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크라 침공 옹호’ 유명 블로거 암살…반전 전력 여성 체포
러 “우크라가 배후”…푸틴의 ‘정신적 지주’ 딸도 작년 폭사
우크라 대통령 고문 “항아리 속 거미들이 서로를 잡아먹어”
러시아 제2도시인 상트페테르부르크의 한 카페에서 2일(현지시간) 폭발물이 터져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을 옹호해온 유명 군사 블로거가 숨지고 최소 30명이 다쳤다. 이번 사건이 ‘표적 공격’으로 확인된다면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이후 전쟁을 옹호해온 유력 인물이 러시아 본토에서 암살된 두 번째 사례가 된다.
스푸트니크통신 등 러시아 현지 언론 보도에 따르면 이날 상트페테르부르크 도심의 한 카페에서 강력폭약인 TNT를 쓴 것으로 추정되는 폭발 사고가 발생했다. 러시아 내무부는 사망자가 유명 군사 블로거인 블라드랜 타타르스키(40)라고 밝혔다. 폭발 당시 카페에서는 타타르스키가 주도하는 독자와의 토론회가 열리고 있었다.
현지 언론은 이 행사에서 한 여성이 타타르스키에게 군인 흉상 모양의 조각상을 선물했으며, 이 조각상에 폭발물이 들어 있었던 것으로 추정된다고 보도했다. 수사당국은 과거 반전 집회에 참여해 구금된 전력이 있는 20대 여성 다리야 트레포바를 3일 체포했다고 텔레그램을 통해 밝혔다.
러시아 정부는 폭발물 테러의 배후로 우크라이나를 지목하고 있다. 타타르스키는 50만명 이상의 독자를 거느린 유명 블로거로, 러시아군의 우크라이나 침공을 지지하는 입장을 취해왔으며 최근에도 러시아군의 작전과 인사 등에 대한 논평을 써왔다. 마리야 자하로바 러시아 외교부 대변인은 타타르스키의 그간 활동이 “우크라이나 정권에 대한 증오심을 불러일으켜왔다”면서 서방 국제단체들이 외면하는 동안 우크라이나가 러시아 언론인들을 위협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러시아가 병합한 도네츠크인민공화국(DPR) 수장 데니스 푸실린은 “타타르스키는 비열하게 살해됐다”며 “우크라이나 정권은 테러 정권이며 반드시 파괴되어야 한다”고 말했다.
러시아의 평론가와 군사 블로거들은 지난해 8월 러시아 극우 민족주의자인 알렉산드르 두긴의 딸 다리야 두기나가 차량 폭발로 숨진 데 이어 이번 폭발 역시 우크라이나의 ‘표적 공격’이라고 주장했다.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의 ‘정신적 지주’라고 불리는 두긴은 당초 두기나와 함께 이동할 예정이었으나, 막판에 일정을 변경해 목숨을 건졌다. 두긴은 러시아의 제국주의적 구상을 담은 ‘유라시아주의’를 주창해온 민족주의 정치철학자로 ‘우크라이나 전쟁의 설계자’로도 불린다. 러시아 연방보안국(FSB)은 이 사건 발생 직후 줄곧 우크라이나 정부를 배후로 지목해왔지만 우크라이나 측은 이를 거듭 부인했다. 이후 미국 정보당국도 두기나의 폭사에 우크라이나 정부의 승인이 있었다고 보고 있다는 뉴욕타임스 보도가 나오기도 했다. 두긴은 이번 폭발로 사망한 타타르스키를 “불멸의 영웅”이라고 칭송했다.
가디언은 “타타르스키가 의도적인 표적이 됐다면 그의 죽음은 러시아 영토 안에서 벌어진 유명 전쟁 옹호자에 대한 두 번째 암살”이라고 보도했다.
우크라이나는 현재까지 이번 폭발에 대한 공식 입장을 밝히지 않고 있다. 미하일로 포돌랴크 우크라이나 대통령 고문은 트위터를 통해 “거미들이 항아리 안에서 서로를 잡아먹고 있는 것”이라며 “러시아의 테러리즘이 내부 정치투쟁의 도구가 되는 것은 시간문제였다”고 말했다.
본명이 ‘막심 포민’인 타타르스키는 러시아가 점령한 우크라이나 도네츠크주 출신으로, 그가 운영하는 텔레그램 채널에서 56만명의 구독자를 보유하고 있다. 우크라이나 전쟁 발발 후 ‘타타르스키’라는 필명의 군사 블로거로 변신해 러시아의 침공을 옹호해왔다. 러시아 정부는 우크라이나 침공 이후 전쟁을 비판해온 자국 언론을 탄압하고 해산하는 한편 침략 전쟁을 옹호하는 군사 블로거들을 선전에 활용해왔다.
선명수 기자 sms@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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