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 40시간 일하고, 나머지는 어머니 돌봐 “계속 쫓기는 삶”[시간 빈곤]

김향미·민서영 기자 2023. 4. 2. 21: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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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 가족 돌봄과 일 병행, 30세 ‘영케어러’의 시간

지난 3월23일 저녁 서울의 한 카페에서 가족돌봄청년 이레씨(30·가명)를 만났다. 시간 부족에 시달리는 돌봄자의 상황을 인터뷰하겠다면서, 그의 시간을 쓰는 게 마음에 걸렸다. 퇴근길에 짬을 낸 이레씨는 “영케어러(Young carer)의 상황을 알려야 하니까 기사로 써주면 고맙다”고 했다.

이레씨는 “고등학교 1학년이던 2009년 어머니가 낙상사고로 경추 손상을 입고 사지마비가 오면서 중증 지체장애인이 됐고 혼자서는 앉을 수도 없는, 24시간 돌봄이 필요한 상황이 됐다”고 했다. 어머니는 사고 직후 몇몇 재활병원에서 지내다가 이레씨가 대학교에 입학한 2012년부터 집에서 생활했다.

중증 장애인 어머니를 돌보면서 전일제 일을 병행하고 있는 이레씨가 지난 3월23일 서울의 한 카페에서 인터뷰 도중 ‘일과표’를 작성하고 있다. 김향미 기자
대학생 때부터 간병 “스펙 쌓을 시간 없었다”…최근 취업했지만 “일에 집중하기 어렵고 미래 계획 힘들어”
출근 땐 활동보조사가 돌봄 공백 메워 “보조사 못 올 땐 막막…노동시간이 경직된 일터라 내가 할 수 있는 건 없어”
일요일과 휴일은 온전히 돌봄의 시간 “정부의 노동시간 논의서 나는 배제…마음 놓고 맡길 돌봄 인력 절실해”

지난 10년간 이레씨는 간병과 학업, 간병과 일을 병행해왔다. 다른 가족 구성원은 어머니 돌봄을 맡을 상황이 되지 않았다. 이레씨에겐 자신과 활동보조사가 어머니의 간병돌봄을 어떻게 나눠 맡을 것인가 하는 ‘돌봄 시간표 짜기’가 늘 중요한 일이었다. 다행히 어머니는 기초생활보장제도 대상자라 이레씨는 본인의 생계만 책임지면 됐다. 하지만 돌봄 시간에 얽매여 있기 때문에 여러 어려움에 부딪혔다.

이레씨는 “대학에서 간호학을 전공했고 졸업하고 나서는 3교대 간호사 일은 하기 어려워서 파트타임으로 일했다”면서 “오히려 일보다는 학교에서 공부할 때 시간을 쓰기가 수월했다”고 했다. 그는 “저의 사정을 좀 봐주는 대학병원에서 계약직 연구간호사로 일하기도 했는데 그때 연구에 관심이 생겨 대학원에 가서 사회복지학 전공으로 석사를 마쳤다”고 했다. 대학 등록금은 장학재단에서 장학금을 받았지만 대학원 다니면서는 빚을 졌고, 생계를 유지해야 하니까 연구조교도 맡아 했다.

어머니는 현재 월 430시간의 장애인활동지원서비스(보건복지부 330시간, 서울시 100시간)를 받고 있다. 430시간을 다 채워 쓰는 건 아니다. 그 시간 범위 내에서 3명의 활동보조사가 이레씨가 외출하는 시간을 분담해 어머니를 돌본다. 돌봄 비용은 당국이 지원해준다. 이 지원으로 이레씨는 충분한 시간과 소득을 얻을 수 있을까.

이레씨는 3월부터 한 의료기관에서 연구직(비정규직)으로 일하고 있다. 근무시간은 오전 8시30분부터 오후 5시30분까지 하루 8시간, 주 40시간이다. 오전 6시에 일어나서 어머니 건강상태를 살핀 후 출근 준비를 하고 오전 7시에 집을 나선다. 오후 7시 집에 돌아온 후엔 계속 어머니 곁을 지킨다. 일요일에도 하루 종일 돌봄을 한다. 일주일 중 단 하루, 토요일 10시간30분만이 이레씨의 개인 시간이다. 이레씨는 “글 쓰는 것을 좋아해 일기도 쓰고 책도 읽고 친구도 가끔 만난다”고 했다. 주중에 밀린 빨래나 청소도 이 시간에 주로 한다.

이레씨는 올해 3월 취업했다. 소득은 월 200만원 초반대다. 그는 “급여가 많은 친구들 보면 야근도 하고 정말 열심히 일한다”며 “저는 고스펙을 쌓을 시간이 없었고, 지금도 일에 완전히 집중할 수 있는 상황은 아니다”라고 했다. “구체적으로 미래를 그리기는 어렵지만 내 자신의 삶도 살아야 하니까” 경력을 유지하려 분투하고 있다.

나한테 투자할 수 있는 시간, 그런 것들이 필요한 것 같아요. 여태까지는 정말 하루에 병원을 왔다 갔다 하면서 환자를 매일 데리고 병원에 왔다갔었거든요.

-53세 여성, 6년1개월 돌봄

취미인 하모니카를 집에선 못 불어요. 소리가 커서 불 수도 없고…그냥 갇혀있어요 새장 안에.

-58세 여성, 2년10개월 돌봄

나 지금 소원은 단 하루라도 혼자 한 번 있고 싶다 그랬어. 혼자 편하게 잠 좀 자봤으면 좋겠어 누워서.

