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견·선입견과 싸워낸 조승우의 ‘유령’

이강은 2023. 4. 3. 20: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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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승우, 부산에서 ‘오페라의 유령’ 첫 공연
2016년 ‘스위니토드’ 이후 7년 만에 새 작품
캐스팅 되자 보컬 지도까지 받고 무대 올라
“도망가고 싶었지만 많은 분이 용기를 주셨다”
팬텀의 광기·사랑 열연… “조승우는 역시 조승우”
지난 1일 오후 1시쯤, 부산 남구 문현동에 위치한 뮤지컬 전용극장 드림씨어터 주변은 인파로 북적거렸다. 1시간 후 시작하는 뮤지컬 ‘오페라의 유령’ 공연을 보러 전국에서 온 관람객들이었다. 과장을 좀 보태면 대부분 조승우(43) 팬들로 보였다. ‘오페라의 유령’은 2001년 한국어 초연 이후 해외 오리지널팀의 내한 공연까지 합쳐 이번이 여섯 번째 공연이지만 조승우로선 처음 서는 무대이기 때문이다. 그가 2016년 ‘스위니토드’ 이후 7년 만에 선택한 새 작품에서 어떤 모습을 보여줄지, 관객들은 기대감과 흥분으로 가득 찬 표정이었다. 인터미션(휴식 시간) 포함 2시간30분 길이의 공연이 끝나자 관객들은 기립 박수로 화답했다. 특히 커튼콜에서 조승우가 인사하러 나올 땐 극장이 떠나갈 듯한 환호성이 터져 나왔다.
조승우가 7년 만에 새 작품으로 선택한 뮤지컬 ‘오페라의 유령’에서 주인공 ‘유령(팬텀)’ 역을 맡아 열연하고 있는 모습. 에스앤코 제공
세계적 명성을 자랑하는 작품의 타이틀롤을 맡은 데다 팬들의 기대감이 엄청나 부담이 클 법도 했지만 조승우는 조승우였다.

그는 흉측한 얼굴 반쪽을 마스크로 가린 채 오페라극장 지하에 숨어 사는 천재 음악가 ‘팬텀(유령)’ 역을 맡아 열연했다. 팬텀의 고독과 살인도 마다치 않는 광기, 신인 오페라 가수 ‘크리스틴’을 향한 사랑과 집착, 좌절 등 복잡한 내면을 섬세하게 표현했다. 특히 크리스틴이 가면을 벗기면서 극적 긴장감이 최고조로 흐르고 결국 크리스틴을 귀족 청년 ‘라울’에게 돌려보내기까지 팬텀의 분노와 애절함을 보여준 연기는 압권이다. 2000년 임권택 감독 영화 ‘춘향뎐’을 통해 데뷔한 뒤 뛰어난 연기력으로 무대와 스크린, 브라운관을 오가며 흥행 보증수표로 자리매김한 배우다웠다. 무대 장악력도 여전했다. 이날 목 컨디션이 완전하지 않은 듯, 감정이 고조되는 극 후반부에 노래하다 일부 음정이 흔들리기도 했지만 크게 문제 될 정도는 아니었다. 다른 팬텀 역 배우인 김주택·전동석·최재림(7∼11월 서울 공연에 합류)과 달리 성악 전공자가 아니지만 특유의 호소력 짙은 소리와 정확한 발음으로 노래할 때 팬텀의 감정을 잘 실었다. 노래 실력이 수준급임에도 팬텀 역에 캐스팅되자 캐릭터에 가장 어울리는 소리를 내기 위해 보컬 지도까지 따로 받을 만큼 노력한 흔적이 엿보였다. 앞서 조승우가 출연했던 ‘지킬앤하이드’, ‘헤드윅’, ‘스위니토드’ 등 뮤지컬 작품처럼 현재까지 판매된 부산 공연의 조승우 공연 회차는 전석 매진된 상태다.

그는 이날 공연을 마친 뒤 제작사 에스앤코를 통해 “‘(팬텀 역할이) 내게 너무 큰 옷인가’ 두려웠고 도망가고 싶을 때도 많았다. 수많은 편견, 선입견과 싸우느라 홀로 많이 지치기도 했었다”며 “하지만 많은 분이 용기를 주셨고, 절실한 마음으로 무대에 첫발을 내디뎠다”고 말했다. 이어 “많이 떨고 실수도 많았지만 ‘최선을 다하겠다’는 약속은 무대에서 지킨 것 같다. 부족했던 제게 응원과 박수를 주셔서 감사하다”고 관객들에게 고마움을 표시했다.
사진=에스앤코 제공
나흘간의 프리뷰 공연을 마치고 지난달 30일 개막한 ‘오페라의 유령’은 가스통 르루(1868∼1927)의 동명 소설을 원작으로 앤드루 로이드 웨버 음악과 해럴드 프린스 연출 등 뮤지컬계 거장들이 손잡고 만들어 작품 자체가 뛰어나다. 압도적인 무대 연출과 극적인 러브 스토리, 중독성 강한 멜로디 등 관객의 눈과 귀를 사로잡으며 작품 속에 빠져들게 한다. 1986년 런던 웨스트엔드와 1988년 뉴욕 브로드웨이에서 각각 초연된 후 로런스 올리비에상과 토니상 등 각종 상을 휩쓸며 전 세계 188개 도시에서 1억4500만명 이상 관객을 끌어모았다.

1∼3층 합쳐 1700석이 넘는 뮤지컬 전용극장인 드림씨어터는 오리지널 초연 당시의 감동을 고스란히 느낄 수 있도록 완비했다. 1t짜리 초대형 샹들리에가 천장에서 객석으로 아찔하게 떨어졌다가 무대 앞으로 날아가는 장면, 팬텀이 크리스틴을 배에 태우고 안개 자욱한 지하 호수에서 노 젓는 장면, 40명가량 배우가 형형색색 의상을 입고 춤추는 가면무도회 장면 등은 다시 봐도 감탄이 나온다.

‘오페라의 유령(The Phantom of the Opera)’, ‘바람은 그것뿐(All I Ask of You)’, ‘생각해 줘요(Think of me)’, ‘그 밤의 노래(The Music of the Night)’ 등 넘버들은 극장을 나서도 귓가에 맴돈다. 대사와 가사를 전혀 손댈 수 없었던 기존 한국어 공연 때와 달리 13년 만의 이번 한국어 공연에선 우리 정서에 맞고 어색하지 않도록 번역돼 관객이 작품에 더욱 몰입할 수 있게 됐다. 김주택 등 성악에 정통한 배우들이 폭발적 성량을 뽐내는 팬텀을 보는 것도 색다른 매력으로 다가올 듯하다. 팬텀에 의해 무명 가수에서 프리마돈나로 거듭나는 크리스틴 역은 성악 전공자인 손지수와 송은혜가, 크리스틴의 연인으로 팬텀과 맞서는 라울 역은 송원근과 황건하가 맡는다. 막대한 제작비 때문인지 티켓 가격은 다소 비싼 편이다. VIP석 19만원, R석 16만원, S석 13만원, A석 9만원, B석 7만원이다. 부산 공연은 6월 18일까지.

부산=이강은 선임기자 kelee@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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