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민 “3중 위기속 한국 언론...저널리즘 스쿨이 유일한 희망이다” [송의달 LIVE]

송의달 에디터 2023. 4. 4. 07: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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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대 언론정보학과 윤석민 교수 인터뷰
①신뢰도 바닥·진영대결...공동 연대감 사라진 한국언론
②좁은 시장·열악한 재정...언론사 자체 디지털 혁신 못해
③최고 연구·교육기관인 서울대에 저널리즘 스쿨 세워야
④이제는 사회가 언론을 지켜야 [미디어 프리즘]

윤석민(尹錫敏·60) 서울대 언론정보학과 교수는 서울대 신문학과 졸업 후 미국 미시간주립대에서 미디어정책 연구로 박사학위를 받은 우리나라의 중진(重鎭) 언론학자이다. 그가 낸 6권의 단독 저서 가운데 2권은 학술원(學術院) 우수도서로 뽑혔고, 1권은 한국언론학회 저술상을 받았다.

한국 언론학계의 중진인 윤석민 서울대 언론정보학과 교수가 2023년 3월 29일 기자와의 인터뷰에서 '서울대 안에 제대로 된 저널리즘 스쿨 설립' 구상을 말하고 있다./송의달 기자

◇지상파 시사프로 공정성 파헤쳤다가 좌파 공격 받아

서울대 SNU 팩트체크위원회 초대위원장, 미디어다양성위원회 위원장을 지냈고 현재 여론집중도조사위원회 위원장을 맡고 있다. 윤 교수는 문재인 정권 시절인 2019년 2월 KBS·MBC·SBS 같은 지상파방송에서 김어준·주진우 등의 시사(時事) 프로그램 공정성 분석 연구 결과를 발표했다가 좌파 진영의 공격을 받았다. 그는 “혹독한 시달림 속에서 미디어를 둘러싼 진영 간 대립의 심각성을 절감했다”고 말했다.

2019년 봄 윤석민 서울대 교수가 진행한 우리나라 지상파 방송 시사프로그램의 공정성 조사 연구 결과. 상당수 프로그램이 문재인 당시 정부에 우호적인 것으로 조사됐다./조선일보DB

그런 그가 요즘 “‘제대로 된 저널리즘 스쿨(Journalism School)’을 세우자”며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지난달 29일 서울대 관악캠퍼스 내 IBK커뮤니케이션센터 5층 연구실에서 기자와 만난 윤 교수는 “한국 언론의 위기가 밑바닥을 모를 정도로 깊어지고 있다. 이 상태라면 몇 년 안에 한국 언론은 회복 불능 상태가 될 것”이라며 “저널리즘 스쿨이 가장 유력하고 효과적인 방도”라고 말했다.

- 한국 언론은 무엇이 얼마나 위기인가?

“한국언론진흥재단이 2023년 3월 22일 발간한 ‘2022년 한국 언론연감’을 보면 신문·방송·인터넷·통신 등 언론산업 자체는 성장하고 있다. 문제는 언론 규범과 신뢰의 위기이다. 여기에 디지털 충격까지 겹쳐 우리 언론은 ‘3중(重)의 위기’에 직면하고 있다.”

2020년 1~2월에 실시된 조사에서 한국 언론에 대한 신뢰도는 조사 대상국 40개국 가운데 40위로 최하위를 기록했다./한국언론진흥재단

- ‘규범의 위기’라니?·

“전문직주의(專門職主義·professionalism), 권력 비판, 사안에 대한 심층 분석 같은 저널리즘 본연의 가치가 사라지거나 매우 엷어지는 것을 말한다. 인터넷 매체와 유튜버 같은 신종 유형 언론에 두드러지는데, 이들은 뉴스를 장사 즉 돈벌이 수단으로만 여기고 있다.”

◇규범·신뢰·디지털 등... 한국 언론의 ‘3중 위기’

윤 교수는 이어 말했다.

“종이신문, 지상파방송 같은 레거시(legacy)미디어 조차 진영화에 따른 극심한 ‘신뢰 위기’를 겪고 있다. 좌·우파 진영으로 나뉘어 상대방을 무조건 공격하고, 뉴스가 정파(政派)적으로 편향되는 경향이 갈수록 증폭되고 있다. 2000년대 초부터 20년 넘게 계속되고 있다.”

