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리지널의 ‘경이’ 그대로… 조승우의 ‘유령’이 왔다

이태훈 기자 2023. 4. 2. 23: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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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에서 먼저 본 뮤지컬 ‘오페라의 유령’

귀에 익숙한 ‘오페라의 유령’ 메인 테마의 드럼 비트와 신시사이저 음악이 온몸을 울렸다. 조명이 번쩍이자, 무대 위 거대한 샹들리에가 마치 무덤에서 깨어나는 괴물처럼 꿈틀대며 조금씩 몸을 일으켰다. 이내 공중으로 떠올라 돌진하듯 전면으로 날아올 때 관객들이 움찔한 것도 잠시, 샹들리에는 우아한 곡선을 그리며 1층 객석 위 극장 천장 꼭대기로 올라가 자리 잡았다. 30여 년 전 오리지널 디자인 그대로 제작된 1톤 무게의 이 샹들리에는 뮤지컬의 가장 극적인 순간에 다시 한 번 관객들의 머리 위를 스쳐 무대로 곤두박질칠 것이다.

조승우는 2001년 ‘오페라의 유령’ 한국어 초연 때 ‘라울’ 역 오디션을 봤지만 우여곡절 끝에 출연하지 못했다. 그는 “배우와 작품의 연이라는 것은 참 모르겠구나 싶다. 배우로서 2막을 향해 도약해야 할 때 선물처럼 다가온 작품”이라고 했다. /에스앤코

1일 부산 문현동의 1727석 규모 국내 최대 뮤지컬 전용 극장 드림씨어터. 개관 4주년을 맞은 이 극장에선 프리뷰를 거쳐 지난 30일부터 뮤지컬 ‘오페라의 유령’이 공연 중이다. ‘캣츠’ ‘지저스 크라이스트 슈퍼스타’ 등을 만든 거장 앤드루 로이드 웨버의 걸작 뮤지컬. 파리 오페라 극장에 은신한 광기의 천재 음악가 ‘유령’과 그가 노래를 가르친 신인 여배우 ‘크리스틴’, 그녀의 연인 ‘라울’이 엇갈리는 비극적 사랑 이야기다.

이 작품의 샹들리에는 블록버스터 뮤지컬에 최적화된 극장을 만나 마침내 이전 서울의 대형 공연장에서도 쉽지 않았던 오리지널 공연 그대로의 스펙터클을 선보이고 있다. 그동안 내한 공연은 몇 차례 있었지만, 한국어 공연은 13년 만. ‘오페라의 유령’ 공연은 6월 18일까지 드림씨어터에서 공연한 뒤 서울로 이어지고, 이후 ‘레미제라블’ 등 대형 뮤지컬들이 부산을 거쳐 상경한다.

샹들리에뿐이 아니다. 이번 ‘오페라의 유령’은 배우 41명이 입는 220벌의 의상, 판타지처럼 일렁이는 조명과 소품 등 1986년 런던 초연 무대의 경이로움을 그대로 옮겨 왔다. 거기에 우리 뮤지컬 최고 배우로 첫손에 꼽히는 조승우(43)가 처음 주인공 ‘유령’으로 무대 위에 서게 된 것만으로 뮤지컬 팬들의 가슴은 뛰었다.

영국 초연 오리지널 디자인 그대로 제작된 1톤짜리 샹들리에가 관객들 머리 위로 나는 모습은 이 뮤지컬의 또 다른 볼거리다.

만약 무대 위의 뮤지컬 배우에게 노래가 가진 한계를 뛰어넘는 어떤 경지 같은 것이 있다면, 지금 조승우는 그런 경지에 가장 가까운 배우일지도 모른다. 1일 공연 무대 위의 조승우는 그저 조승우인 것만으로 충분했다. 그에겐 잘 훈련된 성악적 기본기나 천장을 뚫을 듯한 고음 대신, 그 모든 것을 넘어서는 자신만의 분위기와 세밀한 연기가 있다.

그의 목소리로 익숙한 명곡들이 객석을 파고 들었다. ‘그 밤의 노래(Music of the Night)’를 속삭일 때의 유혹은 달콤하고, 일렁이는 촛불로 가득한 무대 위로 작은 배를 노 저어 극장 지하의 은신처로 향할 때 부르는 ‘돌아갈 수 없는 길(The Point of No Return)’에선 깊은 회한이 배어 나온다. 마지막 극중 극에서 ‘사랑한다 내게 말해줘요, 나를 홀로 두지 말아요’라고 노래할 땐, 얼굴을 후드로 덮어 표정을 보일 수 없는 배우가 어떻게 그런 애절함을 뿜어낼 수 있는지 놀라게 된다. 비극의 종막, 조승우는 지하 궁전의 원숭이 오르골에서 마지막 ‘가면 무도회(Masquerade)’가 흘러나올 때의 눈물로 그만의 가장 서정적인 ‘유령’을 완성했다. 그의 유령은 공연을 거듭할수록 더 성숙해질 것이다.

조승우는 “두려웠고 도망가고 싶을 때도 많았다. 편견, 선입견과 싸우느라 지치기도 했지만 결국 절실한 마음으로 무대에 첫발을 딛었다”며 “그저 최선을 다하겠다는 약속은 무대에서 지킨 것 같다”고 했다.

‘유령’ 역에는 조승우 외에 김주택·전동석과 최재림(서울 공연)이, ‘크리스틴’ 역에는 손지수·송은혜가 출연한다. 서울 공연은 7월 중순부터 잠실 샤롯데씨어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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