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큰증권 선점하라'…윤곽 그려진 증권사 전략

김기훈 2023. 4. 3. 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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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르면 연내 매매 개시…증권사에 새먹거리
증권가, 분야 막론하고 '합종연횡'에 집중
전 세계 토큰증권 시장, 2030년 16조달러

금융당국이 토큰증권 시장 조성에 속도를 내면서 발행·유통 과정에서 핵심 역할을 담당할 증권사들의 움직임도 덩달아 빨라지고 있다. 새로운 먹거리에 목마른 증권사 입장에서 토큰증권은 놓쳐선 안될 '미래의 황금알'이다.

아직 당국이 시장과 업계의 의견을 수렴해 제도적인 틀을 잡는 단계인 만큼 증권사들은 우선 관련 사업자들과 '동맹(얼라이언스)' 맺기에 집중하고 있다. 각 사별 전략이 뚜렷하게 드러나지는 않았지만 시장 선점을 위한 증권사의 행보가 본격화하면서 시간이 갈수록 윤곽이 그려지는 모습이다.

/그래픽=비즈워치

토큰증권 매매 가시화…증권사에 큰 기회

3일 금융투자업계에 따르면 금융위원회는 연초 토큰증권 발행(STO)을 정식 허용하기로 한 데 이어 지난 2월에는 부동산, 미술품, 음악 저작권 등 다양한 자산을 토큰화할 수 있는 '토큰증권 발행·유통 활성화 가이드라인'을 공개했다.

금융위는 현재 토큰증권의 발행·유통체계를 제도화하기 위한 법령 개정 작업에 착수한 상태로, 상반기 중 국회에 전자증권법과 자본시장법 개정안을 제출할 예정이다. 개정안이 국회를 통과하면 이르면 하반기, 적어도 내년부터 토큰증권 시대가 본격 개막한다.

토큰증권(Security Token)이란 블록체인 기술을 활용해 토큰 형태로 발행한 증권이다. 주식과 채권은 물론 부동산과 비상장주식, 금·은, 미술품·수집품, 와인·와이너리, 각종 지적재산권, 크라우드펀딩, 선박·항공금융 등 투자 대상은 실물과 무형을 가리지 않고 다양하다. 평소 일반투자자들의 개별 접근이 어려웠던 자산들이 주요 대상이다.

토큰증권은 투자 대상이 다채로울 뿐만 아니라 거래 편의성과 투명성이 뛰어나고 거래비용도 적은 편이다. 아울러 쪼개기 투자(조각투자)가 가능해 유동성이 양호하다는 장점도 있다.

토큰증권 시대 개막은 증권사들에도 큰 기회다. 해외 사례나 당국의 가이드라인을 감안하면 증권사들은 토큰증권 시장 내 토큰의 유통과 계좌관리를 담당할 것으로 보인다.

시장 개설 초기에는 매매수수료 수익 외에 별다른 수익원이 없는 게 사실이나 자사 모바일트레이딩시스템(MTS) 내 매매시스템 구축 등을 통한 플랫폼 강화와 이를 활용한 고객 확보는 중장기적으로 주식 매매와 금융상품 판매 증가 등으로 연결될 수 있다.

윤유동·홍성욱 NH투자증권 연구원은 "장기적으로 증권사의 자유로운 토큰 증권 발행이 허용되면 회사 역량에 따른 고객 확보 차별화가 본격화할 수 있다"며 "회사별 기초자산 조달 능력에 따라 더 좋은 상품을 만들 수 있게 되고 이는 고객을 유인하는 요소로 작용할 수 있다"고 분석했다.선점 노리는 증권가, '합종연횡' 본격화

이런 기대 효과를 일찌감치 인지한 증권사들은 약 2년 전부터 관련 부서나 태스크포스(TF)를 구성하고 협업 기업을 물색하는 등 사업 준비에 들어갔다. 최근 토큰증권의 제도권 편입이 가시화하면서부터는 준비에 더 박차를 가하고 있다.   

