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앵커리포트] '무이자'로 벌금 빌려 드려요...장발장 은행 "폐업이 소망"
굶주린 가족을 위해 빵 한 조각을 훔쳤다가 총 19년간 감옥살이를 했던 비운의 주인공, 소설 '레미제라블'의 장발장입니다.
소설의 배경에서 200여 년이 흘렀지만, 경기 침체 속에 '먹고 살기 힘들어' 저지른 생계형 범죄는 갈수록 늘어만 가는데요.
이런 상황에서 특별히 죄질이 나쁘고 위험해서라기보다 벌금을 낼 형편이 못 되어서 교도소에 갇히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지난 2022년 한 해에만 2만 5,975명이 벌금 내지 못해 교도소에 갔는데요.
이런 현실 속에서 적어도 가난해서 교도소를 가는 일은 줄여보자는 취지에서 벌금을 빌려주는 은행이 있습니다.
벌금형을 선고받았지만 이를 낼 형편이 안 돼 교도소에 갈 처지에 놓인 이들에게 무담보·무이자로 벌금을 대출해주는 '장발장 은행'인데요.
같은 벌금 100만 원이라도 모두에게 무게가 같진 않죠.
형편에 따라 부자에겐 대수롭지 않은 금액일 수도, 가난한 이에겐 생계가 무너지는 금액일 수도 있는데요.
'가난이 가중처벌이 되어선 안된다'는 뜻 아래 세워진 이곳은 개인이나 종교단체 등의 자발적 후원금을 절박한 이들에게 벌금으로 빌려주고 있습니다.
최대 300만 원을 지원자의 신용이 아닌, 상황을 엄격히 판단해 지원해주는데요.
소년소녀가장이나, 한부모 가정, 미성년자 등이 심사 우선 대상으로 장발장 은행의 지원으로 지난 8년간 1,180명이 감옥행을 면했습니다.
동일한 범죄 행위에 대해 소득에 상관없이 동일한 금액의 벌금을 부과하는 현행 '총액벌금제'를 개혁해 문을 닫는 게 목표라는 '장발장 은행'.
핀란드나 스웨덴, 독일 같은 나라에서는 벌금을 재산이나 소득에 비례해 책정하는 '일수벌금제'를 시행하고 있는데요.
같은 벌금형이라도 소득과 재산에 비례해 벌금을 달리 부과하면 형벌의 불평등을 해소할 수 있지만, 정확한 재산을 산정하는 데에 따른 어려움과 함께 때로는 재산 은닉을 시도하는 문제가 일어나기도 합니다.
제도별 장단점에 따라 여러 의견이 갈리며, 우리나라에선 십수 년째 지지부진한 개혁 논의만 이어지고 있는데요.
형벌이 한층 더 공정해져 장발장 은행이 필요하지 않은 세상이 오길 기대해 봅니다.
YTN 윤보리 (ybr0729@yt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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