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성한, 이혼’, 흔해 빠진 기적을 귀하게 조명하는 드라마 [김재동의 나무와 숲]
[OSEN=김재동 객원기자] “제가 두 가지가 궁금한데요. 왜 지금인가요? 왜 저인가요?”
2일 방송된 JTBC 토일드라마 ‘신성한, 이혼’ 10회에서 이혼 소송을 맡게 된 신성한(조승우 분)이 의뢰인 마금희(차화연 분)에게 던진 질문이다.
이에 마금희는 “차일피일 하다가 늙을게 두려워 지금이고 끝까지 달려줄 엔진이 신성한 변호사밖에 없는 것 같아서.”라고 답하며 “많이 받아주세요. 나 돈 필요해요.” 라고 강조한다.
전 사돈총각인 신성한으로선 충분히 궁금할 수 있는 대목이고 마금희의 답변도 투명해 보인다. 신성한도 흔쾌히 재산분할 50%부터 시작해 보자고 답한다. 소송전략을 묻는 마금희에겐 베토벤 피아노 협주곡 3번 같이 풀어보겠다고 답한다.
아울러 이 곡은 초연 당시 미완성이었으며, 보통 2회에 걸쳐 진행되는 리허설도 1회에 그쳤고, 함께 하기로 한 연주자들도 당시 ‘천지창조’를 공연한 하이든에게 빼앗겼음에도 성공적으로 마칠 수 있었다고 부연한다. 불리하지만 이길 수 있다는 자신감의 표현이다.
그러나 이 말갛게 보였던 마금희의 의뢰는 10회 말미 신성한의 조카 기영이 혼자 찾아와 “변호사님, 저 좀 도와주세요. 저도 변호해주세요”라며 눈물을 흘리는 엔딩을 맞으며 마냥 투명하기만 한 것은 아니라는 느낌을 남겼다. 마금희의 이혼소송은 어쩐지 기영을 의식한 선택으로 보인다.
당초 마금희는 죽은 전 며느리 신주화(공현지 분)의 생일 즈음에 하와이로부터 홀연히 귀국했다. 신성한과 몇 차례 만남을 가지며 다시 하와이로 돌아갈 것임도 시사했다. 하지만 어느 순간 마음이 변했다. 아들 서정국(김태향 분)을 동반해 허름한 시골집을 구입했다.
당시 두 모자의 대화도 의미심장했다. “나 기영이 데리고 여기서 살까하는데..”(마금희) “어머니!”(서정국) “떠본 말이다. 너한테 기영이는 있어도 없어도 그만인 아이 아닌가 해서.”(마금희) “성에 안차는 아들이어도요. 자식이 소중하지 않은 그런 부모는 아니예요.”(서정국) “그러니까. 천만다행이라구”(마금희) “당연한 걸 다행이라구 하시니까..”(서정국) “당연한 걸 왜 뺏겠다고 했니? 주화도 기영이가 소중할 거잖아 당연히.”(마금희)
마금희는 확실히 손자인 기영의 편이고, 죽은 전 며느리 신주화에 대한 연민을 가지고 있으며, 그래서 그 오빠인 신성한에게도 호의적임이 분명하다.
평생을 남편 서창진(이호재 분)의 여자관계 정리에 보낸 마금희다. 그런데 아들 서정국이 아비와 똑같은 행태를 보였다. 며느리 신주화는 이혼당하고 양육권까지 뺏겼다. 서창진의 여인들처럼 뻔뻔하고 탐욕스런 진영주가 그 자릴 차지했다. 신주화는 뺑소니 사고로 목숨마저 잃었다. 동병상련을 넘어선 시어머니로서의 죄책감도 가슴 한 켠에 묵직하게 자리잡았다.
그런 마금희가 말했다. “많이 받아주세요. 나 돈 필요해요.”라고. 한국에서 낙향해 살겠다고 허름한 농가를 구입한 마금희가 돈이 많이 필요하단다. 그 용도는 무엇일까?
서창진(이호재 분)이 진영주에게 마금희와의 이혼소송에서 변호인단과의 중간연락책을 맡으라며 나눈 대화에서 단초를 찾아볼 수 있다. 진영주는 “기영이한테 줄 지분 저 주세요.”라 요구했고 서창진은 “니 몫을 갖고 싶은 거냐? 기영이의 손발을 자르고 싶은 거냐?”고 되물었다. “하율이, 하율이를 지키고 싶다는 마음예요.”라는 답변에는 “하율이 몫을 주는 걸로 하자”고 정리했다.
