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기로 읽는 세상] 6번의 핵실험에도… 북 핵탄두 소형화 못 믿는 나라
편집자주
한반도와 남중국해 등 주요국 전략자산이 첨예하게 대립하고 있는 현장의 다양한 에피소드를 흥미진진하게 전달해 드립니다. 이일우 자주국방네트워크 사무국장이 격주 화요일 풍성한 무기의 세계로 안내합니다.
북한이 3월 28일 '화산-31'로 명명된 전술핵탄두 실물을 공개했다. 북한 당국은 3월 19일부터 연이어 실시된 주요 미사일 도발 때 이 전술핵탄두의 모의 탄두를 이용한 가상 핵공격 훈련을 실시했다고 밝힌 바 있는 데, 8종이나 되는 각종 투발 수단에 탑재할 수 있는 핵탄두가 공개됐음에도 우리나라의 반응은 무덤덤하다.
북한은 최근 유사시 전술탄도미사일과 초대형 방사포 등 다양한 투발수단으로 대량의 핵공격을 가하겠다고 위협해 왔다. 실제로 그 미사일·방사포는 오로지 한국만 타격할 수 있는 사거리의 무기들이었으며, 거기에 탑재할 실물 핵탄두까지 공개돼 이제 한국은 전국 주요 대도시에 동시다발적으로 핵탄두가 소나기처럼 쏟아질 수도 있는 절체절명의 위기에 직면했지만, 국민과 언론 심지어 정부도 사태의 심각성을 직시하지 못하고 있다.
대도시 핵공격 위기…그럼에도 무덤덤한 정부
놀라울 정도로 심각한 안보 불감증의 1등 공신은 다름 아닌 군이다. 정권을 막론하고 군은 언제나 “철통 같은 안보태세를 유지하고 있다”는 말을 거듭해 왔다. 2014년 장난감 수준의 북한 무인기에 수도 한복판의 청와대가 뚫렸을 때도 군 당국은 문제 해결을 위해 실태를 진단하고 합리적인 해결책을 내놓는 대신, 시대착오적이고 수준 떨어지는 대응 장비를 배치한 뒤 또다시 ‘철통 같은 안보태세’를 외쳤다. 막대한 예산이 들어간 방공체계가 새로 배치됐지만, 8년이 지난 후 서울 상공은 또 장난감 수준의 북한 무인기에 유린당했다.
북한의 핵과 미사일 위협에 대한 군의 태도도 마찬가지다. 북한이 각종 미사일을 쏘면 군은 킬체인과 한국형 미사일 방어체계로 충분히 대응할 수 있다는 말을 앵무새처럼 반복한다. 북한 당국이 핵무기 관련 발언을 하면, 북한의 핵무기는 소형화·검증이 완료되지 않아 실전에 사용할 수 없다는 주장만 늘어놓고 있다. 킬체인은 북한의 모든 미사일을 1년 365일 24시간 실시간으로 감시할 수 있고, 모든 북한 미사일은 발사진지 전개 후 30~40분 이상 발사준비 과정을 반드시 거친다는 가정을 전제로 수립됐다. 북한은 5분이면 발사 준비가 끝나는 고체연료 방식 미사일과 방사포를 대량으로 배치해 킬체인의 전제조건을 깨버렸지만, 군은 물리적으로 구현이 불가능한 킬체인에 지금까지 수조 원의 예산을 써 왔고, 앞으로도 비슷한 혈세를 더 투입할 예정이다.
한·미 정보당국 추산 100~200대에 불과하던 북한의 이동식 미사일 발사차량 숫자를 고려해 수립된 한국형 미사일 방어체계 역시 초대형 방사포·대구경조종방사포가 등장하고 북한의 미사일 발사 플랫폼이 트럭·장갑차·열차·사일로·바지선 등으로 다양화돼 동시 투발 미사일 숫자가 폭발적으로 증가한 현실을 외면하고 있다. 과거에는 1개 공군기지에 최대 5~6발의 미사일이 동시에 떨어지는 정도였지만, 지금은 대구경 방사포탄과 탄도미사일이 동시에 수십 발씩 떨어질 수 있는 수준이 됐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군 당국은 한국형 미사일 방어체계로 북한의 미사일 위협을 막을 수 있다고 주장한다.
가장 심각한 문제는 북핵을 바라보는 우리 군의 시각이다. 북한이 '화산-31' 핵탄두를 공개한 직후, 합참은 “핵 능력 전력화가 완료됐다고 보려면 실제와 동일한 환경에서 실험에 성공해야 한다. 그러나 아직 확인된 것이 없다”고 했다. 북한이 핵탄두 소형화에 성공하지 못했다는 기존의 입장을 되풀이한 것이다. 우리 군의 주장대로 북한은 정말 미사일·방사포에 탑재할 만한 소형화된 핵탄두를 완성하지 못했을까.