-51세 여성, 3년7개월 돌봄



*자료 : 한국보건사회연구원, ‘산재환자 여성배우자의 돌봄경험과 서비스 욕구에 관한 질적 연구’(2019년)에서 발췌

한국여성정책연구원은 이미 9년 전 ‘노년기 가족돌봄 위기와 지원방안 연구’(2014년) 보고서에서 “가족돌봄자들의 다양화(예: 고령화, 경제활동과 돌봄활동을 병행 등)를 고려할 때 이들의 부양 부담을 효과적으로 감소시키며, 주 돌봄자의 건강관리를 지원할 수 있는 자기관리(self-care)의 개념을 강화시킬 필요가 있다”고 짚었다.

간병돌봄과 학업, 또는 일을 병행하는 것은 “계속 쫓기는 것 같은 삶”이라고 이레씨는 말했다. 그는 “누가 재촉하거나 안달복달하는 것도 아닌데 제 안에서 뭔가에 쫓기듯이 정신적으로나 신체적으로 긴장하고 있다”고 했다. 불안의 한 축은 언제 어머니의 돌봄 공백이 생길지 모른다는 것이다. 이레씨는 “활동보조사 선생님들도 갑자기 경조사가 생길 수 있고 하루아침에 일을 그만둘 수도 있다”며 “그럴 때 노동시간이 매우 경직된 일터에서 제가 할 수 있는 게 있을까 하는 걱정이 많다”고 했다. 활동보조사가 없는 시간은 이레씨가 사비로 간병인을 따로 고용해야 하는데, 비용도 비용이지만 사람 구하기가 쉽지 않다. 어머니의 상태를 잘 알아야만 돌봄이 제대로 이뤄질 수 있기 때문이다.

가족돌봄자 정책(시간·서비스·재정) 가운데 가족돌봄휴가·휴직제도가 있기는 하다. 남녀고용평등과 일·가정 양립 지원에 관한 법률에 따라 질병, 사고, 노령으로 인해 그 가족을 돌보기 위한 가족돌봄휴가(연간 최장 10일)와 휴직(연간 최장 90일)을 신청할 수 있다. 같은 사유로 1년 이내 근로시간 단축(주당 15~30시간)을 신청할 수도 있다. 일단 무급인 데다, 이런 제도들은 대체인력이 없을 땐 이용하기가 쉽지는 않다. 이레씨는 이전 직장에선 아주 긴급할 땐 연차를 사용했다.

이레씨는 “저한테는 정말 마음 놓고 맡길 수 있는 돌봄 인력이 제일 필요하다”고 했다. 그는 “저희 어머니는 중증 장애인이라 돌봄이 힘든 편인데 활동보조사 선생님들의 수당은 시간당 1만원에 불과하다. 어쩌면 희생정신으로 이렇게 해주시는 건가 싶어 고맙기도 하고, 내가 미안할 일이 아닌데도, 미안한 생각도 든다”며 “이분들의 처우를 개선해줘야 할 것 같다”고 말했다.

정부는 지난해 가족돌봄청년(영케어러) 실태조사를 하고 지원책을 만들겠다고 했다. 서울 서대문구 등 일부 지자체에서 돌봄 서비스와 교육비, 간병비 등을 지원하는 시범사업을 하고 있다. 이레씨의 순서가 언제쯤이 될지는 알 수 없다. 이레씨는 “간병돌봄이 사회적 책임이라고 말하기도 하고, 장애인활동지원서비스도 정부가 가족의 돌봄 부담을 완화해주겠다는 취지인데 전적으로는 되지 않는다”고 했다.

“그래서 제가 지금 돌봄을 하고 있는 거잖아요. 그런데 사회는 ‘너는 이제 청년이 됐으니까 나가서 일해라’라고 해요. 모순처럼 느껴졌어요. 주 60 몇 시간 노동을 말하기도 하고, 정부 정책들에서 저(일 병행 영케어러)의 상황이 고려되고 있는 것인가, 와닿지는 않아요.”

가족 간병돌봄을 전담한 이들도 시간 활용에 대한 욕구가 크다. 학술지 보건사회연구에 실린 ‘산재환자 여성배우자의 돌봄경험과 서비스 욕구에 관한 질적 연구’(2019년) 보고서에서 연구진은 척수 손상으로 인한 하반신 마비 환자를 돌보는 50대 여성 배우자 5명을 심층면접했다.

A씨(53)는 “(남편이) 자꾸 내가 없으면 불안해 한다. 그게 제일 힘들다”고 했다. B씨(51)는 “지금 소원은 단 하루라도 혼자 한 번 있는 것, 혼자 편하게 누워서 잠 좀 자봤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돌봄을 전담하는 이들은 개인 용무에 쓸 시간도 없다. 자신이 외출 시 혼자 있는 남편이 걱정돼 휴대폰을 사줬다는 C씨(56)는 “내가 나간 지 한 시간 좀 넘어 전화하니까 안 받길래 집으로 와서 ‘왜 안 받았냐’ 그랬더니 휴대폰을 쥘 수가 없어서 자꾸 떨어트려가지고 못 받았다고 했다”며 “밖에서 볼 일도 다 못 보고 쫓아온 적도 몇번 된다”고 했다.

연구진은 “돌봄자들은 대부분 환자의 돌봄에 묶여 24시간 간병체제를 유지하며, 본인의 의지에 따라 자유롭게 쉬거나 잠을 잘 수도 없고 자신만의 시간을 갖기도 어려웠다”며 “주 돌봄자에게 휴식이나 수면을 보장할 수 있도록 휴식·휴가 지원 서비스가 마련될 필요가 있다”고 제언했다.

김향미·민서영 기자 sokhm@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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