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수·수업·입학자격 없앤 ‘자기주도형 부트캠프’…“실력에도 한계가 없죠”

2023. 4. 4. 1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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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타트업 강국’ 프랑스 기반된 에꼴42 가보니
교수, 수업, 학비 없는 3無 학교
자기주도형 프로젝트 쌓아가며 ‘레벨 UP’
보장된 취·창업 뿐 아니라 학습에 흥미 뚜렷하다는 장점
에꼴42 내 마련된 대형 코딩 실습실

“졸업 후 진로? 원하는 대로 갈 것 같아요. 스스로 개발에 자신감이 생겼거든요.”

‘자기주도형 부트캠프’에서 생존한 이들은 이 같은 자신감을 얻게 된다. 교수도, 수업도, 학비도, 입학자격 제한도 없는 혁신적인 교육기관. 에꼴42에서 프로젝트를 거듭하는 이들의 눈은 포부로 가득찼다.

에꼴42의 프로젝트를 단계별로 구분해놓은 스터디맵

에꼴42는 세계에서 가장 혁신적인 교육 실험 중 하나로 꼽힌다. 프랑스 굴지의 이동통신사 프리모바일의 회장이자 스타시옹F를 설립한 ‘스타트업계 대부’ 자비에르 니엘 회장이 사재 1억유로를 출자해 설립한 교육기관. 이론보다 실무능력을 갖춘 IT업계 인재를 양성하기 위해 에꼴42는 ‘3無’를 표방했다. 교수 등 가르치는 사람이 없고, 공식 커리큘럼도 없다. 재학생들은 다양하게 뻗어있는 스터디맵을 보고, 관심있는 프로젝트에 지원해 과제를 수행하게 된다. 철저한 자기주도형 프로젝트 학습이다. 수업료도 전액 무료다.

입학자격도 만 18세 이상이면 아무런 제한이 없다. 학력, 경력, 자격 등을 따지지 않는다. 에꼴42 홍보담당인 샤흘리 모블랑은 “에꼴42의 중요한 규칙은 다양성”이라며 “다양성이 보장될수록 능력있고 창의력 있는 학생들이 모여 좋은 결과물을 만들게 된다”고 강조했다. 그는 “다양성을 높이기 위해 입학이 쉬워야한다. 자격증, 나이 제한 등 사회적 한계를 두지 않는다”고 설명했다.

입학 자격에 제한이 없다고는 하지만 모블랑의 말대로 입학이 쉽지만은 않다. 파리에서 연간 1000명을 모집하는데, 경쟁률이 50대 1에 이를 정도로 치열하다. 입학시험은 논리, 추론능력 등을 평가하는 온라인 테스트를 1차로 치르고, 2차로 ‘라 피신(La Piscine)’이라 부르는 코딩 테스트를 거친다. 피신은 ‘수영장’이라는 뜻으로, 아이를 수영장에 던져 헤엄쳐 나와보게 하는 것처럼 서바이벌 코딩테스트를 치른다는 의미다. 모블랑은 “4주간 매일같이 와서 코딩을 배우며 문제를 풀어야 한다. 금요일마다 시험을 본다”고 설명했다. 이어 “주말에는 쉴거라 생각했나?”라며 “주말에는 그룹 프로젝트를 해서 일요일 11시42분까지 제출해야 한다”고 말했다. ‘사서 고생’하는 관문인 피신은 2월, 7월, 8월, 9월에 실시된다.

에꼴42에서 수학중인 최규봉씨가 교육과정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도현정 기자]

입학생들은 3~5년간 프로젝트 수행하며 코딩 실력과 문제 해결력을 기른다. 교수가 없다 보니 프로젝트 결과에 대한 평가도 ‘동료 평가’다. 평가자와 피평가자와 무작위로 연결되고, 컴퓨터를 앞에 두고 대면으로 코드를 평가한다. 평가자의 지적을 피평가자가 인정하지 못하면 치열한 논쟁이 벌어지기도 한다. 에꼴42에서 수학중인 이동빈(25) 학생은 “이곳은 독학하는 학생들을 모아놓은 일종의 플랫폼인데, 학교이기도 하면서 동시에 커뮤니티로서의 성격이 강하다”라며 “상호간 소통이 강제되면서 지식의 전파가 발생한다는게 단순한 독학과의 차이점”이라 설명했다.

평가, 피평가를 위해 소통이 강제되는 시스템인데도 ‘다양성’이라는 가치를 위해 언어 능력은 고려 대상이 아니다. 프랑스어나 영어를 전혀 못해도 입학에 아무 문제가 없다. 학교는 “프랑스어, 영어를 못해도 해결해 나갈 줄 아는 학생을 원한다”는 말로 도전 정신을 강조했다. 이동빈 학생은 “언어 장벽보다 장벽 앞에서 단순히 포기하고 도망치는 것을 더 안좋게 보는 거 같다”고 덧붙였다.

학생들은 프로젝트를 거듭하면서 성과에 따라 레벨이 높아지는데 최대 21레벨이 되면 수료증을 받을 수 있다. 별도의 졸업 기간이나 학위 수여는 없지만 21레벨은 EU 인정학위 기준으로 석사 단계로 평가된다. 보통 수료까지 3년이 소요된다. 학생의 필요에 따라 수료 후에도 계속 남아 학습할 수 있다.

에꼴42를 향한 치열한 경쟁은 그만큼 남다른 성과가 뒷받침됐기 때문이다. 수료자 100%가 취업했고, 이 중 12%는 스타트업을 직접 설립했다. 사진공유 서비스 기업 포토리아나 카풀 서비스 업체 블라블라카 등도 에콜42를 통해 탄생했다. 대학원에서 철학과 사회학을 배우다 코로나19를 겪으며 에꼴42로 진로를 바꾼 최규봉(32) 씨도 “수료생들의 취·창업 결과도 나쁘지 않았고 스스로도 개발에 자신감이 생겼다”며 “졸업 후 원하는 진로로 무난히 갈 것 같다”고 말했다. 이동빈 학생은 “에콜42의 명성이 업계에서도 굉장히 높은 편”이라며 “IT업계에서는 에콜42를 ‘준(準) 그랑제콜(프랑스의 엘리트 고등교육 기관)’처럼 인식한다”고 말했다.

보장된 진로, 외부 명성 등 여러 요인이 있지만 에꼴42 최대의 강점은 현재 하고 있는 일에 확신과 흥미를 느끼게 해준다는 점이다. 자기주도형 학습이 이룬 성과다. 최규봉 씨는 “한국에서 고등학교를 다니며 밤 11시까지 야간 자율학습을 할 때에는 책상에 앉기 싫었는데, 여기에서는 하루종일 앉아있어도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코딩을 한다”며 “주도적인 것과 강제적인 것의 차이가 분명하다”고 전했다.

프랑스(파리)=도현정 기자

kate01@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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