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리아 독재정권 실세는 엘리트 영부인? "국모 자처하며 돈세탁·횡령"

이유진 2023. 4. 4. 04:30
음성재생 설정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국가의 어머니 자처하는 경제통?...두 얼굴 
'무늬만 자선단체'로 국제 지원금 독차지
기업 임원 구금 후 '몸값' 뜯는 횡포까지
튀르키예·시리아 강진이 발생한 지난 2월 아스마 알아사드(왼쪽) 시리아 대통령 영부인이 배우자인 바샤르 알아사드 대통령과 함께 라타키아 지역 병원을 찾아 병상에 누운 부상자를 위로하고 있다. 라타키아=로이터 연합뉴스

12년간의 내전으로 30만6,000명의 누적 사망자를 냈다. 24년 동안 독재자로 군림하면서 고문과 학살도 자행했다. 온갖 부패 의혹으로 국제 제재도 받고 있다. 바샤르 알아사드 시리아 대통령 얘기다. 그러나 어쩌면 알아사드 정권의 ‘메인 빌런’은 대통령 본인이 아닐 수도 있다. 영국 파이낸셜타임스(FT)는 2일(현지시간) 대통령 영부인인 아스마 알아사드 여사를 시리아의 ‘숨은 실세’로 지목했다.


런던 출신 '엘리트 영부인'의 두 얼굴

FT는 시리아 기업 대표와 전직 정부 관리, 구호 활동가 등 18명을 인터뷰한 내용을 토대로 “아스마 여사가 시리아 내 가장 강력한 인물 중 한 명이 됐다”며 이같이 보도했다. 대통령 직속 비공식 경제위원회를 꾸려 기업 등에서 자산을 압류하는 것은 물론, 본인이 수장으로 있는 비정부기구(NGO)로 돈을 세탁하는 수법으로 알아사드 가문의 배를 불리고 있다는 것이다.

영국 런던 태생인 아스마는 전 세계 1위 은행인 JP모건에서 일했던 엘리트 신여성이다. 시리아가 내전에 휩싸이기 직전 민주화 시위가 격화하자 워싱턴 근동정책연구소 등 싱크탱크는 “서방에서 자란 아스마라면 (민주주의에 대한) 알아사드 정권의 적대감을 누그러뜨리기 위해 영향력을 행사할 것”이라는 기대를 걸기도 했다.

그러나 예상은 빗나갔다. 영부인은 침묵했다. 정부군이 시리아 영토 대부분을 장악한 2016년 이후에서야 그는 ‘국가의 어머니’를 자처하며 군인 가족, 암 투병 환자 등을 만나 위로했다. 대외적인 ‘악역’을 남편에게 맡긴 채, 누구보다 분주한 모습을 보였다. 여기까지는 큰 문제가 없었다.

아스마 알아사드 시리아 영부인이 2010년 시리아 수도 다마스쿠스에서 열린 '시리아 트러스트' 주최 제1차 시리아 국제 개발 회의 개막식에서 연설하고 있다. 다마스쿠스=로이터 연합뉴스

"경제위원회와 NGO로 국민 재산 압수·세탁 주도해"

하지만 이는 ‘가면’을 쓴 속임수에 불과하다는 평가다. 2020년 도널드 트럼프 미국 행정부에서 활동했던 조엘 레이번 시리아 특사는 당시 “아스마가 시리아 정권 자금의 중심이 되고 있다”고 지적한 바 있다. 실제 FT가 만난 시리아 정부 소식통들은 아스마가 이끄는 비공식 경제위원회가 ‘사리사욕을 챙기는 통로’가 됐다고 입을 모았다. 이 위원회는 영부인의 수석보좌관 등 최측근들로 구성됐으며, 내전 장기화로 2019년 시리아 통화 가치가 95% 이상 하락하자 기업 등의 재산 압류를 주도했다.

문제는 폭력적 방식을 사용한 데다, 끌어모은 자금 행방도 불투명하다는 점이다. FT에 따르면, 알아사드 정권은 기업체에 직속 회계사를 보내 무작정 범법 꼬투리를 잡아 ‘벌금’을 걷거나, 회사 임원을 구금 처리한 뒤 가족이 ‘몸값’을 지불하기 전까지 자산을 동결시켰다. 이렇게 모인 돈은 일반적인 세금 징수 절차 없이 대통령궁이 직접 관리하는 자선기금이나 은행계좌로 보내졌다.

2020년 내전을 피해 시리아 데이르발루트의 난민 캠프를 떠난 이들이 코로나19 감염을 우려해 다시 돌아가고 있다. 난민 어린이들이 캠프로 되돌아가는 트럭 뒤에 타고 있는 모습. 데이르발루트=로이터 연합뉴스

아스마가 2007년 설립한 NGO ‘시리아 트러스트’도 부패의 한 축으로 지목됐다. 이 기구는 시리아 내 자선사업을 사실상 독점하고 있다. FT는 소식통을 인용해 “지난해에도 당국이 사무실을 급습하고 직원들을 감옥에 가둬 한 아동 지원 NGO가 문을 닫았다”고 전했다. 인도적 지원을 위해 해외에서 유입된 현금을 영부인의 NGO가 독차지하고 있는 셈이다.

미국 싱크탱크인 중동연구소의 엠마 빌스 연구원은 “아스마의 자선단체가 (독재자인) 남편에 의해 피해를 입은 이들에게 보호와 법적 지원을 제공한다는 것 자체가 아이러니”라고 꼬집었다. 그마저도 알아사드 정권이 피해 규모와 별개로 지정한 지역에 대해서만 인도적 지원이 허락된다.

아스마가 ‘페이퍼 컴퍼니’를 설립해 국제기구로부터 현금을 받아 챙긴 정황도 포착됐다. 2018년 유엔에서 40만 달러(약 5억2,620만 원) 규모의 대피소 복구사업을 비롯, 최근 수년간 여러 입찰 사업을 따낸 건설회사 ‘데야리’가 의혹의 업체다. 시리아 트러스트가 이 회사의 지분 100%를 갖고 있는 사실이 드러났기 때문이다. 유엔마저 아스마의 ‘자금세탁’에 이용됐을 공산이 큰 셈이다.

이유진 기자 iyz@hankookilbo.com

Copyright © 한국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