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장 칼럼]`동학 운동`의 결말을 다시 쓰려는 개미들에게

이윤희 2023. 4. 3. 18: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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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학 개미'라는 말이 정확히 어디서 나왔는지는 모르겠지만, 그다지 좋아하지 않는다.

과거 농민들이 양반의 탐학과 외세 침략에 저항했듯이 자본과 정보가 상대적으로 적은 개인 투자자들이 대세 하락장에서 외국인의 투매를 받아내며 증시를 방어했다는 뜻으로 반쯤 농담처럼 부르는 말일 것이다.

코스피 '3천시대'의 공로자는 분명 동학 개미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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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윤희 증권팀장

'동학 개미'라는 말이 정확히 어디서 나왔는지는 모르겠지만, 그다지 좋아하지 않는다. 과거 농민들이 양반의 탐학과 외세 침략에 저항했듯이 자본과 정보가 상대적으로 적은 개인 투자자들이 대세 하락장에서 외국인의 투매를 받아내며 증시를 방어했다는 뜻으로 반쯤 농담처럼 부르는 말일 것이다.

하지만 시장의 투자자가 주식을 매수하는 행위를 한국 역사상 최대 규모의 농민 운동에 비유할 수 있을까. 투자자가 수익 말고 다른 이유를 위해 돈을 내놓을 수가 있나. 게다가 단기 투자 위주로 레버리지·인버스 등 투기성 상품에 집중한 개미들을 과연 저항의 상징으로 부를 수 있을까.

뭐라고 부르든 코로나 기간 '동학개미운동'은 성공적으로 진행됐다. 주가는 하락세를 멈추고 반등했고 더 많은 주식 투자자들이 증시에 유입됐다. 지난해 기준 전국민 4명 중 1명이 주식 투자에 뛰어들었다. 그랬다. 코스피 '3천시대'의 공로자는 분명 동학 개미들이었다.

이들의 주식 계좌에 파란 불이 켜진 것은 그리 오래 걸리지 않았다. 동학 개미 600만명이 사들인 '국민주' 삼성전자는 한 때 10만원선까지 넘봤지만 반도체 업황 둔화에 현재는 절반 수준인 5만~6만원대를 오가는 수준이다. 장이 호황일 때 진입해 빚을 내어도 쉽게 돈을 벌어 갚을 수 있었던 초보 개미들은 금리 인상의 직격탄을 맞았다. 금리 인상에 이자율은 높아가고 증시 부진에 담보비율이 하락하면서 신용거래한 주식들은 반대매매 당할 처지에 놓였다.

개미들은 하락장에서 평정심을 잃었다. 무리한 신용거래에 큰 손실을 보는 사람이 늘었지만 레버리지 투자는 좀처럼 줄지 않는다. 지난달 말 기준 신용공여 잔액은 연초보다 2조원 순증한18조5837억원에 달한다. 잃은 본전만은 되찾겠다는 마음이 들었을 것이다.

국내 개인 투자자들은 기초자산 움직임의 2~3배 수익률을 추종하는 레버리지와 주가가 떨어지면 수익이 나는 인버스 상품 등 위험성이 큰 종목들을 선호한다. 수익도 크지만 위험성도 그만큼 큰 '화끈한' 투자를 좋아한다고 볼 수 있다. 상장지수 상품이 한국에 도입되던 초기만 해도 일시적인 현상으로 시간이 지나면서 증시가 성숙하면 이런 것들에 대한 관심도 자연히 줄어들 것이라고 했지만, 현재도 전체 상장지수펀드(ETF) 거래의 절반은 레버리지나 인버스형 ETF다. 여전히 개인 투자자들의 거래대금 상위권, 순매수 상위 종목 대부분이 이런 상품들로 차 있다. 연초 주식시장이 반등했음에도 개미들은 인버스 또는 '곱버스'라 불리는 인버스 레버리지 상품을 매수하고, 반대로 레버리지 상품을 순매도하는 역행적인 대응을 보였다. 당연히 또 손실로 이어졌다.

앞서 말했듯 '동학 개미'라는 말을 좋아하지 않는다. 가장 큰 이유 하나는 내 동료이고 친구이고 가족인 동학 개미들이 총에 맞아 전멸한 역사 속 농민들처럼 슬픈 결말을 맞지는 않았으면 하는 것 때문이다. 그렇다면 덜 슬픈 별명을 붙일 순 없을까.

우리 역사에서도 성공한 주식 투자자가 있다. 명동 사보이호텔의 설립자 조준호라는 사람이다. 그는 광복 직전까지 운영됐던 최초의 증권거래소 조선증권취인소에서 가장 큰 돈을 번 주식 부자였다. 조선인 조준호는 당시에도 일본 증권거래상의 횡포와 정보력 부재를 이겨내고 증권사를 설립했으며 개인 투자자로서도 투자와 운용에 성공했다. 그의 투자 원칙은 생각보다 단순하다. 시대의 흐름을 예측하고 위기를 기회로 삼는는 것이다. 기회를 위기로 만들어버리는 무분별한 투자를 멈춰야 할 때다. stel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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