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남희의 차이나 트렌드] 1평도 안 되는 카페…자산 1조 만든 매너커피
스타벅스보다 싸게, 더 맛있게
오피스·쇼핑몰 입점, 2030 공략
창업자 부부 자산 1조3000억
3월 30일 오후 중국 베이징 차오양구의 오피스·상업 단지인 왕징소호(望京SOHO) 1층 카페 매너커피(Manner Coffee). 주변 직장인 점심시간이 지났는데도 매장 안이 시끌벅적했다. 중국 모바일 메신저 위챗 안의 매너커피 미니 프로그램을 열어 커피 한 잔을 주문했다. 먼저 주문한 41잔을 제작 중이라 16~20분 후 커피를 받을 수 있다는 안내가 떴다. 기다리는 동안 노란 헬멧을 쓴 메이퇀 배송 기사들이 끊임없이 들락날락했다. 근처 사무실에서 일하는 듯한 사람들은 종이컵이 아닌 각자의 텀블러에 커피를 담아갔다. 바리스타 4명이 음료 수십 잔을 만드느라 쉴 틈 없이 바쁘게 움직였다.
매너는 커피 격전지 중국에서 또 다른 창업 신화를 써가고 있는 커피 전문점이다. 2015년 상하이의 1평(3.3㎡)도 안 되는 2㎡ 크기 가게에서 시작한 지 7년여 만에 중국 주요 대도시에 600개 이상 매장을 연 커피 체인으로 성장했다. 매너는 2021년 6월 중국 영상 플랫폼 틱톡·더우인 운영사인 바이트댄스(字节跳动 쯔제탸오둥)로부터 투자를 유치했을 당시 기업 가치 평가액이 45억 달러(약 5조9000억 원)에 달했다. 매장 수가 지금의 절반이 안 될 때의 얘기다.
현재 중국 커피 시장은 전쟁이라 불릴 정도로 경쟁이 치열하다. 스타벅스를 필두로 팀호튼·피츠·라바짜·코스타·%아라비카 등 웬만한 외국 커피 브랜드가 모두 중국에 진출했다. 여기에 루이싱·매너·싱윈카·눠와·쿠디·M스탠드 등 중국 커피 브랜드, 맥도날드·KFC·버거킹 등 패스트푸드 체인 커피 등이 가세해 시장 점유율 다툼을 벌이고 있다. 특히 중국 신생업체들은 커피값을 우리 돈 1000원 아래로 끌어내리면서까지 가격 전쟁을 벌이고 있다.
매너는 싼 가격으로 매장 수 늘리기에만 골몰하는 저가 커피와는 결이 다르다. ‘미국 스타벅스보다 가격은 저렴하면서 맛은 더 좋은 중국 커피’가 매너가 공략하는 시장이다. 상하이·베이징 등 대도시 오피스·쇼핑몰 안이나 주변에서 주로 매너커피를 볼 수 있다. 커피를 달고 살며 적당한 가격에 품질 좋은 커피를 원하는 젊은 층이 주고객이다.
매너 창업자인 한위룽·루젠샤 부부는 중국 후룬연구원이 3월 23일 발표한 ‘2023 후룬 세계 부호 명단’에서 자산 가치 67억 위안(약 1조2700억 원)으로 공동 2923위에 올랐다. 올해 1월 16일까지 자산 가치 10억 달러(약 1조2990억 원) 이상인 전 세계 기업가 3112명이 이 명단에 이름을 올렸다. 한위룽 부부는 올해 처음으로 이 명단에 진입했다. 두 사람은 지난해 11월 발표된 ‘2022 후룬 40세 이하(U40) 청년 기업가’ 순위에선 36명 중 26위에 올랐다. 이 명단은 자산 50억 위안(약 9400억 원) 이상 40대 이하 자수성가 기업가를 집계해 발표한 것이다. 당시 한위룽은 37세, 루젠샤는 29세였다. 상장이 임박했다는 얘기가 끊이지 않는다.
◇ 1평 안 되는 가게서 창업
한위룽(韓玉龍·38)은 20대 때 커피 사업에 뛰어들었다. 사진과 커피를 좋아해 2012년 고향인 장쑤성 난퉁에서 사진을 주제로 한 카페를 열었다. 장사가 썩 잘되진 않았다. 가게를 접고 커피의 도시 상하이로 갔다. 상하이는 전 세계에서 커피숍이 가장 많은 도시 중 하나다. 한위룽은 커피를 마시는 사람이 없어 경쟁이 없는 곳보다 커피를 마시는 사람이 많고 경쟁도 치열한 곳에서 차별화하겠다는 전략을 택했다.