그는 “이로 말미암아 ‘의식있는 중도층’은 언론을 외면·불신하고 있으며, 언론들은 생존을 위해 충성 독자에 더 집착하고 있다. 이는 좌·우파 매체에 공통된 현상이다. 과거에 한국 언론계에 존재하던 정치 권력과 거대 시장 권력에 맞서는 공동의 연대감(連帶感)은 이제 없다”고 했다.

2013년부터 2021년까지 우리나라 미디어 채널별 영향력 추이/문화관광부
우리나라 주요 연령대별 언론 수용 현황. 전체 국민의 매체별 평균 이용율을 보면, 종이신문은 9.7%인 반면 인터넷 뉴스는 77%에 달했다. 자료 : 한국언론진흥재단 '2022 언론수용자 조사 결과'

◇“진정한 혁신 없이 외피만 디지털로 포장해”

- 디지털 전환도 위기 요인인가?

“그렇다. 기존 뉴스 소비자들이 인터넷과 유튜브 등으로 이동하면서 기존 신문·방송의 주목도와 영향력이 크게 약화됐다. 언론사마다 뉴스레터, 유튜브, 온라인 뉴스 전담팀, 새로운 기사작성 시스템(CMS)을 가동하고 있지만 진정한 의미의 혁신은 안 보인다. 인공지능(AI), 빅데이터 등 당대의 첨단 기술과 저널리즘을 결합해 시대 흐름에 맞는 기사를 쓰는 한국 언론은 전무(全無)하다.”

그는 “거의 모든 디지털 뉴스 콘텐츠가 예전 제작 방식과 문법, 콘텐츠를 그대로 둔 채 외피(外皮)만 온라인, 디지털로 포장해 바꾼 수준”이라고 말했다.

- ‘저널리즘 스쿨’ 필요성을 절감한 특별한 계기가 있나?

“학자로서 마지막 연구년(年) 학기를 2021년 9월부터 2022년 2월까지 5개월 정도 조선일보 편집국에서 언론현장 ‘참여관찰’ 연구를 수행한 게 직접적인 계기가 됐다.”

그의 이어지는 말이다.

“2020년에 <미디어 거버넌스>라는 1000쪽 가까운 책을 내면서, 나는 한국 언론에 희망을 잃고 있었다. 그래서 마지막 지푸라기를 잡는 심정으로 진짜 언론 현장은 어떤지, 언론이 위기를 극복할 수 있는 가능성이 있는가를 확인하기 위해 조선일보와 한겨레신문 두 곳의 참여관찰을 시도했다. 한겨레가 최종 거절해 조선일보에서만 현장 연구를 수행했다.”

윤석민(사진 왼쪽 마스크 끼고 앉아 있는 이) 교수가 2021년 10월부터 2022년 2월까지 조선일보 편집국 안에서 '참여관찰' 연구를 하고 있다./윤석민 교수

“나는 매일 오전 9시30분까지 출근해 밤 10~11시까지 편집국에 있으면서 각종 회의를 참관하고 토론과 편집 과정을 메모·녹음했다. 조선일보 사장, 발행인, 주필, 편집국장부터 신입 기자와 퇴직 사원까지 100여명을 면담하고, 45명과는 평균 2~3시간 일대일 심층인터뷰를 했다.”

◇2021년 9월부터 5개월간 조선일보 ‘현장연구’

- 무엇을 느끼고 발견했는가?

“부장급 이상을 빼면 대다수 편집국 기자(記者)들이 자신의 미래에 대해 회의(懷疑)하고 있었다. 이들은 한 마디로 기사를 못 고쳐서 안달난 사람들 같았다. 기사 내용과 제목, 심지어 사소한 사진 설명까지 고치고 또 고쳤다. 처음에는 ‘뭐 저렇게까지 하나’하며 어이 없어 했다. 그 고된 일이 주6일 쉼없이 지속되었다. 그 모습을 지켜보며 감동했다.”

