쓸모 있는 사람 [삶과 문화]

2023. 4. 2. 2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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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래간만에 '동물원'이라는 밴드의 노래를 듣다가 '요즘은 하루가 다르게 새로운 무언가가 생겨 나오는 세상이라 가만히 있다가는 좀더 멍청해질 것 같아'라는 가사가 마음에 콕 들어와 박혔다.

어려서부터 귀에 못이 박히도록 '사회에 도움이 되는 사람', '어디서든 귀하게 쓰이는 사람'이 되라는 말을 듣고 자란 우리들의 입장에서 '쓸모 있는 사람'이 될 수 없다는 것은 근본적인 존재가치의 부정에 가깝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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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티이미지뱅크

오래간만에 '동물원'이라는 밴드의 노래를 듣다가 '요즘은 하루가 다르게 새로운 무언가가 생겨 나오는 세상이라 가만히 있다가는 좀더 멍청해질 것 같아'라는 가사가 마음에 콕 들어와 박혔다. 요즘 내가 느끼는 감정과 딱 맞아떨어지는 말들이다. 수십 년 전 인터넷이 처음 대중화됐을 때, 그리고 얼마 뒤 스마트폰이 일상으로 들어오기 시작했을 때도 이런 상전벽해와 같은 큰 변화가 있었다. 이번에 밀어닥친 태풍은 '인공지능'이다.

정말 '하루가 다르게 새로운 무언가'가 등장한다. 몇 달 전에는 무슨 질문에든 진짜 사람처럼 대답해준다는 AI가 등장하더니, 얼마 전에는 강의 중에 강사의 말을 화면에 자막으로 척척 띄워주는 소프트웨어가 등장하고, 이제는 명령만 내리면 알아서 프로그램도 짜주고 학생들의 보고서를 대신 써주는 일까지 가능해진다고 한다. 얼마 전에 어떤 공모전에 심사를 하러 갔는데 포스터 부문에서 학부생 수준을 훨씬 뛰어넘는 작품이 있었다. 조금 이상하다는 생각에 본인이 직접 그린 게 맞는지 확인해봤더니 인공지능 사이트에서 만들어 낸 포스터라고 한다. 복잡할 것도 없이 몇 개의 키워드나 요구사항들을 넣으면 즉석에서 그림을 만들어 준다고 한다.

과거 인터넷이나 스마트폰 열풍 때는 내가 정보를 얻고 활용하는 능력과 범위가 크게 확장될 수 있다는 점에 흥분과 기대가 뒤따랐지만 인공지능은 단순한 '도구'를 넘어서 아예 인간이 하는 일을, 내가 하는 일을 대체해버릴 수도 있겠다는 생각에 씁쓸한 기분이 든다. 이미 우리는 지난 3년 간의 코로나 기간을 통해 테니스 심판들이 카메라로 대체되고 가게의 점원들이 키오스크라는 자동주문장치에 밀려나는 것을 지켜봤다. 이제 그런 단순한 작업이 아닌 기억하고 생각하고 판단하는 고차원적인 업무들마저 사람을 대신하는 인공지능에게 자리를 내주게 될 거라는 불길한 예감이 든다.

미래학자들의 예측대로 가까운 시일 내에 인공지능이 인간의 능력을 넘어서는 '특이점'이 오게 된다면 무한에 가까운 기억능력과 엄청나게 빠른 연산능력, 흔들리지 않는 정확성을 갖춘 인공지능과 인간이 '쓸모'의 차원에서 경쟁한다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 될 것이다. 벌써부터 인공지능 시대에 사라질 직업들의 목록이 '살생부'처럼 여기저기서 언급되고 있다. 어려서부터 귀에 못이 박히도록 '사회에 도움이 되는 사람', '어디서든 귀하게 쓰이는 사람'이 되라는 말을 듣고 자란 우리들의 입장에서 '쓸모 있는 사람'이 될 수 없다는 것은 근본적인 존재가치의 부정에 가깝다. 우울한 일이 아닐 수 없다.

하지만 돌이켜 생각해보자. 우리는 왜 '쓸모 있는 사람'이 되어야 하는 것일까? 인간이 오로지 인간이라는 이유만으로 존중받아야 한다는 '인간의 존엄성'이 우리 사회를 이루는 근간이 아니었던가. 인간의 가치가 '유용성'에 기대어 판단되어온 지금까지의 생각이 오히려 문제가 있는 것은 아닐까? 수백 년 전 산업혁명으로 기계가 인간의 자리를 대체하던 시절에 기계를 파괴하여 인간의 자리를 지키자는 '러다이트 운동'이 벌어지기도 했지만, 긴 안목에서 보자면 결국 기계를 통한 생산성의 향상은 인간의 삶을 보다 풍요롭게 하고 여가를 확장시키는 밑거름으로 작용했다. 마찬가지로 인공지능 시대에 우리는 '쓸모'의 굴레를 내려놓고 인간 본연의 가치와 올바른 삶의 방향을 모색하는 기회를 얻을 수도 있지 않을까? 창밖에 만개한 벚꽃이 가슴을 설레게 한다. 이런 두근거림도 인간만의 것이 아닌가.

곽한영 부산대 일반사회교육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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