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국서 20년은 더 살라하더라… 난 ‘청춘’ 여전히 건축공부”

장재선 기자 2023. 4. 3. 09: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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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세계적 건축가 안도 다다오, 직접 설계한 ‘뮤지엄 산’서 개인전
이인희 전 고문 요청으로 지어
“산 속 미술관 누가 올까 했지만
1년 20만 명 이상 방문에 놀라”
미술관 앞 3m 푸른사과 설치
“한 번 만지면 한 살 젊어져요”
고졸에 암으로 장기 5개 떼 내
“희망 찾아 항상 공부하며 살아”
안도 다다오가 청춘을 상징하는 ‘푸른 사과’ 조형물 앞에서 포즈를 취했다. 그는 “살아 있는 동안은 청춘”이라고 했다. 뮤지엄 산 제공

글·사진 = 장재선 선임기자 jeijei@munhwa.com

암에 걸려 장기 5개를 적출했다는 그는 희망이라는 단어로 생의 의지를 강력하게 피력했다. 그러면서도 달관의 유머로 사람을 웃게 만들었다. 올해 82세의 건축가 안도 다다오(安藤忠雄) 이야기다. 그는 “천국과 상담했더니 앞으로 20년은 더 살라고 하더라”며 “나이가 들어도 ‘청춘’을 유지하며 살아가는 본보기가 되고 싶다”고 했다.

일본 출신의 세계적 건축가인 그는 강원 원주의 ‘뮤지엄 산(MUSEUM SAN)’에서 개인전을 지난 1일부터 열고 있다. 오는 7월 말까지 펼쳐지는 이번 전시는 뮤지엄 산 개관 10주년을 기념한 것이다. 안도가 자신이 설계한 공간에서 여는 최초의 전시로, 그의 대표작 250점을 스케치와 모형, 사진, 영상으로 소개한다.

그는 뮤지엄 산 입구에 3m 높이의 ‘푸른 사과’ 조형물을 설치했다. ‘청춘은 인생의 시기가 아닌 어떠한 마음가짐’이라는 새뮤얼 울먼의 시에서 영감을 받은 작품이다. 그는 “관객들이 푸른 사과를 한 번 만질 때마다 한 살씩 젊어질 것”이라며 웃었다.

이번 전시를 계기로 지난달 31일 뮤지엄 산을 찾은 안도는 이인희(1928∼2019) 전 한솔그룹 고문을 떠올렸다. “이 고문이 전 세계에 없는 건물을 만들어달라고 했죠. 저는 그때 누가 이런 곳에 미술관을 지을까, 과연 사람들이 여기까지 올까 싶었어요. 그랬더니 이 고문은 사람들이 오게 만드는 것은 우리들의 역할이라고 하더군요. 자연 속에 재미를 갖춘 미술관을 만들면 도시인들이 찾을 것이라고 했죠. 그래도 저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았는데, 지금은 1년에 20만 명 이상이 찾고 있다고 하더군요. 아마 남성들이 집에 누워서 쉬고 싶다고 하면, 여성들이 끌고 오는 게 아닐까요(웃음).”

그는 뮤지엄 산 건축 스케치에 ‘李仁熙 樣(이인희 양)’이라고 써 놨다. 이 고문과 원활하게 소통했음을 명기한 것인데, 발주자 의사를 존중하며 자신의 개성을 실현해 온 조화의 예술철학을 엿볼 수 있다.

자연 풍광을 끌어들이는 노출 콘크리트 건축 양식으로 유명한 안도는 자타가 공인하는 당대 정상급 건축가이다. 지난달 29일 서울대를 찾아 강연했을 때 학생들이 열렬히 환영한 것은 그의 인기를 실감케 했다. 도쿄대 교수를 지낸 바 있는 안도의 서울대 강연은 심상한 일정으로 보이지만 그의 학력을 감안하면 예사롭지 않다. 그는 고교 졸업 후 대학에 진학하지 않고 복서 생활을 하다가 독학으로 건축을 공부한 인물이다.

“일본은 한국과 마찬가지로 학력 위주 사회이지만, 저는 학벌이 없어도 잘 살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고 싶었습니다. 제 인생은 계속 절망적이었으나, 거기 머물지 않고 희망을 찾아 나가고자 했습니다. 암에 걸려 담낭, 십이지장 등 내부 장기 5개를 떼낸 사람은 별로 없을 것입니다. 저는 그래도 살아야 하겠다는 마음으로 노력합니다. 하루 1만 보를 걷고, 식사를 조절하며 1∼2시간은 반드시 공부를 합니다.”

그가 평생 공부를 게을리하지 않았다는 것은 이번 전시에서 여실히 알 수 있다. 세계 각지를 여행하며 홀로 건축 공부를 한 스케치들과 관련 기록을 볼 수 있기 때문이다.

안도 다다오의 대표적 건축물인 ‘빛의 교회’에 관한 전시물을 관람객들이 살펴보고 있다.

이번 전시는 4부로 나눠 안도의 작품 세계 전반을 조망한다. ‘공간의 원형’ ‘풍경의 창조’ ‘도시에 대한 도전’ ‘역사와의 대화’라는 소주제에 따라 세계 각지에 산재하는 작품을 다뤘다. 버려진 소도(小島)를 세계인들이 찾는 예술의 섬으로 되살린 나오시마 프로젝트, 일본 이바라키시의 교외 주택가에 있는 ‘빛의 교회’, 프랑스 파리의 옛 곡물거래소를 미술관으로 바꾸는 프로젝트 등을 다채롭게 만날 수 있다.

‘한국 코너’에 가면, 그가 설계한 국내 건축물 9개의 모형과 영상, 사진을 볼 수 있다. 제주 유민미술관(2005∼2008), 본태박물관(2009∼2012), JCC아트센터(2010∼2014), LG 아트센터(2022) 등이다.

“한국 대학생들이 만든 모형이 있습니다. 그걸 보며 저도 공부를 합니다.” 어린 학생들에게서도 배운다는 노대가는 이번 전시 주제가 ‘청춘’임을 다시 상기했다. “10대, 20대뿐만 아니라 살아 있는 동안은 청춘이라고 생각합니다.”

한편, 안도는 윤석열 대통령 취임 당시 오브제 작품 ‘푸른 사과’를 선물한 바 있다. 김건희 여사가 지난 2016년 기획한 ‘르 코르뷔지에전’ 때 특별 세션으로 그의 작품을 소개한 인연이 있어서다. 윤 대통령의 일본 방문 때 김 여사를 만나기도 한 그는 “한국과 일본은 아주 가까운 사이”라며 “저는 정치, 경제는 잘 모르지만 양국이 문화적으로 계속 교류를 이어가길 바란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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