조선일보에 '참여관찰' 연수를 하던 윤석민(사진 왼쪽) 교수가 김대중 조선일보 칼럼니스트를 상대로 심층면접하고 있다./윤석민 교수
윤석민 교수가 조선일보 5개월 현장 연구 내용에서 작성한 파일을 책으로 묶었다. 전체 아닌 일부인데도 4권에 총1000쪽이 훨씬 넘는 분량이다./송의달 기자

- ‘감동’이라니 어떤 점이 그랬는가?

“언론인들이 우리에게 이 세상에 대한 보다 정확한 팩트(fact)를 전달하기 위해 매일 이런 노력을 하는데 이를 제대로 알지 못했고, 감사는커녕 이들을 비난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지금까지 본 어떤 직종(職種) 종사자들보다도 헌신하고 있었다. ‘몸을 간다’고 표현할 수밖에 없었다. 대단한 보상(補償)을 받는 것도 아닌데 사명감 하나 갖고 극한의 최선을 다하고 있었다. 수업이든 연구든 평소의 노동 강도도 그렇고, 방학마다 1~3개월씩 연구실 문 닫고 지내는 교수들을 생각하니 얼굴이 화끈거렸다.”

- 그런데 왜 저널리즘 스쿨인가?

“가장 큰 이유는 디지털 전환 때문이다. 한국 언론은 디지털 전환에 반드시 성공해야 한다. 사회 전체가 디지털 문명으로 급속 진화하는데, 언론만 구(舊)시대·구대륙에 머물러선 안 된다. 이를 위해선 새로운 유형의 뉴스가 뭔지, 어떤 방식으로 어떤 뉴스를 만들어 제공할 때 이용자들이 관심을 보이고 적극 수용하는지 등에 관한 지속적인 분석과 실험이 필요하다. 그런데 매일 뉴스 제작에 허덕이는 언론사에겐 그런 혁신을 연구하고 실험할 여유와 인력이 없다. 위험 부담도 크다. 개별 언론사들에게 맡겨 놓아서는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모든 언론사에 도움주는 뉴스혁신 R&D 센터 필요”

- 왜 한국 언론사들은 스스로 디지털 혁신을 못 하나?

“가장 큰 이유는 시장 규모가 적어서다. 디지털 전환에 가장 성공한 뉴욕타임스(NYT)의 경우 전 세계 시장을 상대로 하고 매년 1000억원 이상을 디지털 상품 연구개발에 수년째 투자하고 있다. 하지만 NYT를 제외하면 미국 내 언론사들도 디지털 전환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 하물며 국내 언론은 어떻겠나. 국내 최대 일간지들조차 매출액으로는 중소기업 수준이다. 적은 수의 종사자들을 데리고 매일 뉴스 제작에 허덕이는 언론사에게 뉴스의 혁신을 연구하고 실험할 여유는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공공재적 속성을 지니는 이런 혁신에 대해 언론사가 투자할 유인도 존재하지 않는다. 따라서 개별 언론사들에게 맡겨 놓아서는 불가능한 과업이다.”

그는 이어 말했다.

“한국언론진흥재단 같은 정부 기관이 전국 언론사에 매년 십 수억원을 들여 디지털 전환을 돕고 있다지만, 언론사가 몇 곳인가? 이런 푼돈 나눠주기식 지원금으로는 성과를 거둘 수 없다. 게다가 이런 직접적 지원은 언론의 독립성 훼손 우려로 한계가 분명하다. 사회적 차원의 최고 교육기관이자 연구기관인 대학이 나서야 한다. 대학 안에 특정 언론사만 지원하는 게 아니라 모든 언론에 도움을 주는 뉴스 혁신 연구개발(R&D) 센터를 세워야 한다. 그 안에서 언론현장 수요에 부합하는 다양한 뉴스혁신 연구 과제가 돌아가고, 이런 과제 참여를 통해 디지털 능력을 지닌 언론 인력을 양성할 수 있다. 그것이 내가 생각하는 저널리즘 스쿨의 기본모형이다.”

미국 MIT의 미디어랩 건물 모습/MIT News
미국 MIT 미디어 랩 내부 모습/Flickr

- 기존의 신문방송학과나 커뮤니케이션 학과가 그 역할을 할 수 없나?