양산된 '화성-31' 미검증 단계로 평가 어떻게 납득하나
이른바 ‘전문가’들은 북한이 이번에 공개된 핵탄두의 위력 검증을 위해 조만간 7차 핵실험이 있을 것이라고 전망한다. 핵탄두도 일종의 ‘공산품’이다. 모든 공산품은 설계와 시제품 제작 후 검증을 거친 뒤에 양산된다. 북한의 '화산-31' 역시 공산품이다. 이미 양산이 된 제품이 아직도 미검증 단계라는 평가는 상식적으로 납득하기 어렵다. 실제 실험이 없었기 때문에 완성품으로 보기 힘들다는 군 당국의 논리를 그대로 가져와 보면, 포괄적 핵실험 금지 조약 발효 이후 개발·양산된 각국의 모든 핵무기도 완성품이 아니다. 러시아의 현용 주력 대륙간탄도미사일인 ‘토폴-M’의 800㏏급 핵탄두나 ‘야르스’의 500㏏급 핵탄두도 개발·배치 단계에서 실제 핵폭발 실험을 한 적이 없다. 인도는 1974년과 1998년 두 차례 핵실험을 통해 핵보유국으로 인정받았고, 파키스탄은 1998년 5차례 핵실험을 통해 핵보유국이 됐다. 이들 모두 중·단거리 탄도 미사일에 탑재 가능한 소형화된 핵탄두를 보유한 실질적인 핵보유국으로 인정받고 있다.
그런데 북한은 이들보다 많은 6차례의 핵실험에 성공했다. 북한은 공식적으로는 2016년에 구형(球形) 핵탄두를, 2017년에 화성 14형 탑재용 수소폭탄 핵탄두를, 2023년에 8종의 투발 수단 탑재가 가능한 '화산-31' 핵탄두를 공개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북한이 아직도 핵탄두를 소형화하지 못했다고 평가하는 것은 ‘무지’와 ‘무능’ 말고는 표현할 방법이 없다.
북, 30년 전 이미 700㎏ 이하 핵탄두 만들었을 것
한국전쟁 직후에 핵개발에 나선 북한은 1974년 미국 핵폭탄 제조의 산실인 로스알라모스 국립연구소(Los Alamos National Laboratory) 출신이자 핵 기폭장치의 핵심 기술인 구형폭발(Spherical explosion) 전문가 경원하(慶元河) 맥길대(McGill University) 교수를 영입했다. 이후 1982년 미국 정찰위성이 영변 일대에서 고폭 실험 흔적을 발견했고, 1989년 핵탄두 제조를 위해 영변 5㎿ 원자로에서 연료봉 8,000개 인출과 재처리 작업이 시작됐다. 황장엽 전 노동당 국제담당비서가 전병호 노동당 군수담당비서에게서 북한의 핵탄두 보유 사실을 전해 들은 것이 1993년의 일이고, 이 때문에 1994년 제1차 북핵 위기가 터졌다. 벌써 30년 전의 일이다. 당시 북한이 개발을 추진했던 핵탄두는 자신들이 가지고 있는 유일한 투발 수단인 스커드 미사일 탑재가 가능한 수준이어야 했다. 이는 이 핵탄두가 길이 1m, 직경 88㎝ 이하, 중량 700㎏ 이하라는 말이다. 30년 전에 그런 핵탄두를 만든 북한이 지금 '화산-31' 크기의 핵탄두를 만들지 못했다면 북한의 핵과학자들은 지금 전부 아오지나 요덕에 가 있어야 한다.
북한의 핵탄두 소형화 성공 증거는 또 있다. 국제원자력기구(IAEA)는 지난 2004년 리비아에서 3종의 핵탄두 설계도를 발견한 바 있다. 이 중 하나는 중국이 1982년 파키스탄에 제공한 CHIC-4 핵탄두의 설계도였다. 파키스탄 핵의 아버지라 불리는 압둘 카디르 칸(Abdul Qadeer Khan) 박사는 중국이 인도 견제를 위해 1982년 이 핵탄두 설계도와 50㎏의 고농축우라늄을 파키스탄에 제공했다고 밝혔다. 칸 박사는 이 핵탄두 설계도들과 핵물질, 우라늄 농축시설 등을 이른바 ‘칸 네트워크’로 불린 국제 암시장을 통해 북한 등에 확산시킨 혐의로 2003년 파키스탄 검찰에 체포됐다. 칸 박사는 1999년 자신이 핵기술을 제공한 북한을 방문해 평양으로부터 2시간 떨어진 지하 기지에서 소형화된 핵탄두 3기를 봤다고 밝힌 바 있었다. 실제로 북한이 2017년 12월 12일 공개한 '제8차 군수공업대회 기념 기록영화'에는 김정일이 칸 박사에게 구형 핵탄두를 소개하는 사진이 스치듯 등장한다.
6번의 핵실험 성공과 여러 차례 공개된 실물 핵탄두, 외부 핵 전문가가 실제로 목격한 소형화된 핵탄두 등 물적·인적·정황 증거가 30년 전부터 차고 넘치는데 아직도 북한이 핵탄두 소형화에 성공하지 못했다는 주장이 과연 설득력이 있을까. 지금은 국민이 불안에 떨 것을 걱정해 북한의 위협을 과소평가하며 ‘철통 같은 방위태세’만 입버릇처럼 떠들고 있을 때가 아니다. 군이 지켜야 하는 것은 국민들의 ‘심기 안보’가 아니라 국가안보라는 것을 잊어서는 안 된다. 지금이라도 눈앞의 위협을 직시하고 그 위협으로부터 국민의 생명과 재산을 보호할 수 있는 실질적 해결책 마련에 총력을 기울일 때다.
이일우 자주국방네트워크 사무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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