상하이로 가 1년간 융캉루의 작은 카페에서 일하며 창업을 준비했다. 2015년 10월 아내 루젠샤(陸劍霞·30)와 함께 징안구 좁은 찻길 거리의 낡은 3층짜리 건물 1층에 드디어 카페를 열었다. 2㎡ 공간에 출입문 없이 창문만 겨우 있는 가게였다. 당연히 커피를 앉아서 마실 공간은 없고 가게 밖에서 커피를 받아 가져가는 테이크아웃만 가능했다. 테이블 회전율이 낮은 카페 사업의 특성을 감안한 공간 선택이기도 했다. 가게 이름은 영화 킹스맨(Kingsman)에 나온 대사 ‘Manners Maketh Man(매너가 사람을 만든다는 뜻)’에서 따왔다고 한다.
한위룽의 전략은 커피 한 잔 값으로 부담스럽지 않은 적당한 가격에 맛은 뛰어난 커피를 파는 것이었다. 당시만 해도 중국에서 흔치 않던 이탈리아 라마르조코(La Marzocco)의 반자동 에스프레소 추출기를 들여놨다. 가장 중요한 3요소로 품질, 장비, 인재를 꼽을 정도로, 장비의 중요성을 알고 있었다. 직접 원두를 로스팅하고 커피를 내렸다. 스타벅스보다 싼데 맛은 스타벅스보다도 낫다는 입소문이 나면서 가게 밖에 긴 줄이 생기기 시작했다. 금세 하루 수백 잔씩 커피를 팔았다.
◇ 가격은 적당하게
매너에선 아메리카노, 라떼 같은 기본 커피 가격이 대부분 15위안(약 2800원) 또는 20위안(약 3800원)이다. 매너가 인기가 많은 이유 중 하나는 대체로 컵 크기나 우유 첨가 여부에 관계 없이 가격이 같다는 점이다. 아메리카노는 작은 컵(237㎖), 큰 컵(355㎖) 모두 15위안이다. 서구 커피 체인 중 중국 내 매장 수가 가장 많은 스타벅스(2023년 1월 1일 기준 6090개) 가격과 비교하면, 매너의 커피 가격은 절반 수준이다. 중국 스타벅스의 아메리카노 톨(中杯355㎖) 가격은 27위안(약 5100원)으로, 거의 두 배다. 또 중국 스타벅스는 한국 스타벅스와 마찬가지로 컵 크기가 커지면 가격이 비싸진다.
우유를 넣는 뜨거운 라떼도 작은 컵(237㎖)이 15위안으로, 아메리카노 가격과 같다. 라떼는 아메리카노보다 500원 더 비싸다는 ‘공식’에 익숙한 한국인에겐 낯선 가격 체계다. 에스프레소 샷 추가도 후하다. 라떼에 에스프레소 샷 한 잔 정량을 추가할 땐 5위안을 더 내야하지만, 정량보다 적은 양을 추가할 땐 무료다.
소비자가 개인 텀블러 같은 자기 컵을 갖고 오면 5위안을 할인해 준다. 본인 컵에 커피를 받으면 아메리카노나 라떼를 10위안(약 1900원)이면 마실 수 있는 것이다. 지속 가능성, 친환경 가치를 중시하는 젊은 층의 소비 심리를 반영했다.
◇ 맛은 뛰어나게
매너의 커피 맛은 꽤 좋다. “이 가격에 이 정도면 괜찮네”라기보단 “이 가격에 이런 맛을?”이란 반응이 나오곤 한다. 한위룽은 소비자가 단순히 싸다고 사마시는 커피가 아니라, 맛있어서 사마시는 커피가 되길 원했다.
첫 가게를 내면서부터 이탈리아 라마르조코의 반자동 에스프레소 머신을 들여놨다. 루이싱(瑞幸 Luckin) 등 많은 경쟁사가 전자동 커피 머신을 사용하는 것에 반해, 매너는 반자동 커피 추출기를 쓴다. 매너 매장에서 커피를 만드는 직원은 단순히 기계만 작동하는 인력이 아니라, 교육을 받은 바리스타다. 매너는 국제스페셜티커피협회(SCA)가 인증한 바리스타 훈련 기관 ‘매너 랩’을 만들어 자체적으로 바리스타를 양성하고 있다. 중국에선 흔치 않은 방식이다. 중국 편의점 체인 볜리펑(便利蜂)이 만든 커피 브랜드 부몐하이(不眠海) 등 경쟁사가 매너 바리스타를 앞다퉈 영입해가곤 한다.
매너는 커피콩 산지로 유명한 중국 남서부 윈난 지역 원두를 주로 쓰고, 에티오피아·과테말라·인도네시아산 원두도 쓴다. 한위룽은 첫 몇 년간은 본인이 직접 원두를 골라 로스팅했다. 회사 규모가 커진 후엔 장쑤성 퉁저우완구에 5000㎡ 규모의 공장을 세웠다. 이곳에서 로스팅한 원두를 전국 매장과 이커머스 플랫폼에 공급한다.