“서울대를 예로 들면 1968년부터 신문대학원이라는 저널리즘 스쿨을 운영하다가 1974년 폐지하고 사회과학으로서의 커뮤니케이션 이론 연구 및 교육에 주력하는 신문학과(현 언론정보학과)를 만들었다. 그 교수인력 및 교과과정은 저널리즘 스쿨과 동떨어져 있다. 기존 학과 재편이 아니라 저널리즘 스쿨을 새롭게 설립하는 것이 올바른 방향이다.”

인공지능(AI) 챗봇에 "뉴스 산업의 미래는 어떻게 될 것인가?"라고 묻자, 챗봇은 "첫번째로 디지털 전환(digital transformation)에 성공해야 한다"고 답했다./송의달 기자

◇전문 지식·디지털 능력·규범 교육 등 제공

- 저널리즘 스쿨에선 ‘디지털 관련 교육’만 하는가?

“그렇지 않다. 언론인으로서 가장 기본인 저널리즘 정신과 원칙·가치 등 규범성 교육과 정치·경제·기업·환경·문화 등 전문 영역지식 교육, 인공지능(AI)·코딩·빅데이터 같은 디지털 능력 교육 세 가지를 모두 제공한다.”

윤 교수는 이어서 말했다.

“이를테면 언론인의 윤리와 시대적 맥락을 바탕에 깔고 디지털 기법을 접목하고 활용해 환경이나 국제정치 관련 고급 콘텐츠를 만드는 식이다. 이를 위해 저널리즘 스쿨 안에 자체 미디어를 만들어 혁신적 뉴스 시도를 하고, 이용자 피드백도 받을 것이다.”

그는 “1년 열두달 365일 동안 끊임없이 새로운 뉴스 혁신을 탐구하는 시도가 우리나라 어디선가는 계속 되어야 한다. 이런 진짜 ‘뉴스 공장’의 대표 원형(原型)을 서울대에 먼저 하나 만들고, 서울 시내 주요 대학과 지역 거점대학에도 세워야 한다”고 했다.

- 스쿨 안에서 혁신과 실험의 ‘판’을 깔아주자는 말인가?

“그렇다. 학생들이 자기들이 배운 거를 종합해 24시간동안 마음껏 뛰어놀며 만들며(create) 실험하는, 그런 실험실 랩(Lab)같은 공간을 말이다. 이와 관련해서는 미국 MIT의 미디어랩, 미국 USC의 필름스쿨, 부산 경성대의 시빅 뉴스 같은 선행(先行) 사례가 있다.”

1908년 설립된 미국 미주리대 저널리즘 스쿨이 자체 운영하는 '컬럼비아 미주리언(Columbia Missourian)' 신문사 소속 기자들이 대통령 선거 개표 당일 편집국에 모여 있다./Columbia Missourian 
부산 경성대 커뮤니케이션 학과 소속 교수와 학생들이 자체 운영하고 있는 뉴스 사이트 '시빅 뉴스' 홈페이지(http://www.civicnews.com)/인터넷 캡처

윤 교수는 ““서울대 언론정보학과에서 운영하는 연합전공 ‘정보문화학’의 경우, 학생들끼리 자발적으로 해커톤이라는 경연 대회와 과제물 전시회를 벌이며 선의(善意)의 경쟁과 협업을 하고 있다. 강의실에서 이뤄지는 일방통행식 강의만으로는 미래의 수요에 부합하는 혁신을 만들 수도, 언론 인력을 기를 수도 없다”고 했다.

“학생들에게 꼭 필요한 최소한의 지식과 방향을 제공하고 나머지는 학생들 스스로 탐구하며 배우는 진정한 의미의 체험형 교육(learning by doing) 모형이다. 대학은 학생들이 학비 걱정 없이 마음껏 토론하고 실험하는 판을 깔아주는 것이다. 이들이 여기서 무엇을 만들어낼지는 상상(想像) 불가(不可)이다. 여기서 생산된 디지털 콘텐츠가 해외에서 큰 호응을 얻어 ‘K-저널리즘’이 활짝 피어날 수도 있다.”

◇실험실 랩·체험형 교육...K-저널리즘 꽃피워야

- 저널리즘 스쿨과 언론 현장은 어떻게 연계할 수 있나?