대세는 일단 토큰증권 생태계 조성을 위한 '합종연횡'이다. 블록체인 기술기업과 조각투자 사업자는 물론 인터넷은행과 통신사 등 토큰증권 사업과 연계할 수 있는 파트너라면 분야를 가리지 않고 손 잡고 있다.

자기자본 기준 국내 최대 증권사인 미래에셋증권은 증권사 중 가장 먼저 디지털자산 비즈니스 전담 조직을 꾸린 데 이어 HJ중공업, 한국토지신탁과 STO 사업 활성화를 위한 업무협약(MOU)을 맺었다. 또 음원 수익 공유 플랫폼 '핀고'를 운영하는 핀고컴퍼니와도 협력하기로 했다. 

지난달 30일에는 통신업계 1위 SK텔레콤과 '넥스트파이낸스 이니셔티브'란 이름의 협의체를 만들었다. 양사는 토큰증권 인프라 구축과 토큰증권 대상인 기초자산 발굴, 연계 서비스 시너지 창출 등에 힘을 합치기로 했다. 미래에셋증권은 기존 증권과 토큰증권 시장을 통틀어 통합 1위가 되겠다는 각오다.
 
미래에셋증권의 강력한 라이벌인 한국투자증권은 국내 대표 인터넷은행인 카카오뱅크, 토스뱅크와 동시에 손을 잡았다. 대형 금융회사를 중심으로 플랫폼을 구축한 것은 한투증권이 처음이다. 여기에 카카오엔터프라이즈까지 함께 해 '한국투자ST프렌즈'가 결성됐다.

한투증권 관계자는 "우수한 플랫폼이 갖춰지면 그 안에서 유통될 상품들은 자연스럽게 모일 것"이라며 "당장은 발행 플랫폼 인프라 구축을 가장 중요한 과제로 보고 있다"고 전했다. 그러면서 "카카오뱅크, 토스뱅크 등 금융기관과 우선적으로 연대한 것 역시 플랫폼 역량 강화와 인프라 구축을 위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래픽=비즈워치

NH투자증권과 KB증권, 신한투자증권, 하나증권 등 금융지주 계열 증권사들도 그룹의 지원 아래 토큰증권 사업 준비에 앞다퉈 나섰다. 이들 증권사는 부동산부터 미술품·명품, 공연·전시, ESG탄소배출권, 금·은 현물 조각투자 기업을 비롯해 블록체인 기술기업 등과도 잇달아 제휴를 맺고 있다. 

가장 먼저 칼을 빼든 곳은 신한투자증권이다. 지난해 블록체인 전담부서를 만든 뒤 핀테크 기업 에이판다파트너스, 피어테크, 델리오, 슈퍼블록 등 블록체인 기술기업들과 MOU를 체결했다. 특히 에이판다와 조인트 벤처를 만들어 개발 중인 플랫폼 서비스는 혁신금융서비스로 지정돼 올 하반기 출시 예정이다. 지난 2월에는 증권사 가운데 처음으로 50개 내외의 기업이 참여하는 'STO 얼라이언스'를 출범시켰다.

KB증권 역시 작년에 STO 서비스 전담 조직을 만들고 토큰증권 발행·유통 시스템을 내부에 구축해 테스트를 진행 중이다. 지난달 8일에는 SK C&C와 블록체인 기술기업 EQBR을 포함해 스탁키퍼(한우), 서울옥션블루(미술품), 펀더풀(공연·전시), 하이카이브(실물자산 기반 STO 발행유통 플랫폼), 웹툰올(웹툰), 알엔알(영화 콘텐츠 배급) 등의 기업과 'ST 오너스'라는 이름의 협의체를 구성했다. 

