971년 제4회 그리스국제가요제 '송 오브 올림피아드'에 입상하는 성과를 냈다.

박 평론가는 "현미는 풍부한 무대 경험만큼이나 감정 처리와 테크닉이 화려했다"며 "그런데 이봉조는 되레 그것을 경계해 신곡 악보를 녹음 당일에야 건넸다. 테크닉보다는 악보 그대로 부르기를 강조했기 때문"이라고 뒷얘기를 전했다.

현미는 2000년대 이후에도 활발하게 활동하며 전성기 못지않은 인기를 누렸다. 데뷔 50주년을 맞은 2007년에는 "목소리가 안 나올 때까지 노래하겠다"고 공언했고, 2017년 우리 나이로 80세의 나이에도 신곡 '내 걱정은 하지 마'를 발표해 이 약속을 지켰다.

20년이 넘는 기간 백화점 문화센터에서 매주 화요일 '현미파워노래교실'을 진행해 큰 인기를 끌었다.

그는 늘 평생 유쾌하고 즐거운 모습으로 주변 사람을 웃고 울게 만든 것으로 전해졌다. 그는 '무던하게 살기', '되도록 많이 이해하기', '남 앞에서 울지 않기'라는 세 가지 생활 철학을 평생 지켰다고 한다.

북한 평양 출신 실향민으로 어린 시절 김일성 앞에서 어린이 대표로 노래하고 헌화할 정도로 일찍이 이름을 날렸다. 한국전쟁 도중 1·4 후퇴 당시 두 동생을 북에 남겨둔 채 남한으로 내려온 실향민 출신이라는 일화도 유명하다.

박 평론가는 "현미는 풍부한 성량과 화려한 테크닉으로 우리 가요계를 한 단계 업그레이드 시킨 인물"이라며 "1960년대 우리 가요계를 '미성의 시대'에서 '개성의 시대'로 바꿔 놓았다. 눈 감을 때까지 국민과 함께 울고 웃은 열정은 후배들에게 큰 귀감이 될 것"이라고 전했다.

tsl@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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