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금피크제 씁쓸함, 춤으로 털었다…가수 바다도 '러브콜' 59세 댄서
"원-투-쓰리-포-파이브-식-세븐-에잇-업-락-투얼 포인트."
지난달 31일 서울 광진구의 한 댄스 연습실. 트레이닝복 차림을 한 세 사람이 인스타그램에 올릴 락킹 댄스 영상을 촬영하고 있었다. 락킹댄스는 스트릿댄스 장르 중 하나로, 펑키한 음악에 몸을 튕거거나 멈추고 회전을 하는 춤이다.
이들이 활동하는 댄스 크루 이름은 파이브락(5Lock). 2000년생 댄스 전공자 2명(24살), 1999년생 댄스 전공자 1명(25살), 96년생 프리랜서 직장인(28살), 65년생 신희섭씨(59)가 구성원이다. 매월 2주에 1번 모여 춤 안무를 짜고 1~2분짜리 숏폼 콘텐츠를 제작한다.
영상 조회수가 어마어마하다. 올리기만 하면 170만을 거뜬히 넘어선다. 가수 바다와 댄서 리아킴은 신씨에게 '콜라보레이션을 하고 싶다'는 댓글을 남기기도 했다. 신씨는 어떻게 50대 늦깎이 나이에, 그것도 00년생 MZ 세대들과 스트릿 댄스를 시작하게 됐을까.
스포츠 관련 준정부기관에서 31년째 일하고 있는 직장인 신씨는 지난해 7월 임금피크제에 들어가게 됐다. 신입사원부터 시작해 팀장, 실장, 본부장, 전문위원까지 거쳐온 신씨에게는 씁쓸한 제안이 아닐 수 없었다. 그는 "인생을 바쳐서 일해온 회사인데, 점점 퇴직이 다가온다는 생각에 외롭다는 생각이 많이 들었다"고 말했다.
그 날 저녁 신씨는 은퇴 이후의 삶을 고민하기 시작했다. 평소 춤을 동경했던 그는 더 늦기 전에 댄스 학원에 가야겠다고 다짐했다. 검색을 하던 중 서울문화재단에서 '서울 생활예술 페스티벌 2022'를 개최하는 사실을 알게 됐다. 서울 시민들이 함께 모여 춤도 추고 스트릿댄스 공연도 하는 프로그램이었다. 임금피크제로 인한 헛헛한 마음도 달래고 춤도 공짜로 배울 겸 오디션 영상을 보냈다. 큰 기대는 안 했다. 춤도 엉성했고 나이도 많아서였다. 그런데 2.5대 1의 경쟁률을 뚫고 최종 40명에 선발됐다.
오리엔테이션 첫 날. 신씨는 약속 장소에 모인 사람들을 보고 깜짝 놀랐다. 40명이 되는 크루원 중 본인만 유일한 50대였기 때문. 대부분 20~30대 청년들이었고 그 중에는 댄스 전공자가 10명 넘게 있었다.
신씨는 "막상 가보니 민망해서 있기가 좀 그렇더라"며 "그래서 내일부터 안나오겠다고 했다"고 말했다. 그러나 멤버들이 신씨를 붙잡았다. "어떻게든 도와주겠다고, 믿고 따라와달라"며 그를 설득했다고 한다. 그렇게 40명의 멤버들은 일주일에 1번 2시간씩, 2달 반동안 울랄라세션의 '아름다운 밤' 락킹 댄스를 연습했다.
공연을 성공리에 마친 그 날, 신씨는 그동안 느껴보지 못한 벅찬 마음을 느꼈다. 이들은 MT를 떠날 정도로 돈독한 사이가 됐다. 신씨는 페스티벌이 끝난 뒤에도 크루원 5명을 모아 숏폼 콘텐츠를 만들자고 제안했다. 그렇게 해서 탄생한 것이 바로 '파이브락'이다.
50대 중년 남성과 20대 멤버들은 입을 모아 다름을 인정하는 자세로 세대간 장벽을 깨뜨릴 수 있었다고 말했다. 신씨는 자신 역시 기성세대이기 때문에 '꼰대' 마인드가 있었다고 한다. 모임을 운영할 때는 회장부터 뽑고 보는 식이다. 그러나 젊은 세대는 카카오톡 채팅방을 만들어 자율적으로 역할을 나누고 아이디어를 공유했다. 그는 "젊은 친구들을 보면서 고맙고 미안했다"며 "시대가 달라진 것을 인정하고 우리 세대 역시 부족한 점을 인정하고 맞춰나가면서 소통할 필요가 있다고 본다"고 밝혔다.
파이브락 멤버인 김하림, 차수빈씨는 오히려 신씨에게 더 고마운 게 많다고 했다. 멤버들은 신씨를 '아부지'라고 부른다. 김씨는 "아부지는 우리가 하고 싶은 방향성을 말하면 언제나 묵묵히 따라와 주신다"며 "한 번도 비난을 하신 적이 없다"고 말했다. 차씨는 "제가 춤에 있어서 선배이기에 저를 리스펙 해주시는 면이 있다"며 "믿고 맡겨주시니까 더 용기내서 다가갈 수 있는 것 같다"고 했다.
신씨의 은퇴 이후 목표는 '춤 전도사'가 되는 것이다. 파이브락은 올해 버스킹 공연뿐 아니라 크리스마스 공연도 진행할 예정이다. 파이브락 멤버들은 마지막으로 이렇게 말했다. "춤 추는데 나이가 무슨 상관이에요. 우린 그냥 오랫동안 함께 춤 추고 싶은 댄서 친구들일 뿐이에요."
김지은 기자 running7@m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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