NH투자증권은 분산원장 기반 토큰증권 발행 인프라 구축을 당면 과제로 삼아 'STO 비전그룹'을 만들었다. 조각투자사업자와 비상장주식 중개업자, 블록체인 기술기업, 기초자산 실물평가사 등 토큰증권 제도 정비에 따라 사업모델 변화가 필요하거나 미래 사업기회가 존재하는 기업 간의 실무 논의를 위해서다.

하나증권은 부동산 수익증권거래소 '소유'를 운영하는 루센트블록의 계좌관리기관으로 참여하면서 최근에는 한국 금거래소 최대주주인 코스닥 상장사와 STO 협의체 구성을 추진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한국 금거래소를 통해 거래되는 금·은 현물을 쪼개서 거래할 수 있게 하려는 의도로 읽힌다.

'리테일 최강자' 키움증권은 뮤직카우, 세종텔레콤, 펀블, 테사, 페어스퀘어랩, 열매컴퍼니, 블록체인글로벌 등 11개 기업과 협업 관계를 맺고 STO 인프라 구축에 투자하고 있다. 키움증권은 토큰증권은 유통은 물론 발행 분양에 있어서도 영향력 확대를 꾀한다는 방침이다.

대신증권은 협력 방식이 아닌 아예 인수를 택했다. 지난달 중순 국내 최초 부동산 조각투자 플랫폼 기업인 카사코리아를 인수해 본격적인 사업 준비에 들어갔다. 보수적인 경영방침을 고수해온 대신증권이기에 이번 결정은 파격적으로 여겨진다. 대신증권은 카사코리아를 바탕으로 한 부동산 조각투자 분야를 선제적으로 공략하는 한편 더 다양한 자산을 취급하는 '허브(hub·중심)'를 목표로 하고 있다. 

토큰증권 시장 얼마나 커질까

자본시장에선 토큰시장의 중장기적인 성장성에 기대를 걸고 있다.

글로벌 컨설팅기업 보스턴컨설팅그룹(BCG)는 오는 2030년까지 토큰화된 전 세계 자산시장 규모가 16조달러로 확대될 것으로 예상했다. 한화로 무려 2경700조원을 웃도는 것으로, 세계 국내총생산(GDP)의 10% 수준이다. 하나금융연구소는 BCG 자료를 기반으로 국내 토큰증권 시장 시가총액이 2024년 34조원에서 2030년에는 367조원을 넘어설 것으로 전망했다.

초기 국내 토큰증권 시장은 증권사가 주도할 것이라는 게 대다수 전문가들의 견해다.

윤유동·홍성욱 연구원은 "발행을 주로 담당하는 스타트업보단 유통을 담당하는 전통 금융사의 역할이 주목받을 것"이라며 "결론적으로 증권사 수혜가 가장 두드러질 것"이라고 내다봤다. 디지털 자산업체와 대비해 접근성과 편리성, 신뢰성 측면에서 모두 뛰어나다는 설명이다.

수혜 증권사에 대해선 의견이 분분하지만 풍부한 자본력과 관계사들의 지원사격이 가능한 금융지주 계열 증권사와 리테일에 강점이 있는 증권사가 일단 유리할 것으로 보인다.

임민호 신영증권 연구원은 "초기 토큰증권 시장은 금융권, 특히 금융지주 계열 증권사가 주도할 것"이라며 "특히 KB증권과 신한투자증권 등 은행 계열 증권사들은 조직 내 TF를 신설하고 조각투자 플랫폼 기업과 제휴, STO 플랫폼 개발 등을 통해 시장 선점을 위한 준비가 잘 돼 있다"고 평가했다. 

임 연구원은 이어 "키움증권이나 SK증권 등도 조각투자 플랫폼 기업 등과의 제휴를 통해 STO 사업에 나설 준비를 하고 있다"며 "리테일 고객풀을 활용해 유통시장 선점에 나설 가능성이 크다"고 말했다.

김기훈 (core81@bizwatch.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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