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유식의 온차이나] 허망한 중·러 밀착...회담 끝나자 각자도생
중국도 무기 지원 약속 안하고 가스관 추가 건설 합의도 거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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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이 3월20일부터 22일까지 2박3일간 러시아를 국빈 방문했죠. 세 번째 주석 임기를 시작하자마자 가장 먼저 러시아로 달려간 건 중·러 관계가 시진핑 집권 3기 중국 외교정책의 중요한 축이라는 걸 의미합니다.
국제형사재판소(ICC)가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에 체포령을 내릴 정도로 고립된 러시아로서는 시 주석의 방러가 ‘가뭄 속 단비’ 역할을 했죠. 크렘린궁에서 성대한 대접을 했다고 합니다. 양국은 정상회담 후 발표한 공동성명에서 “어떤 형태의 패권주의, 일방주의, 강권정치에도 반대한다”고 목소리를 높였어요. 공동의 적인 미국을 상대로 함께 대항하겠다는 의지를 표명한 겁니다.
하지만 시 주석 방러 이후 상황을 보면 양국 정상회담이 겉으로 보는 것처럼 순탄했던 것 같지는 않습니다. 양국은 공동성명에서 “어떤 핵무기도 국외에 배치해서는 안 된다”고 했는데, 푸틴 대통령은 시 주석 귀국 사흘 뒤인 3월25일 벨라루스에 전술핵을 배치하겠다고 전격 선언했죠. 시 주석 역시 러시아가 고대했던 ‘시베리아의 힘 2′ 가스관 건설 프로젝트에 합의를 해주지 않았습니다. 겉으론 의기투합했지만 각자 제 갈 길 가는 모습이에요.
◇부글부글 중국 “시 주석 체면 먹칠”
중국은 벨라루스 전술핵 배치에 대해 부글부글 끓는 분위기입니다. 시 주석의 체면에 먹칠을 했다는 거죠. 시 주석의 이번 방러 명분 중 하나는 우크라이나 전쟁 중재였습니다. 중국 외교부는 지난 2월 하순 독자적인 중재안을 내놓기도 했죠.
중러 공동성명도 이 중재안을 언급하면서 “위기가 더 악화해 통제 불능 상태가 되는 걸 막아야 한다”고 했습니다. 또 작년 1월에 나온 핵보유 5개국 정상의 핵전쟁 방지 공동성명을 거론하면서 “모든 핵보유국은 국외에 핵을 배치해서는 안 되며 배치된 핵무기도 철수해야 한다”는 내용이 들어갔어요. 우크라이나 전선에서 궁지에 몰린 푸틴 대통령이 공공연히 핵위협을 하는 상황에서 중국이 긴장 완화에 기여했다는 평가를 받을 수 있는 대목이었습니다.
그런데, 이 공동성명에 서명한 지 불과 나흘 만에 푸틴 대통령이 여기에 정면으로 어긋나는 조치를 내놓은 거죠. 3월21일 시 주석과 함께 서명한 중러 공동성명을 완전히 무시해 버린 겁니다.
마오닝 중국 외교부 대변인은 3월27일 브리핑에서 “작년 1월 핵보유 5개국 정상은 공동성명에서 ‘핵전쟁은 누구도 이길 수 없고 일어나서도 안 된다’는 점을 지적하면서 핵보유국 간 전쟁을 피해야 한다고 강조한 바 있다”면서 “각국은 우크라이나 위기를 평화적으로 해결하기 위한 외교적 노력에 집중해야 하며 함께 긴장 완화를 위해 노력해야 한다”고 했습니다. 완곡하게 반대의 뜻을 밝힌 거죠. 중국 소셜미디어 위챗의 한 공중계정 운영자는 “자기가 한 말조차 이렇게 대수롭지 않게 여기는 나라(러시아) 자신은 난처하지 않겠지만, 중국은 난감한 입장”이라고 했습니다.
◇가스관 추가 건설 합의도 무산
사실 시진핑 주석도 이번 방러 기간에 어려운 처지인 러시아의 등을 두드려줬지만, 실질적 지원을 해준 건 거의 없었습니다. 이번 방러를 앞두고 미국은 중국이 러시아에 살상용 무기를 지원할 가능성에 대비해 강력하게 경고를 했죠. 시 주석은 결국 무기 지원을 약속하지 않은 것으로 보입니다.
러시아에 대한 무기 지원은 미국이 그은 ‘레드라인’을 넘는 것으로 중국은 러시아와 비슷한 수준의 경제 제재에 직면하게 될 겁니다. 중국 수출의 36%가량을 차지하는 미국·유럽연합·일본시장을 잃는다면 경제적 타격이 크겠죠.
러시아가 내심 큰 기대를 걸었던 건 ‘시베리아의 힘 2′ 가스관 건설 사업이었습니다. 러시아와 몽골, 중국을 잇는 2600㎞의 가스관을 건설해 중국에 매년 500억 세제곱미터(㎥)의 천연가스를 수출한다는 계획이죠.
서방 제재로 전체 천연가스 수출량의 80%를 차지하는 유럽 판로가 막힌 러시아로서는 중국을 그 대안으로 생각했습니다.
◇갑을 바뀐 중·러 관계
푸틴 대통령도 기대를 숨기지 않았어요. 3월21일 정상회담 직후 기자회견에서 “시베리아파워-2 천연가스 파이프라인 건설에 합의했으며 프로젝트와 관련된 여러 변수에 대한 상의가 끝났다”고 자신 있게 말했습니다.
하지만 곧이어 나온 공동성명에는 “계속 연구하고 협의한다”고만 돼 있어요. 가스관 건설 비용은 어떻게 분담할 것인지, 공급가격은 얼마로 할 것인지 등에 대한 최종 합의가 불발된 겁니다. 답답한 처지인 러시아에 가격을 더 내려 달라고 요구하는 중국 특유의 상술을 발휘한 거죠.
이번 정상회담은 표면적으로 중러 밀착을 더 강화한 것으로 보이지만, 실제로는 중국에 대해 이미 ‘을’의 입장이 된 러시아의 처지를 확인한 자리였다는 평가가 나옵니다. 토니 블링컨 미 국무장관도 3월22일 미 상원 외교위원회에서 중러 관계를 ‘정략결혼’으로 평가하면서 러시아가 ‘아랫사람(junior partner)’이 됐다고 했죠.
푸틴 대통령이 양국 공동성명을 무시하고 벨라루스 전술핵 배치 카드를 꺼내 든 데는 이런 러시아의 처지에 대한 분노와 자괴감이 작용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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