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팀워크로 똘똘 한국 농구에 화려한 본토 개인기 심겠다”

강동웅 기자 2023. 4. 4. 03: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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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혈선수 드래프트 출신 이승준
조선대 코치로 농구인생 새 출발
“여러해 성적 안좋아 선수들 위축
프로서도 통할만큼 이끌고 싶다”
귀화 혼혈선수로 국내 프로농구 리그에서 뛰었던 이승준이 지난달 조선대 코치를 맡아 지도자로 제2의 농구 인생을 시작했다. 이 코치가 지난달 28일 서울 종로구 동아미디어센터에서 조선대 코칭스태프 유니폼을 어깨에 걸친 채 카메라 앞에 앉았다. 장승윤 기자 tomato99@donga.com
“너네 나랑 약속 하나만 하자.”

2010년 광저우 아시아경기 당시 남자 농구 국가대표팀 사령탑이던 유재학 감독(60)은 첫 훈련을 앞두고 선수들에게 이렇게 말했다. 베이스라인부터 자유투 라인, 하프라인, 상대 지역 자유투 라인, 베이스라인을 차례로 찍고 오는 왕복 달리기 훈련을 시키면서 ‘라인 터치를 정직하게 할 것’을 주문한 것이다. 선수들이 이를 잘 지키면 ‘훈련은 3시간만 하겠다’고 유 감독은 약속했다.

광저우 아시아경기 국가대표였던 이승준(45)은 당시 유 감독의 주문과 약속을 지금도 잊지 못한다. 지도자와 선수가 조금씩 신뢰를 쌓아가며 똘똘 뭉치게 된 계기가 됐기 때문이다. 한국은 광저우 아시아경기에서 준우승을 차지하며 8년 만에 대회 시상대에 올랐다. 지난달 6일 이승준은 유 감독의 말을 다시 한번 되새겼다. 이날 조선대 코치로 선임된 그는 ‘선수를 믿는 지도자, 선수가 신뢰하는 지도자’가 되기로 결심했다. 한국계 혼혈선수 드래프트를 거쳐 국내 프로농구에서 뛰었던 선수가 국내 프로 팀이나 대학에서 지도자 생활을 하게 된 건 이승준이 처음이다. 미국인 아버지와 한국인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난 그는 미국 대학농구와 미국프로농구(NBA) 서머리그를 경험했다. 국내 프로 리그에서 2007∼2008시즌엔 현대모비스에서 외국인 선수로, 2009년 이후로는 귀화한 혼혈선수 자격으로 삼성, 동부(현 DB), SK 등에서 뛰었다.

지난달 28일 만난 이승준은 “미국과 한국에서 모두 선수로 뛰어봤다. 한국 농구는 선수들 사이의 호흡과 전술을 중요하게 여기는 편”이라며 “이런 팀워크를 해치지 않는 선에서 미국 농구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높은 개인기를 선수들에게 가르치려고 한다”고 했다.

이승준에게 대학농구 지도자의 기회는 우연히 찾아왔다. 2015∼2016시즌 SK에서 은퇴한 그는 2017년부터 3대3 농구 국가대표로 뛰며 선수 생활을 이어갔다. 2021년 강양현 조선대 감독(41)이 3대3 농구 대표팀 사령탑을 맡았는데 이승준에게 조선대 코치 자리를 제안한 것이다. 평소 지도자가 되겠다는 생각을 진지하게 해본 적이 없던 이승준은 강 감독의 제안을 두고 고민했다. 그러다 작년 6월 아내 때문에 3대3 농구 루마니아 여자 대표팀 코치를 잠시 맡은 것이 지도자의 길에 관심을 갖는 계기가 됐고 결국 조선대 코치로 이어졌다. 이승준의 아내는 여자 프로농구 신한은행에서 뛰고 있는 김소니아(30)다. 한국인 아버지와 루마니아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난 김소니아는 3대3 농구 루마니아 국가대표를 지냈다. 이승준은 “루마니아 대표팀 선수들을 직접 가르치면서 코치 일에 재미를 느끼게 됐다”고 했다.

1988년 창단한 조선대 농구부는 대학 리그 1부에서 하위권을 맴도는 팀이다. 1부로 승격한 2010년 이후 최고 성적은 2016년의 10위(전체 12개 팀)다. 이번 시즌에도 3일 현재 4전 전패로 경희대와 함께 최하위인 공동 11위다. 이승준은 “조선대는 여러 해 동안 성적이 좋지 않아 선수들이 움츠러든 탓에 제 실력이 나오지 않고 있는 것 같다”며 “자신감을 키워주면 조금씩 달라진 모습을 보여줄 것”이라고 말했다.

이승준은 NBA 시카고 감독을 지낸 필 잭슨이 쓴 책 ‘NBA 신화’를 감명 깊게 읽었다고 했다. 그는 특히 “‘지도자의 자아는 늘 선수보다 낮은 곳에 있어야 한다’는 문장이 가슴에 와닿았다”며 “어떤 순간이든 내 감정을 먼저 다스린 뒤 선수들을 대할 것”이라고 했다.

이승준의 올해 목표는 조선대가 최소한 9위 이내에 들어 한 자릿수 최종 순위표를 받아드는 것이다. 그는 “팀이 하나가 되면서 성적도 좋아지고 선수들이 농구를 즐길 수 있게 되는 선순환을 만들고 싶다”며 “성장 가능성이 있는 선수들이 언젠가 프로에도 진출할 수 있게 도와주고 싶다”고 했다.

강동웅 기자 leper@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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