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재 우려 커지고, 관심 줄어…‘전기차 제대로 알리기’ 숙제[전기차, 아직은]
1년치 전기차 관련 네이버 검색어
차량 화재 사건 때마다 관심 폭증
“불이라도 나면 어떡해. 무섭지 않아?”
2021년 전기차를 구매해 2년 가까이 타고 있는 직장인 A씨는 지인들에게 종종 이런 질문을 듣는다. 차에 대한 애정이 깊은 A씨에게 주변의 걱정 어린 관심과 참견은 스트레스로 다가온다. 물론 그 역시 방지턱을 넘을 때나 울퉁불퉁한 도로를 달릴 때, 차체 하부의 배터리가 상하지 않도록 신경을 쓴다. 혹시라도 배터리가 손상돼 화재 사고의 당사자가 될 수 있다는 일말의 우려 때문이다. 하지만 A씨는 “전기차가 본격적으로 보급되기도 전에 ‘위험하다’는 인식부터 생겨난 것 같다”며 “신문물을 일찍 받아들인 저의 선택이 잘못된 것 같아 마음이 아플 때가 있다”고 말했다.
배터리 안전성은 전기차 시장 확대를 판가름할 최대 화두로 꼽힌다. 현재 가장 많이 쓰이는 리튬이온 배터리는 이른바 ‘열폭주’가 발생하면 일반 화재와 견줘 막대한 양의 소방 자원이 필요하다. 하지만 아직 국내 전기차 보급률은 1%대의 ‘걸음마’ 단계다. 전기차 안전성에 대한 대중적인 인식이 ‘확고한 사실’ ‘사실에서 약간 과장을 보탠 주장·의견’ ‘왜곡된 뜬소문’ 등이 뒤섞인 상태인 것도 사실이다. 전문가들은 실제보다 부풀려진 위험이 친환경 차량 확대의 걸림돌로 작용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
‘전기차’ 관심은 ↓, ‘전기차 화재’는 ↑
‘전기차’와 ‘화재’. 두 키워드는 잠재 소비자들의 인식에 어떤 영향을 미치고 있을까.
경향신문이 국내 최대 포털 네이버의 검색어 분석 서비스 ‘데이터랩’을 통해 분석한 결과 전기차에 대한 검색 빈도는 2021년 4월부터 2022년 3월까지 1년여간 상승세를 그렸다. 가장 검색량이 많았던 시점은 2022년 1월19일로 검색값은 100을 기록했다.
정부가 전기차 보조금 지원대상을 전년도에 비해 2배 늘린다는 내용을 담은 ‘2022년 전기차 보조금 지침’을 행정 예고한 날이다. 연말 내내 보조금 지침을 기다리며 전기차 구매를 미뤄 오던 사람들이 정부 발표를 확인하려고 부랴부랴 검색한 것으로 보인다. 네이버 데이터랩은 분석 기간 중 가장 검색량이 많은 날의 값을 100으로 두고 상대적인 검색량 변화를 나타낸다.
하지만 이후 1년여간 전기차에 대한 관심도는 뚜렷한 하락 곡선을 그린다. ‘전기차’ 검색 빈도는 지난해 초 이후 내리막길을 걷다가 지난달 26일 기준 32까지 떨어졌다. 차량용 반도체 수급난으로 전기차 ‘생산 병목현상’이 지난해 내내 이어진 점, 하반기 이후 금리 부담으로 자동차 수요가 다소 냉각된 점 등이 복합적으로 작용했을 것으로 추정된다.
반면 ‘전기차 화재’ 검색량은 서서히, 그리고 꾸준히 늘고 있다. 가장 많은 검색은 2022년 2월10일 이뤄졌다. 검색값 97을 기록했다. 부산의 한 아파트 주차장에서 발생한 전기차 화재로 주변 차량 4대가 전소되는 사건이 벌어진 날이었다. 국내 한 중소 자동차 제조사에서 생산한 전기 밴에서 갑자기 화염이 솟구쳐 인근 차량까지 집어삼키는 장면이 폐쇄회로(CC)TV에 고스란히 잡혀 방송 뉴스에서도 생생히 보도됐다.
‘전기차 화재’ 키워드 검색량 그래프는 관련 사건이 터질 때마다 마치 ‘피뢰침’ 같은 형상의 길다란 파장을 남긴다. 2022년 6월6일과 14일에는 각각 31과 42를 기록했다. 지난해 6월4일 부산 강서구 남해고속도로 요금소에서 발생한 사고의 후속보도가 잇따르던 시점이었다. 당시 현대차 아이오닉5가 충격흡수대를 들이받은 뒤 약 3초 만에 보닛 쪽에서 발생한 불길이 차량 전체로 번졌다. 운전자와 동승자는 탈출하지 못한 채 사망했다.