허름한 농가를 개축해 낙향해 살겠다는 마금희에게 필요한 많은 돈은 그렇게 탐욕스런 진영주로부터 기영을 지켜낼 수단이기에 필요한 것으로 보인다.
드라마는 시종 표면과 이면의 문제를 다뤄왔다. 서창진과 마금희의 이혼 소식도 선정적으로 다뤄진다. ‘재벌가 세기의 이혼’ ‘재벌가 가정사 민낯 보게 될까?’ ‘굴지 기업 회장 일가 또 다시 파경’ 등의 헤드라인을 달고 호사가들의 구미를 당기는 기사들이 쏟아져 나온다.
그 와중에 재벌 3세 기영은 편의점에서 컵라면으로 허기를 달랜다. 마치 모든 것이 풍족한 진영주의 식탁에선 허기를 달랠 수 없다는 듯. 그리고 단 하나 남은 비빌 언덕인 외삼촌 신성한을 찾아와 도와달라고, 변호해달라고 울음을 터뜨린다.
11회 예고편에서 기영은 호소했다. “이제 내 편이 하나도 없어, 삼촌!” 아마도 믿고 의지한 할머니 마금희마저 이혼하고 떠날 것이라는 위기감 때문일 수도 있고, 따르던 배다른 동생 하율이마저 진영주의 농간으로 거리를 두기 때문일 수도 있다.
같은 예고편에서 박유석(전배수 분)은 진영주를 압박했다. “잊었어요? 범죄잖아요. 우리가 한 거!” 그리고 “이제야 악보가 좀 해석되네요”라 말하는 신성한에게 마금희는 “맞아요. 곡 해석 정확하게 하셨네.”라 추어주기도 한다. 종영 2회를 남겨두고 메인스토리를 마감하는 분위기임은 확실하다.
매회 에피소드를 통해 주제를 전달해온 이 드라마가 종영과 함께 매조질 또 하나의 이야기는 이서진(한혜진 분)의 성장스토리다. 불륜 동영상의 주인공으로 1화부터 비난받던 이서진은 자신의 실수를 뼈아프게 반성하며 신성한 변호사 사무실을 통해 조심스럽게 사회복귀를 타진해왔다.
시간이 지나면 상처는 치유되기 마련이다. 하지만 마음의 상처를 치유하기 위해선 스스로 용기라는 도파민을 만들어 낼 줄 알아야 한다. 이서진은 도저히 용서할 수 없는 악플러를 마주했다. 14살 소녀 악플러는 절규했다. 바람 핀 주제에 자식 지키겠다고 꼴값 떠는 게 재수 없었다고. 당신이 그렇게 엄마 행세를 하면 바람 피고 집 나가 잘 살고 있는 엄마한테 버려진 자신은 뭐가 되냐고.
이서진은 안도했을 것이다. 최악 속에서 자신이 냈던 용기가 의미 없지 않았음을 확인했을 테니까. 신성한에게 도와달라고 했던 것은 정말 잘한 일이었으니까. 세상 대부분이 욕하는 것 같아도 사무실 식구들과 라면집 사장님, 메이크업 한번 손 봐준 걸 평생 은혜로 아는 후배PD 등 어려울 때 손 내밀어줄 사람들은 주변에 언제나 있다는 것을 확인했으니까. 그래서 조언할 수 있었다. 화가 나더라도 악플을 다는 대신 도움을 청하라고. 드라마 종영시점의 이서진은 좀 더 단단해진 채 완벽하게 일상으로 복귀할 것으로 기대된다.
드라마가 주제가 담긴 에피소드들 못지않게 중요하게 다루고 있는 포인트가 신성한, 장형근(김성균 분), 조정식(정문성 분) 3인방의 관계다.
셋이 함께 하면 달리 어찌할 도리가 없이, 즉 하릴없이 쓸 데 없다. 지들만 아는 농담에 낄낄대고, 몇 푼 안되는 술값에 각세우고, 공동구매한 간장게장 나누는데 치사하게 예민하다. 거창한 내일이나 천년만년 번영을 기약하진 않지만 얼버무려도 이해해주고 함께 탄식하면서 발맞춰 걸어간다. 각자지만 서로의 문을 열어 서로를 환기시키고 서로의 휴식이 되고 위안이 된다. 드라마는 이 흔해 빠진 기적을 귀하게 조명한다. 드라마의 주제를 오롯이 담고있기 때문이다.
결국 ‘인생의 열쇠는 인간’이란 것이 ‘신성한, 이혼’이 하고 싶은 말인 듯 싶다. 아티스트 로이어 신성한이 남은 2회 이 주제를 어떻게 연주해 갈지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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