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딜레마]①25년째 날개 못 편 불완전변태
공적자금 원금 회수하자 장관급 관료를 회장으로
한국 CA 꿈 키운 농협금융 '임', 이브의 유혹 다시 받는 '임'
[아이뉴스24 김병수 기자] 우리금융그룹은 한마디로 딜레마 덩어리다. 국제통화기금(IMF) 외환 위기 때 부실 금융 지정에 따른 강제 구조조정은 면했다. 공적자금을 받게 된 건 아팠지만, 일본처럼 메가뱅크의 꿈을 키우며 버텼다. 그러나 공적자금은 족쇄로 작용하고, 옛 상업·한일이 합병한 후 25년을 허송세월하며 명맥만 유지했다. 이젠 장관급을 지낸 임종룡 회장이 키를 잡았다. 임 회장이 이 딜레마 덩어리에서 어떤 묘수를 찾아낼지 관심이다. [편집자]
1997년 IMF 외환 위기를 계기로 조(흥)·상(업)·제(일)·한(일)·서(울신탁) 5대 시중은행은 모두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졌다. 조흥은 신한은행, 제일은 미국 사모펀드, 서울은 하나은행에 넘어갔다. 상업·한일은행은 스스로 합병을 선언했다. 1998년 7월 31일의 일이다. 자율 합병이라곤 하지만, 내용은 그렇지 않다. 기업 대출 비중이 컸던 두 은행은 누구도 사려하지 않아, 어쩔 수 없이 합칠 수밖에 없었다.
그 유명한 이헌재 당시 금융감독위원장의 설계에 따른 것이다. 그렇게 두 은행은 12조7천663억원의 국민 세금을 지원받았다. 대신 '국내 최대 총자산 105조원, 세계 100위권 은행 첫 진입'이라는 타이틀을 거머쥐었다. 이때까지만 해도 합병 한빛은행(1999년 1월, 우리은행의 전신)이 꿈을 키우던 시절이다. 이 시기에 일본도 금융회사의 합종연횡을 통한 메가뱅크 전략을 들고나왔다.
스탠더드 앤드 푸어스(S&P) 글로벌이 발표하는 100대 은행(2022년)에 미쓰비시 UFC 금융그룹(MUFG)이 6위에 올라선 것이 대표적이다. 12위 미쓰이스미토모(SMFG), 15위 미즈호(Mizuho) 금융그룹도 10위권을 유지하고 있다. 우리나라에선 KB금융 61위, 신한금융 66위, 농협금융 75위, 하나금융 76위, 우리금융 83위 수준이다. 그러나 이 데이터는 국내에서 처음으로 100대 은행에 진입한 합병 한빛은행이 어떻게 추락했는지도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우리금융은 번데기 과정을 거치지 않고 애벌레에서 국민의 혈세를 받아 허물을 벗고 성충으로 갑자기 컸다. 생명과학에선 이를 불완전변태(不完全變態)라고 부른다. 하지만 현재는 그저 초라할 뿐이다. 비슷한 과정을 거친 일본 MUFG와는 비교할 수도 없고, '첫 100대 은행'이라는 타이틀이 무색하게 국내 후발주자들에게 추월당한 지도 오래다. 그렇게 우리은행은 골치 아픈 천덕꾸러기 신세가 됐다.
예금보험공사는 지난해 5월 18일, 우리금융지주 지분 2.33%를 추가로 매각하면서 사실상 완전 민영화를 이뤘다고 자랑스럽게 선언했다. 공적자금 원금 12조7천663억원 대비 약 1천억원을 넘겨 회수했고, 남은 잔여 지분은 1.29%(1700만주)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25년간 이자를 1%만 받더라도 2조7천억원(단리)~3조6천억원(복리)이다. 한국은행 기준금리나 연 물가상승률을 적용하면 그야말로 뒤통수 부여잡고 넘어질 숫자가 나온다.
이런 셈법은 치사하거나 졸렬하다고 할 수도 있다. 그러나 우리금융의 현재 기업 가치를 생각해보면 정말 그럴까. 우리금융이 2014년 4월에 NH금융에 팔아치운 우리투자증권의 가격이 1조 500억원이었다. 당시 우리금융의 가장 큰 자회사였다. 9년 전 가격에서 생기는 착시를 고려하더라도, 정부와 금융정책 및 감독 당국이 다시 따져 볼 일은 한둘이 아니다. 그렇게 찬찬히 복기해야 다시 실수할 가능성을 줄일 수 있다.
그 중심에 임종룡 회장이 있다. 임 회장의 커리어와 금융 관료로서의 명성은 이론의 여지가 없다. 품성도 온화하다. 덕장의 풍모를 갖췄다. 세계 최대 의결권자문사인 ISS도 '관료라는 이유로 반대하려면 정부 영향력 등 반대파가 주장하는 우려에 설득력 있는 충분한 증거가 필요하다'며 임 회장의 선임에 찬성 권고를 했다. 삐딱하게 보면 '반대 증거 불충분'인데, 관료 출신이라는 점만으로 관치를 우려할 수는 없다는 것으로 해석한다.
실제로 그렇다. 아마도 임 회장의 역할은 번데기 시절도 없이 허물을 벗고 커버린, 그러나 날개를 펴지 못한 우리금융을 날게 할 현재로선 가장 힘 있는 사람인지도 모른다. 금융업계가 임 회장을 부담스러워하는 것은 결국 끈끈한 관료 선후배를 활용한 시너지(?)가 작동하기 시작하면 우리금융이 금융 판을 흔들 수도 있다고 보기 때문이다.
주변인 취급받는 농협금융이 한국의 크레디아그리콜(Crédit Agricole Group·CA)을 꿈꾸게 한 장본인이 임 회장이라는 점을 너무나 잘 알고 있어서다. 프랑스의 협동조합 은행그룹인 CA는 S&P 글로벌 기준으로 세계 10위다. 농협금융을 이끌던 임 회장은 2014년에 우리투자증권을 인수해 본격적으로 금융그룹의 모습을 갖췄다. 농협금융은 같은 기준으로 우리금융그룹을 멀찌감치 제쳤다.
임 회장이 이브의 사과 '공적 자금'을 삼킨 한빛은행의 원죄를 풀 수 있는지, 아니면 아담 임 회장마저 이브의 사과를 받아먹고 함께 낙원에서 쫓겨날지는 21세기 임 회장의 몫이다.
[우리 딜레마 글 싣는 순서]
①25년째 날개 못 편 불완전변태
②팔지도, 사지도 못한 官의 굴레
③지겨운 책임론, 그 뒤에 숨은 관료들
④빛이 되지도, 우리도 아닌…
⑤임종룡의 '우리별'은 언제쯤… (끝)
/김병수 기자(bskim@inews24.com)Copyright © 아이뉴스24.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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