“저널리즘 스쿨에는 네 부류 학생들이 가능하다. 언론인 지망생, 언론사에 입사가 확정돼 곧 배치될 사람, 10~20년 경력을 지닌 언론인들, 언론사 경영자 후보 등이다. 신입 기자의 경우 출근 전 1년 동안 저널리즘 스쿨에 위탁하면 무료로 생활비를 받으며 각종 교육과 디지털 기법을 익힐 수 있다. 이렇게 교육받은 디지털 저널리즘 엘리트들은 각 언론사에서 변화와 혁신을 추동(推動)하고 콘텐츠의 품질을 높일 것이다.”

- 재원(財源), 즉 비용은 어떻게 하나?

“공간과 설비 등 초기 자금으로 100억원 정도가 필요하다. 서울대 학내 의사결정을 통해 저널리즘 스쿨 설립용으로 100억원 특별예산 신청을 한 상태이다. 이것을 꼭 받아야 한다. 이어 각종 장비와 프로젝트 수행 경비, 교수 인력 확보, 학생 장학금 등 운영자금으로 500억원을 모으려 한다. 기업과 개인 독지가, 전·현직 언론 관계자 등의 참여를 바란다.”

미국 뉴욕 컬럼비아대 저널리즘 스쿨 본관인 퓰리처 홀 정문 앞에 미국 3대 대통령인 토머스 제퍼슨 동상이 서 있다. 컬럼비아대 저널리즘 스쿨은 미국의 신문왕인 조셉 퓰리처가 기부한 200만달러를 갖고 1912년 문을 열었다. 1917년부터는 매년 '퓰리처상'을 시상하고 있다./Columbia Magazine

◇설립에 정부 예산 100억원 등 총500억원 필요

- 500억원은 큰 돈 아닌가?

“왜 이렇게 큰돈이 필요한가 할 텐데 교수 1인을 확보하는데 대략 25억~30억원이 필요하다. 모은 돈(기금)의 이자(利子)로 급여를 지급하려면 그렇다. 언론 교육이라는 숭고(崇高)한 목표에 부합하는 무게감과 상징성을 지닌 스쿨 건물도 지으려 한다. 우리 언론을 이끌 인재 양성과 언론 혁신의 가치(價値)는 헤아릴 수 없다. 500억 원은 최소 비용이다. 이 보다 더 가치 있게 쓰이는 돈은 없다고 해도 지나친 말이 아닐 것이다.”

윤 교수는 이어서 말했다.

“하버드대 니먼(Nieman)재단의 니먼 펠로우십 같은 해외 중견 언론인 유치·교육도 해볼만하다. 2~3년 전 중국 당국의 언론 탄압으로 홍콩 언론인들이 해외로 많이 떠났는데, 우리가 이들을 수용해 교육과 연구 저술 작업 등을 하는 피난처가 된다면, 대한민국 국격(國格)이 크게 오를 것이다.”

하버드대 니먼재단이 입주해 있는 월터 리프먼 하우스(Walter Lippmann House) 모습. 하버드대 캠퍼스 안에 있고 언론인 월터 리프먼의 이름을 붙인 건물이다./Nieman Foundation
니먼 재단이 2022년도에 접수해 운영한 니먼 재단 펠로우들/Nieman Foundation

그는 “K팝, K드라마, K 무비 같은 K컬처가 세계를 휩쓸 거라고 예상한 이는 거의 없었다. 기획사들과 영상원 등이 우수 인력 배출 등을 위해 집중투자하고 애쓴 결과이다. K-저널리즘도 충분히 가능하다”고 말했다.

◇“기자들 붙잡으려면 왜곡된 뉴스 소비·유통구조 고쳐야”

- 꼭 서울대 안에 저널리즘 스쿨을 만들 필요가 있나?

“저널리즘 스쿨 교육 목표 구현 차원에서 서울대가 최고의 여건을 갖추고 있기 때문이다. 서울대 데이터사이언스 대학원은 언론인을 위한 최고의 맞춤형 데이터 사이언스 교과들을 제공할 수 있다. 국제대학원, 행정대학원, 법학대학원, 경영·환경·보건대학원 등과 협동해 언론 인력에게 최고수준의 전문영역 지식전수 및 네트워크 형성 가능성을 제공할 수 있다.”

