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파원리포트] 서울의 날씨는 어떤가

이귀전 2023. 4. 2. 23: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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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경(베이징) 날씨가 너무 좋지요?”

중국 베이징에서 지난달 열린 중국발전고위급포럼에 참석한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이 대외적으로 남긴 유일한 발언이다.

3년 만에 중국을 찾은 이 회장은 포럼이 열린 댜오위타이(釣魚臺) 국빈관에 도착해 소감을 묻는 특파원들의 질문에 이 말 한마디만 남겼다.
이귀전 베이징 특파원
이 포럼은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 사태 등으로 국경을 닫았던 중국이 지난해 말 위드코로나로 전환한 뒤 개최한 첫 대규모 국제행사다. 국제사회에 보란 듯 이 회장을 비롯해 팀 쿡 애플 최고경영자(CEO), 앨버트 불라 화이자 CEO 등 세계 굴지의 기업 대표 약 100명을 베이징으로 불러 모았다.

미국과 기술패권 경쟁이 심화하면서 중국에 대한 ‘불확실성’이 커지자 거물 기업인들을 불러 모아 대외 개방 의지를 피력하고 투자 유치 종용에 나선 것이다.

시진핑(習近平) 국가주석은 축전을 통해 “상호이익과 공동번영의 개방 전략을 확고히 실행하겠다”고, 리창(李强) 국무원 총리는 “각국 기업이 중국에서 발전하는 데 광활한 공간을 제공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기업가들도 화답했다. 쿡 CEO는 포럼에서 “중국에서는 혁신이 빠르게 이루어져 왔고 향후 더 빨라질 것으로 믿는다”며 중국 농촌 교육프로그램 지출을 1억위안(약 189억원)으로 늘리는 투자 계획을 밝혔다. 베이징에 있는 애플 스토어를 방문해 현지인들과 함께 ‘셀카’를 찍는 등 중국 소비자를 의식한 행보도 보였다.

독일 금융그룹 알리안츠SE의 올리버 베테 CEO도 “중국의 현대화가 자랑스럽다”고 칭송하며 중국 자산운용시장 진출 신청서를 지난 24일 제출했다. 사우디아라비아 국영 석유기업 아람코도 중국 ‘롱쉥 석유화학’ 지분 10%를 36억달러(약 4조6800억원)에 인수하는 대규모 투자 계획을 발표했다.

반면 이 회장은 대외노출을 최소화했다. 그가 중국에서 공식적으로 방문한 곳은 톈진의 삼성전기 공장뿐이었다. 미·중 간 첨예하게 대립하고 있는 반도체 공장은 빠졌다.

중국이 이 회장을 대하는 태도도 석연찮았다. 리 총리와 기업가들의 회동 시 자리 배치에서 참석자들을 대표해 쿡 CEO 등이 리 총리와 함께 원형으로 배치된 소파형 의자에 앉았다. 이 회장 등 다른 참석자들은 그 뒷줄 나무 의자에 앉았다. 단체 사진 촬영에서도 이 회장은 셋째 줄로 맨 앞줄 리 총리와 멀찌감치 떨어져 있었다.

신화통신 등은 회동 주요 참석자로 베테 CEO, 쿡 CEO, 야콥 스타우스홀름 리오 틴토 CEO, 히가시하라 도시아키 히타치 회장, 한스 파울 뷔르크너 보스턴컨설팅그룹 회장 등의 이름만 거론했다. 삼성전자보다 규모가 작은 회사들이 상당수다.

더구나 반도체 규제를 받는 중국이 가장 필요로 하는 기업 중 한 곳이 삼성전자다.

중국이 이 회장을 대하는 모습에서 미국에 투자를 늘린 삼성전자 길들이기에 나선 것이란 얘기가 나왔다. 반면, 미국과 중국 사이에서 낀 삼성전자 입장에선 중국 내 활동이 드러나지 않는 것이 더 나을 것이란 판단도 있었다. 이 회장 역시 이를 의식해 중국에서 소극적인 행보를 보였다는 것이다.

이런 상황이다 보니 이 회장이 언급한 베이징 날씨에 대해서도 다양한 의미가 부여됐다.

이유야 뭐든 중국에서 이 같은 행보를 취할 수밖에 없는 삼성전자 수장의 모습은 한국이 처한 상황을 고스란히 대변한다. 윤석열정부는 동맹인 미국과 최대 교역국인 중국 사이에서 국익 극대화를 강조했다. 일본과 굴욕외교라는 말을 들을 정도의 회담을 하면서까지 미국과 관계 증진에 나서고 있다. 하지만 인플레이션감축법(IRA) 등을 비롯해 중국을 견제하기 위한 미국의 보호주의에 한국 기업의 피해가 우려된다. 이를 만회할 중국과는 오히려 무역적자가 커지고 있지만 뾰족한 수는 보이지 않는다. 그저 무역 비중을 줄이는 데만 연연하는 모습이다. 자칫 그동안 미·중 간 쌓아왔던 유·무형의 국익마저도 지키지 못할 듯싶다. 과연 서울의 날씨는 어떤가.

이귀전 베이징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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