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커스’의 핵잠수함, 남중국해 코앞에…핵 확산 빌미 되나

박병수 2023. 4. 4. 07: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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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체 드러내는 미·영·호주 군사동맹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가운데)과 리시 수낵 영국 총리(오른쪽), 앤서니 앨버니지 오스트레일리아 총리가 지난달 13일 미국 캘리포니아 샌디에이고 포인트 로마 해군기지에서 버지니아급 핵추진 잠수함 ‘미주리’를 배경으로 함께 서서 오커스 실행 계획을 발표하고 있다. UPI 연합뉴스

지난달 13일 미국 캘리포니아 샌디에이고의 포인트 로마 해군기지.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은 리시 수낵 영국 총리, 앤서니 앨버니지 오스트레일리아(호주) 총리와 함께 핵추진 잠수함 ‘미주리’를 배경으로 기자회견에 나섰다. 바이든 대통령은 이 자리에서 “우리는 앞으로 몇십년간 평화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역사적인 변곡점에 서 있다”며 중국 견제를 위해 오스트레일리아에 핵추진 잠수함을 제공하기 위해 만들어진 미국·영국·오스트레일리아의 군사협력체인 ‘오커스’(AUKUS) 동맹의 구체적인 실행 계획을 밝혔다. 세 나라가 2021년 9월 오커스 결성을 전격 선언한 지 1년 반 만이었다.

바이든 대통령은 이날 연설에서 국명을 직접 거론하지 않았지만, 오커스 결성에 나선 미국의 전략적 목적이 갈수록 강력해지는 중국의 군사력을 견제하는 데 있다는 건 두말할 나위가 없다. 미국은 경제적 측면에서 중국을 고립·배제하기 위해 지난해 이미 한국·일본 등 14개 나라가 참여한 ‘인도태평양경제프레임워크’(IPEF)를 출범시켰고,한국·일본·대만이 참여하는 ‘반도체 공급망 협력체’(칩4 동맹) 결성도 주도하고 있다.

중국을 겨냥한 다자 안보 틀로는 미국·일본에 오스트레일리아와 인도를 더한 ‘쿼드’가 이미 가동 중이다. 여기에 오커스를 보탠 것은 중첩된 방어망으로 중국의 군사적 움직임을 꽁꽁 둘러싸겠다는 의도로 풀이된다. 같은 안보협력체이지만 두 모임의 성격은 조금 다르다. 쿼드가 느슨한 형태의 안보대화라면, 오커스는 핵추진 잠수함 등 첨단 군사기술 공유 등 훨씬 강력한 군사협력을 지향한다.

■ 핵잠수함을 매개로 한 첨단군사기술 동맹

오커스의 핵심 구상은 미국·영국이 협력해 오스트레일리아에 핵추진 잠수함(SSN·줄여서 핵잠수함)을 공급하는 것이다. 바이든 대통령은 이날 ‘오커스’란 이름의 새로운 핵잠수함(SSN-AUKUS)을 공동 개발해 운용하겠다고 밝혔다. 이 핵잠수함은 영국이 설계할 차세대 잠수함을 토대로 미국의 기술 지원하에 개발된다. 첫 잠수함은 2030년대 말까지 영국에서 건조되고, 오스트레일리아에선 2040년 이후 만들어져 배치된다.

그때까지 전력 공백을 메우기 위해 미국은 버지니아급 핵잠수함, 영국은 어스튜트급 핵잠수함을 이르면 2027년부터 서부 오스트레일리아 퍼스 근처의 스털링 해군기지에 전진 배치할 계획이다. 또 2030년대 초까지 오스트레일리아에 미국의 버지니아급 핵잠수함 3척을, 필요할 경우 2척을 추가 공급하기로 했다. 미 해군의 7800t급 최신예 잠수함인 버지니아급 핵잠수함은 전략핵잠수함(SSBN)과 달리 핵무기를 운용하지 않는다. 대신 토마호크 미사일용 수직발사관(VLS) 12기, 하푼 미사일, 각종 어뢰 등 강력한 공격 무기로 무장하고 있다.

오스트레일리아 해군의 핵잠수함 계획은 오커스 차원에서 이미 일부 가동 중이다. 지난해 오스트레일리아 해군은 핵심 인력을 미국의 핵잠수함 교육 프로그램에 파견했다. 또 올해 말에는 미국의 핵잠수함이 오스트레일리아 승조원 훈련을 돕기 위해 오스트레일리아에 파견될 계획이다. 미국이 외국에 핵잠수함이나 관련 기술을 넘겨주는 것은 1958년 영국 이후 처음이다.

미국 해군의 버지니아급 핵추진 잠수함 ‘노스다코타’(SSN 784)가 2013년 8월 대서양을 항해하고 있다. 미 해군 제공/로이터 연합뉴스

오커스 동맹의 협력 범위는 핵잠수함에 그치지 않는다. 이들 세 나라는 훨씬 더 광범한 분야에서 군사기술 협력을 다짐하고 있다. 이들은 모두 17개의 합동워킹그룹을 구성할 계획이다. 이 중 9개가 잠수함 관련이고, 나머지는 수중드론, 극초음속 미사일, 차세대 위치정보시스템을 위한 양자기술, 인공지능, 사이버전, 전자전 등이다. 같은 문화와 언어를 공유하는 앵글로·색슨 동맹국들 간의 협력을 통해 중국에 대한 군사기술적 우위를 지켜내겠다는 의미로 해석된다.