다음 ‘검색 피뢰침’은 같은 해 9월26일 만들어졌다. 검색량은 52까지 솟구쳤다. 대전 유성구 ‘현대프리미엄아울렛’ 지하주차장에서 불이 나 7명이나 숨지고 1명이 다치는 사건이 벌어진 날이었다. 충전 중이던 전기차에서 첫 불씨가 발생했을 가능성이 제기되면서 검색 빈도가 급증했다. 이후에도 경북 영주 전기택시 화재(12월7일·검색량 63), 부산 북구 주행 전기차 화재(12월26일·17), 세종시 전기차 전소 사건(2023년 1월10일·28) 등 관련 뉴스가 전해질 때마다 검색 빈도는 급증했다.
영상 접할 땐 부정적 이미지 강화
보급 전에 ‘위험하다’ 인식 확산
과장된 주장에 왜곡 확대재생산
전기차 보급 초기단계 ‘장벽’될 수도
종합적으로 보면, 지난 1년여간 ‘전기차’에 대한 관심도는 줄어드는 반면 ‘전기차 화재’는 관련 사건이 발생할 때마다 급격히 관심이 쏠리는 형태로 점점 늘어나는 양상이다. 특히 정보기술(IT) 발전과 영상 플랫폼의 확대로 사고 장면은 거의 실시간으로 불특정 다수에게 생생히 전달돼 부정적인 이미지를 형성한다. 지난 1월 발생한 서울 성수동 테슬라 서비스센터 화재가 대표적이다. 당시 차주는 계기판에 표시된 배터리관리시스템(BMS) 오류 메시지부터 시작해 차량 내부에서 물이 끓어오르는 소리, 펑 하고 튀는 불꽃, 사고 대응을 위해 방문한 서비스센터에서 본격적으로 발생한 화재와 소방관들의 진화 장면 등을 3시간여에 걸쳐 영상으로 담아 온라인에서 공유했다.
그러나 막상 전기차를 수년간 몰아 온 차주들에게 화재 가능성은 그렇게 큰 걱정거리는 아닌 것처럼 보인다. 1년4개월간 테슬라를 타 온 직장인 B씨는 “제조사에서 하지 말라는 일, 이를테면 전기 배선을 건드리거나 하는 행위를 하지 않은 입장에선 딱히 염려되는 부분이 아니다”라며 “테슬라의 경우 블랙박스 설치, 앰비언트 조명 같은 튜닝 문제로 배선을 건드리는 경우가 종종 있다”고 말했다.
일부 과장됐거나 사실관계가 잘못 알려진 사건도 많다. 지난해 9월 대전 현대프리미엄아울렛 주차장 사고는 애초에 전기차와 아무런 관련이 없었다. 일부 매체가 초기에 ‘전기차 폭발 추정’으로 보도했을 뿐, 실제로 발화가 시작된 차량은 내연기관 트럭이었던 것으로 확인됐다. 지난 1월 부산 북구 화재도 발화 25분 만에 진화됐는데 배터리에서 난 불이라면 그렇게 빨리 진압하기 어렵다. 전문가들은 배터리가 아닌 외부 전장부품 배선 문제일 가능성에 무게를 두고 있다.
통계상 내연기관차와 비교할 때
전기차 화재 빈도는 높지 않아
통계를 보면 전기차가 내연기관차에 비해 불이 더 잘 나는 것도 아니다. 소방청에 따르면 2017년부터 2022년까지 일어난 전기차 관련 화재는 총 90건이다. 2017년 1건을 시작으로 꾸준히 늘어 지난해에는 44건을 기록했다. 내연기관 차량 화재는 같은 기간 총 2만7883건이 발생했다.
총 차량 대수를 놓고 비교하면, 화재사고를 겪는 비율은 오히려 내연기관차가 소폭 높다. 지난해 12월 기준 전국에 등록된 내연기관 차량(휘발유·경유·LPG)은 총 2373만2076대이며, 내연기관차 화재는 총 4512건 벌어졌다. 발생 비율은 0.019%다. 반면 전기차는 총 38만9855대가 등록됐으며 지난해 발생한 화재(44건)의 비율은 0.011%다.
“강렬한 사고 장면 뇌리 박히는
비행기 사고 경우와 비슷한 현상”
전문가들은 ‘전기차는 위험하다’는 인식이 마치 비행기 사고를 대하는 태도와 비슷하다고 말한다. 발생 확률은 자동차 사고보다 낮지만, 치명률이 높고 사고 현장도 상당히 끔찍하기 때문에 일반인들에게 깊숙이 각인된다는 것이다.
박철완 서정대 스마트자동차학과 교수는 “(화재 현장이) 기록에 남아 사람들의 뇌리에 충격을 주게 되면 전기차 구매를 망설이는 요인이 될 수 있다”며 “전기차 확대가 어느 정도 이뤄진 상황에서는 이것도 일반 교통사고처럼 만성적인 사고로 인식될 수 있지만, 보급 초기에는 부정적으로 작용할 것”이라고 말했다.
김상범 기자 ksb1231@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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