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종해 시인 “팔순 지나니 풀이, 바람이 보이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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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종해(82) 시인의 신작시 '서울 입성'의 일부다.
1941년 부산 초장동 산동네에서 태어나 20대초 혈혈단신 상경한 김 시인은 1963년 3월 문예지 <자유문학> 에 시 '저녁'이 당선되어 문단에 발을 들였다. 자유문학>
1965년 <경향신문> 을 통해 또 등단('내란')하길 곧 출산할 아들 이름(시인 김요일)이었으니 시인 김종해의 60돌은 아직 오지 않은 셈이고, 들러야 할 역들도 여전히 많을 수밖에 없겠다. 경향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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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월 대보름날 사흘 지난 1962년 2월18일께, 나는 고향 부산을 떠났다. 고향 바다와 초장동과 어머니와 사랑하는 여자를 부산 본역에 남겨두고 슬프고 긴 기적 소리와 함께 서울행 밤기차가 움직이자 기차 맨 끝 꼬리칸에서 난간을 붙잡고 나는 통곡하였다. 수중에는 1,450원뿐, 이 가운데 서울행 기차삯이 790원-이제 나는 다시 고향 부산 땅으로 돌아가지 못하리라. (후략)”
김종해(82) 시인의 신작시 ‘서울 입성’의 일부다. “못하리라”는 조건문의 ‘않으리라’로 읽어야 타당할 것이다. 그는 <한겨레>에 “서울이란 데서 아차 하면 벼랑 끝으로 떨어지는 것 아닌가. 그때만 생각하면 지금도 눈물이 난다”고 말한다. 800원짜리 경부선 비둘기호를 3시간 내 주파하는 고속열차가 대신한 지도 오래.
올해로 등단 60주년을 맞아 시인이 내놓은 시집 <서로 사랑하기에는 시간이 너무 짧다>는 실상 고향으로 되돌아가는 차편인데, 60년 시력(詩·歷-力)은 육중한 열차의 속도를 과연 완행시킨다. 숱한 기억과 시선의 간이역을 거치며 시집은 천천히 죽음의 서정도 싣는다.
“아버지와 어머니/ 형과 아우마저도 사라”져 “가로등 불빛은 저 혼자서 화안하다”가도(‘못 찾겠다, 꾀꼬리’), “스스로의 의지대로/…/ 천천히 천천히 노를 저어가는/ 나의 항해법을 나는 믿기로 한다”(‘지하철을 타고 가며’). “오라고 오라고 손짓하는 봄날의 벚꽃 세상” 떨어지는 꽃잎은 눈발이 되고 눈물마저 되어(‘벚꽃세상’) 애달픈 시간과 “오늘 내가 살고 있는 무인도에는 눈이 펑펑 내린다”(‘무인도에 내리는 눈’)는 평화의 시간은 실상 계절 밖이다.
1941년 부산 초장동 산동네에서 태어나 20대초 혈혈단신 상경한 김 시인은 1963년 3월 문예지 <자유문학>에 시 ‘저녁’이 당선되어 문단에 발을 들였다. 부두 노역하던 아버지를 파상풍으로 여의고, 가족을 건사하는 어머니를 도와 일찌감치 소년선원 생활도 했다. 1974년 자유실천문인협의회 창립 발기위원으로 참여했다 중앙정보부에 끌려가 고초를 겪었다. 그때 “집으로 들이닥친 경찰들에게 차린 밥을 같이 먹였”던 이가 어머니라고 시인은 <한겨레>에 회상한다. 한국시인협회 회장(2004~06년)을 맡으며 일본의 독도소유권 주장에 항의하는 ‘독도 시낭송 예술제’를 열기도 했다. 1979년 서울 종로3가에 차린 문학세계사는 오랫동안 문인들의 사랑방이었다고 한다.
시뿐만 아니라 출판 기획, 문단 행정, 사회참여에 이처럼 두루 행적을 보이는 국내 시인은 드물 법하다. 그가 등단 60주년을 기해 생애 처음 펴낸 산문집(<시가 있으므로 세상은 따스하다>)가 시 너머의 이야기로도 넉넉한 까닭이겠다. 6살 아래 터울의 동생 고 김종철 시인이 형과 비슷한 궤적 끝에 차린 출판사가 ‘해리포터 시리즈’를 펴낸 문학수첩이란 얘기도.
1963년 첫 등단시를 쓴 자는 ‘남궁해’(필명)인 데다 <자유문학>은 그해 말 폐간됐다. 1965년 <경향신문>을 통해 또 등단(‘내란’)하길 곧 출산할 아들 이름(시인 김요일)이었으니 시인 김종해의 60돌은 아직 오지 않은 셈이고, 들러야 할 역들도 여전히 많을 수밖에 없겠다.
“나이 팔순을 지나가니까/ 풀이 문득 보인다/ 풀이 보이니까 바람마저 보인다/ 풀 앞에 서면 나도 말을 버린다/…/ 풀의 말을 해석하지 못하므로/ 나는 외롭다/ 말을 버린 풀처럼/ 바람이 불어오는 쪽을 향해/ 나는 필생으로 온몸을 편다/ 풀이 흔들린다”(‘풀 앞에 서서’ 부분)
임인택 기자 imit@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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