■ 핵잠수함 남중국해·대만해협까지 작전 범위

오스트레일리아가 갖게 되는 핵잠수함이 군사 전략·전술 차원에서 큰 주목을 받는 것은 재래식 잠수함이 흉내 낼 수 없는 탁월한 원양작전 능력 때문이다. 재래식 잠수함은 항해 중 디젤엔진을 돌려 충전한 뒤 작전 때 충전한 전기를 동력원으로 쓴다. 따라서 바닷속에서 매우 조용하고 은밀하게 잠행할 수 있는 강점이 있다. 그러나 연료 보급 등 군수지원 없이는 먼바다까지 나가서 작전하기 어렵다.

반면 핵잠수함은 탑재된 원자로를 가동할 때 나는 고압수증기 배관 등의 가동 소리 때문에 재래식 잠수함보다 시끄럽다. 따라서 적 함정의 음파탐색기(소나)에 들킬 가능성도 커진다. 대신 재래식 잠수함보다 훨씬 빠르고 추가 연료 보급이 없어도 어디든 갈 수 있다. 소음 문제도 최근엔 다양한 방음 기술 개발로 많이 개선된 것으로 알려졌다. 또 깊은 바닷속에선 해수 온도와 염도 등의 차이로 소리가 도달하지 않는 음영 구역에 숨어 잠수함의 소음을 지우기도 한다.

영국 <이코노미스트>가 최근 미국의 싱크탱크 ‘전략 및 예산평가 센터’(CSBA)를 인용해 보도한 내용을 보면, 재래식 잠수함이 서부 오스트레일리아의 스털링 잠수함 기지를 출항해 남중국해에서 작전할 수 있는 기간은 11일에 그친다. 작전 지역이 대만해협 너머로 더 멀어지면 사실상 작전 참여가 어려워 무용지물이 된다. 반면, 핵잠수함은 승조원이 정신적·육체적 건강을 유지할 수 있다면 세계 어느 곳이든 언제까지라도 잠행하며 중국 함정을 위협하고 특수전 상륙부대를 실어 나를 수 있다.

따라서 오스트레일리아가 핵잠수함을 도입한다는 것은 인도·태평양 지역의 군사 균형을 뒤바꿀 수 있는 군사 전략·전술상의 큰 변화를 수반한다. 작전 범위가 대폭 확대되면서 재래식 잠수함으로는 엄두도 못 냈던 믈라카해협, 남중국해, 대만해협에서 미군과 함께 연합작전을 펼칠 수 있게 된다. 오스트레일리아가 남쪽에서 중국을 군사적으로 옥죄는 포위망의 일익을 담당하게 되는 것이다.

■ 한국 핵잠수함 추진에 선례 될까

오스트레일리아의 핵잠수함 보유는 핵무기 보유국이 아닌 나라로는 첫 사례다. 인도가 1998년 핵실험 이전 러시아로부터 핵잠수함을 임대해 일정 기간 사용한 뒤 되돌려준 적은 있지만 직접 보유하진 않았다.

핵확산금지조약(NPT)은 핵 비보유국의 핵잠수함 보유를 막지 않고 있다. 해군 함정 추진 동력으로 쓰이는 ‘비폭발성·군사용 핵물질’은 국제원자력기구(IAEA)의 ‘전면안전조치’에서 예외로 인정될 수 있다. 오커스의 핵잠수함 사업도 이런 예외 조항에 근거한 것이다.

영국 해군의 핵추진 잠수함이 2015년 8월 영국 스코틀랜드 패즐레인 해군기지에 정박해 있다. 로이터 연합뉴스

그렇지만 핵 확산을 우려하는 목소리가 끊이지 않는다. 중국도 오커스를 겨냥해 “불법적인 핵물질 이전”이라고 비판하고 나섰다. 오커스는 이에 대해 “핵잠수함의 원자로에 고농축 우라늄을 사용하지만 납땜 밀봉되어 장착된 뒤 연료 재장전이나 교체 없이 잠수함 퇴역 때까지 가동된다”며 “따라서 핵연료 유출 등 핵 확산 우려가 없다”고 반박하고 있다. 국제원자력기구는 오커스 세 나라와 핵 확산 방지를 위해 “매우 복잡하고 기술적인 협의”를 해나가겠다는 입장이다.

그러나 이번 사례가 핵잠수함 보유를 원하는 많은 나라에 선례가 되는 것을 피할 수 없다는 관측이 많다. 특히 한국의 해군 전략에도 여러모로 깊은 영향을 끼칠 수밖에 없다. 아직 한국 군당국이 핵잠수함 보유를 공식화한 적은 없지만, 북한의 핵잠수함 개발 움직임 등과 맞물려 “우리도 보유해야 한다”는 주장이 끊이지 않는다. 실제 문재인 전 대통령은 2017년 4월 대선후보 시절 토론회에서 “우리도 핵잠수함이 필요한 시대가 됐다”고 밝혔고, 2020년 7월 김현종 당시 청와대 국가안보실 2차장이 방송 인터뷰에서 “차세대 잠수함은 핵추진”이라며 의욕을 보인 바 있다.

미국은 이번 핵잠수함 사업이 “단 한번의 예외”라며 한국 등 다른 나라에는 적용할 뜻이 없다는 입장이다. 그렇지만 한국이 자체적으로 독자 기술 개발에 나서는 것조차 만류할 명분은 약해졌다. 물론 핵잠수함이 한국에 군사전략적으로 필요한지, 또 우리의 개발 역량은 얼마나 되는지 등에 대한 꼼꼼한 점검과 논의가 선행되어야 한다.

박병수 선임기자 suh@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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