◇ 빅테크도 베팅
매너는 매장 수가 아직 10개가 채 안 되던 2018년 10월, 중국 사모펀드 금일자본(캐피털 투데이)으로부터 8000만 위안(약 151억 원)을 투자 받았다. 시리즈 A(창업 시드머니 이후 첫 투자금 유치) 펀딩에서 중국 인터넷업계 영향력이 큰 유력 투자사를 투자자로 끌어들인 것이다. 매너는 2019년 상하이를 벗어나 쑤저우·베이징·청두·선전에 차례로 매장을 열며 본격 확장에 나섰다. 2019년 말 매장 수는 100개를 돌파했다.
매너는 여러모로 중국 최대 커피 체인 루이싱의 덕을 봤다고 할 수 있다. 루이싱은 2018년 1월 1호점을 낸 후 공격적으로 매장을 늘리며 스타벅스를 위협하는 기업으로 성장했다. 루이싱이 중국에서 커피 마시는 인구를 늘려놨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러나 급성장하는 중국 커피 시장으로 돈과 관심이 몰리던 2020년 초, 루이싱은 분식회계가 발각되며 위험 기업으로 낙인 찍혔다.
될성부른 중국 커피 브랜드를 찾던 자본은 그다음 스타벅스 도전자로 매너에 베팅했다. 2020년 12월 중국 사모펀드 H 캐피털과 뉴욕 투자사 코우투(Coatue)가 매너에 1억 달러(약 1300억 원)를 투자한 데 이어, 2021년 2월 싱가포르 국부 펀드 테마섹, 2021년 5월 메이퇀 산하 드래곤볼 캐피털이 매너에 투자했다. 2021년 6월엔 틱톡·더우인 운영사인 바이트댄스도 매너 투자자로 이름을 올렸다. 2021년 말 매너 매장은 300개를 돌파했다. 모두 직영점이다. 매너의 브랜드 파워가 커지면서 상하이 일부 상권에선 스타벅스보다 매너가 먼저 입점하는 경우도 생겼다.
매너는 2022년 대확장기에 돌입했다. 매장 크기와 형태도 다양해졌다. 10㎡ 안팎 초소형 점포부터 20-50㎡ 크기의 주력 점포, 80-100㎡ 크기의 베이커리 매장, 150㎡ 규모의 식사 매장까지 여러 형태로 진화했다. 2023년 2월 말 기준, 매너 매장 수는 600개 이상이다. 아직까진 상당수가 상하이에 몰려 있고, 나머지도 1~2선 대도시 위주로 출점했다.
◇ 브랜드 협업으로 재밌게
소비자는 늘 새로운 것을 원한다. 매너는 다른 브랜드와 컬래버레이션(협업)을 통해 브랜드 가치를 높이는 데 적극적이다. 요즘 Z 세대 소비자의 소셜미디어 인증샷 욕구를 공략하는 것이다. 아무나와 합치진 않는다. 소비자가 갈망하는 브랜드이거나, 놀랄 만한 조합이어야 협업 효과를 볼 수 있다.
매너는 지난해 9월 미국 전기차 회사 테슬라와 협업해 가을 한정 장미 라떼를 출시했다. 전기차 충전에 커피 한 잔 마시는 시간이면 충분하다는 메시지를 담았다. 카페인도 충전하고 전기차도 충전하란 얘기다. 커피를 구매하고 소셜미디어에 인증샷을 올리면 추첨을 통해 테슬라 굿즈(브랜드 관련 물품)를 선물로 줬다. 테슬라 차주는 매너 매장에서 차량 충전 표시를 보여주면 무료 커피를 받았다. 매너는 테슬라 마케팅을 통해 기존 고객과 잠재 소비자 모두 매너 매장으로 오고 싶게 만들었다. ‘테슬라 커피’는 소셜미디어에 올리고 싶을 만큼 색다르기 때문이다.
매너는 고급스러운 이미지의 패션·뷰티·아트 브랜드가 팝업 이벤트를 할 때 선호하는 커피 브랜드다. 프랑스 럭셔리 패션 브랜드 루이비통은 커피 마케팅 파트너로 매너를 선호한다. 루이비통은 2021년 7월 베이징 싼리툰 훙관(The Red) 전체를 팝업 스토어로 꾸미면서 빨간 커피 차를 갖다 놨는데, 매너가 커피 판매를 맡았다. 루이비통은 2022년 9월엔 허베이성 친황다오 아나야(Aranya)황금해안에서 2023 봄여름 남성복 쇼를 열며 매너커피 컵을 특별 디자인했다.
프랑스 로레알 산하 럭셔리 스킨케어 브랜드 헬레나 루빈스타인도 2022년 6~7월 ‘젊음으로 회귀하다’ 콘셉트로 매너와 협업을 했다. 헬레나 루빈스타인의 초록색 병 세럼과 맞춰 매너가 초록빛 말차 아이스크림 라떼 음료를 출시했다. 헬레나 루빈스타인의 세럼 가격은 20만 원대로, 이 브랜드를 잘 모르는 소비자에겐 진입 장벽이 높은 편이다. 헬레나 루빈스타인 입장에선 타깃 연령층을 Z 세대 소비자로 낮춰 브랜드 인지도를 높이는 게 매너와의 컬래버레이션의 목표였다고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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