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왕설래] 대통령 임명장 쓰는 필경사

박창억 2023. 4. 2. 23: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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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경사는 손글씨로 문서 작성하는 일을 업으로 삼는 이다.

조선 시대에는 필경사에 해당하는 사자관(寫字官)이 공문서를 작성했다.

지금은 문서 작성이 컴퓨터로 대체되면서 관공서의 필경 직무가 거의 사라졌는데, 인사혁신처에는 필경사라는 직책이 남아 있다.

필경사는 대통령 명의의 임명장을 붓으로 작성하는 일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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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경사는 손글씨로 문서 작성하는 일을 업으로 삼는 이다. 요하네스 구텐베르크가 서양 최초로 금속 활판 인쇄술을 발견하기 전인 15세기 중엽 이전은 필경사의 전성시대였다. 그들은 성경뿐 아니라 각 관청의 문서를 비롯하여 문학 서적에 이르기까지 모두 손으로 베껴 일부는 상업적으로 판매하기도 하였다. 필경사의 필사본을 통해 인류가 축적한 지식은 후세에 전해질 수 있었다. 포조 브라촐리니 같은 15세기 이탈리아 피렌체의 필경사들은 르네상스에도 기여했다.

조선 시대에는 필경사에 해당하는 사자관(寫字官)이 공문서를 작성했다. 명필 한석봉이 오랫동안 맡았던 관직이다. 사자관은 승문원의 사자관청에 소속돼 외교 문서와 왕실 기록물 작성을 담당했다. 조선 초에는 공문서 작성 직책이 없었고 문신 중에서 글씨를 잘 쓰는 자가 맡았으나 선조 때부터 사대부와 서인을 막론하고 사자관으로 삼았다고 이긍익의 ‘연려실기술’은 전한다.

지금은 문서 작성이 컴퓨터로 대체되면서 관공서의 필경 직무가 거의 사라졌는데, 인사혁신처에는 필경사라는 직책이 남아 있다. 필경사는 대통령 명의의 임명장을 붓으로 작성하는 일을 한다. 정부의 필경사는 1962년 처음 생겼고 지금까지 모두 4명이 임명됐다. 필경사는 해마다 4000여장의 임명장을 작성해야 한다. 그런데 2009년부터 대통령 명의 임명장이 5급 이상 국가직 공무원으로 확대되면서 일이 두 배로 늘어났다. 따라서 1명을 추가 채용해 현재 필경사는 2명으로 운영된다. 2000년대 중반 임명장을 인쇄하자는 의견도 나왔지만, 공직자들이 손글씨 임명장을 압도적으로 선호해 인쇄 임명장 검토는 없던 일이 됐다고 한다.

기존 필경사 1명이 퇴직하는 바람에 인사혁신처가 최근 새 필경사 채용시험 공고를 내서 총 21명이 지원했으나 최종 합격자가 나오지 않았다고 한다. 광범위한 디지털화로 손글씨를 쓸 일이 예전보다 줄어들었고, 그만큼 명필을 찾는 일도 어려워졌기 때문이라는 해석이 나온다. 경조사 봉투에 이름 쓰는 것을 제외하면 손글씨를 써 본 게 언제인지 가물가물한 디지털 만능의 시대에 필경사라는 직업은 오히려 더 귀하게 여겨진다. 그 명맥이 끊겨서는 안 되겠다.

박창억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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