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일 관계를 어떻게 발전시킬 것인가

한겨레 2023. 4. 2. 18: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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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의 창]

일본을 방문한 윤석열 대통령이 지난 3월16일 일본 도쿄 총리 관저에서 기시다 후미오 일본 총리와 만나 악수를 하고 있다. 총리 관저 누리집 갈무리

[세계의 창] 야마구치 지로 | 일본 호세이대 법학과 교수

윤석열 대통령이 일본을 방문해 지난달 16일 기시다 후미오 총리와 정상회담에서 이른바 ‘징용공 문제’에 대해 정치적으로 매듭을 지은 것을 두고 일본에선 환영하는 분위기다. 일본 정부·자민당·보수언론은 징용공 문제가 1965년 한-일 청구권협정에서 이미 해결된 만큼, 한국 정부가 배상을 떠맡는 것은 당연하다는 입장이다.

나는 그런 견해에 반대한다. 1965년이면 박정희 정권 시절이고, 조약은 한국 국민들의 자유로운 논의 속에서 이뤄진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한국이 민주화되면서 비로소 징용공 피해자들이 목소리를 내기 시작했다. 일본이 일으킨 전쟁에 휘말린 피해자에게 배상하는 것은 일본인의 법적 의무는 아니더라도, 도덕적 의무라고 생각한다. 이 문제에 대해선 독일과 같이 일본 정부와 일본 기업이 기금을 출연해 피해자에게 배상하는 제도를 만들 수밖에 없다고 생각한다. 이번에 한국 정부가 만든 재단에 일본도 기부를 해야 한다. 앞으로도 일본 내에서 이런 목소리를 계속 내고 싶다.

이번 과정에서 느꼈던 가장 큰 의문은 윤 대통령이 일본 쪽의 법적 배상 의무를 강제하지 않은 것은 다행이지만, 기시다 총리가 한국 쪽의 ‘성의 있는 호응’ 요구에 응하지 않았다는 점이다. 기시다 총리는 한-일 정상회담 직후 공동 기자회견에서 “일본 정부는 1998년 10월에 발표한 일-한 공동선언을 포함해 역사 인식에 대해 역대 내각의 입장을 전체적으로 계승하고 있음을 확인했다”고 말했다. 역사 인식과 관련해 역대 내각의 입장이라는 것은 1995년 ‘무라야마 담화’에도 표현돼 있지만 식민지 지배에 대한 사죄와 반성이다. 계승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다만 기시다 총리는 거기에 덧붙여야 할 자기 생각이 없었던 것인가.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은 제2차 세계대전 당시 미국 정부가 일본계 미국인을 강제 수용했던 역사에 대해 81년이 흐른 지난 2월 성명을 내어 “12만명의 일본계 미국인이 부당하게 수용돼 가족이 뿔뿔이 흩어졌고 그들은 집과 직업, 지역사회, 삶의 방식을 버려야 했다”고 미국 정부를 대표해 다시 한번 사과했다. 그리고 (일본어 표현을) 영어 알파벳으로 ‘니도토 나이 요니’(Nidoto Nai Yoni, 다시는 이런 일이 없도록)라고 맹세했다. 바이든 대통령의 사죄는 일본인에게도 감명을 줬다.

기시다 총리는 기회가 있을 때마다 국제사회에서 자유, 민주주의, 법치주의의 주체가 될 것이라고 강조해왔다. 일본이 법치를 존중하려면 자국이 과거에 저지른 인권침해에 대해 진심으로 사죄해야 한다. 한-일 청구권협정을 체결하면서 피해자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지 않았던 태도는 인권침해를 정당화하고 법의 정신을 무시한 것을 의미한다. 기시다 총리가 국제사회에서 법치주의를 지키는 수호자가 되려면 러시아의 전쟁을 비난하는 것뿐만 아니라, 자국의 과거 인권침해와도 마주해야 한다.

올해는 간토대지진이 발생한 지 100년이 되는 해이다. 지진 당시 발생한 조선인 학살 사건을 둘러싸고 지금의 일본이 과거의 죄를 직시할 마음을 갖고 있는지 다시 묻게 된다. 지진이 일어난 9월1일엔 전체 지진 희생자를 추모할 뿐만 아니라 학살된 조선인을 위로하는 행사가 열렸고, 역대 도쿄도지사들은 (일본에서 대표적인 극우 보수 정치인으로 불리는) 고 이시하라 신타로를 비롯해 위령의 메시지를 보내왔다. 하지만 고이케 유리코 현 지사는 취임 이후 추도문을 내지 않고 있다. 지난 2월 도의회에서 관련 질문을 받고 “무엇이 명백한 사실이었는지는 역사가가 밝혀야 할 일”이라며 학살 여부를 언급하지 않겠다는 기존 입장을 되풀이했다.

학살은 명백한 사실이다. 고이케 지사의 발언은 학살의 존재를 부정하는 역사수정주의에 힘을 실어주는 지극히 정치적인 메시지다. 간토대지진 100년에 즈음해 다시 한번 일본은 과거를 직시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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