- 언론 현장에선 상대적으로 낮은 급여 등을 이유로 인재들이 떠나고 있다.

“해결책은 간단하다. 언론사가 더 많은 돈을 벌어 더 확실하게 보상하면 된다. 지금은 언론사가 돈을 못 버는 구조이다. 언론사가 열심히 만든 콘텐츠를 포털사이트와 1인 유튜브 미디어들이 떼 가는 탓이다. 기존 언론사가 만든 콘텐츠로 2차 장사하는 ‘커멘터리 저널리즘(Commentary journalism)’이 득세하는 뉴스 소비 유통구조를 바로잡는 게 시급하다.”

- 한국 언론은 포털사이트에 포획돼 있는데 어떻게 개혁할 수 있을까?

“포털을 운영하는 기업들은 저널리즘 가치에 앞서 트래픽(traffic) 유입을 중시하고 이로 인해 한국 언론은 갈수록 저질화(低質化)하고 있다. 이를 막으려면 포털 뉴스 거버넌스 개혁이 반드시 필요하다. ‘뉴스제휴 평가위원회’를 ‘포털뉴스위원회’로 새롭게 위상을 정립하는 게 그 방안이다.”

한국언론진흥재단의 '2022 언론수용자 조사 결과'. 20~30대의 인터넷 포털 뉴스 이용률은 평균 91%에 달한다./인터넷 캡처

그는 “지금은 저(低)품질 뉴스→독자 수준 저하→자극적 뉴스 생산과 낮은 보상(補償)이라는 포털 뉴스 거버넌스의 악순환이 굳어져 있다. 이것을 부가가치 높은 고(高)품질 뉴스→뜨거운 시장 호응 및 독자 수준 제고→양질의 뉴스 생산과 높은 보상으로 이어지는 선순환 구조로 탈바꿈시켜야 한다”고 했다.

윤석민 교수가 분석한 '현재의 포털 뉴스 거버넌스'와 '새로운 포털 뉴스 거버넌스' 개념도/윤석민 교수

◇“저널리즘 스쿨은 언론 지키려는 최소한의 장치”

- 4월 7일 ‘신문의 날’을 맞아 현직 언론인들에게 말씀 하신다면?

“어려운 환경 속에서도 묵묵하게 자기 역할에 충실하는 언론인들께 미안하고 고맙다는 말을 하고 싶다. 동시에 지금 하는 일과 노력을 포기하지 말고 지속해주길 바란다. 언론이 지금보다 더 나아질 수 있도록 대학이 작은 힘이라도 보탤 수 있다면 더 바랄게 없다.”

그는 “지난해 A신문사가 ‘언론 위기’를 주제로 개최한 세미나에서 모 대학 교수가 주제발표에서 ‘언론은 위기를 넘어 냉소의 대상이다. 언론이 아직도 존재하는가...’고 말하는 순간 부끄러움과 분노가 솟구쳤다. 언론이 이 지경되기까지, 그렇게 비판하는 학자들은 뭘 하고 있었나하는 자괴감(自愧感) 때문이었다. 지금까지 언론이 이 사회를 지켜왔다. 이제는 사회가 언론을 지켜야 한다.”

- 언론학자로서 앞으로 목표라면?

“제대로 된 저널리즘 스쿨 설립을 학자로서 마지막 소명(召命)으로 삼고 끝까지 갈 것이다. 묵묵히 현장을 지키고 있는 언론인들을 생각하면 미안함과 책임감에 가슴이 눌리는 심정이다. 거듭 강조하지만 저널리즘 스쿨을 세우려는 것은 언론의 문제를 탓하고자 함이 아니다. 저널리즘 스쿨은 본연의 책임을 다하고자 집요하게 사실(事實·fact)에 매달리며 고군분투(孤軍奮鬪)하는 언론을 지키기 위한 최소한의 제도적 장치다.”

윤석민 교수가 2020년 출간한 저서 <미디어 거버넌스>를 들여 보이고 있다. 참고문헌을 포함해 900쪽이 넘는 대작이다. 그는 "책 자료 조사와 집필에 6년 여 걸렸다"고 말했다./송의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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