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경애 칼럼] KB 알뜰폰, `착한 메기` 되려면

2023. 4. 2. 18: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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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경애 ICT과학부장

KB국민은행의 알뜰폰 'KB리브엠'이 통신시장의 메기가 될 수 있을까. 금융당국은 이르면 이번주 중 KB리브엠의 정식 허가 여부를 결정한다. '통신 3사 구조' 흔들기에 골몰하는 정부 입장에선 KB 같은 대형 사업자의 등장이 반가울 수 있다. 알뜰폰 시장이 커졌지만 규모 있는 사업자가 등장하지 못했다. 수십개 알뜰폰 기업의 이동통신 시장 점유율이 총 17%에 육박했지만 산업은 여전히 영세하다.

거대 자본과 전국 사업장을 가진 KB의 등장은 시장에 강한 충격파를 줄 게 틀림없다. 문제는 통신사보다 중소 알뜰폰사와 통신유통 소상공인의 타격이 훨씬 클 것이란 점이다. KB는 통신사에서 사 오는 원가보다 더 싸게 통신상품을 팔아서 덩치를 키워왔다. 혁신성보단 낮은 가격이 무기였다. 소비자는 같은 상품을 더 싸게 사니 좋지만 중소기업과 소상공인은 시장을 빼앗겼다. 금융 '고래'가 중소기업을 키우자고 만든 알뜰폰 제도를 이용해 통신사가 투자한 인프라에 무임승차해 만든 결과다.

KB국민은행의 기업가치는 20조에 육박한다. 자산과 자본총계는 각각 70조, 약 50조다. 통신 1위 SKT는 10조 정도로, KB의 절반이다. KT는 7조7000억, LG유플러스는 4조7000억이다. 통신 3사 기업가치를 다 합친 게 KB와 비슷하다. 정부는 은행도 통신과 마찬가지로 독과점으로 지목하고 경쟁 활성화를 모색하고 있다.

그런 KB가 금융에서 번 돈과 전국 사업장, 브랜드를 가지고 통신시장에서 평범한 알뜰폰 사업자가 되겠다는 것은 어느 면을 봐도 문제가 있다. 또 하나의 공룡이 아닌 '착한 메기'로 만들 묘안을 찾아야 한다. KB가 가진 것을 KB만이 아니라 전체 통신산업을 위해 쓰면 된다.

현재 알뜰폰 업계는 별다른 투자 없이 통신사에서 도매로 받은 저렴한 요금제를 되팔아서 돈을 번다. 상품을 자체 설계해 파는 게 불가능하다. 상품설계·운용에 필요한 시스템과 인프라를 갖출 여력이 없다.

통신사와 알뜰폰사 사이에서 일종의 도매 서비스를 하는 규모 있는 기업이 등장하면 이 문제를 풀 수 있다. KB가 그 역할을 하면 문제 해결사가 될 수 있다. KB가 일정 규모의 네트워크 인프라와 상품설계·운용시스템을 갖추고 통신사와 계약을 맺어 대량의 망을 빌리거나 데이터를 사오는 것이다. 알뜰폰사는 이를 바탕으로 독자 요금제를 설계하고 팔 수 있다. 알뜰폰의 약점인 고객서비스 문제도 전국 KB 지점을 활용해 개선할 수 있다. 이를 통해 차별화된 알뜰폰 기업이 등장할 수 있다. KB도 얻는 게 있다. 알뜰폰사와 상품운영·설계, 고객서비스에 협력해 이용자 데이터를 확보할 수 있다. 자체 가입자뿐 아니라 타 알뜰폰 가입자가 지점을 드나듦으로써 금융고객 증가 효과도 얻을 수 있다.

KT는 인터넷전문은행 케이뱅크를 출범시키면서 사업자격을 얻기 위해 2500억원의 초기 자본금을 투입했다. KB도 열매만 따려 해선 안 된다. 통신 3사가 백기를 든 5G 28㎓ 초고주파대역 투자도 거대 금융사가 힘을 보탤 수 있다. 현재 신한 등 다른 은행도 알뜰폰 진출을 검토하고 있다.

5G 초고주파 대역 투자는 당장 돈을 벌기보다 미래를 위한 투자에 가깝다. 이 대역을 통신사에 너무 비싸게 팔고 과도한 인프라 설치를 요구하는 것은 시장논리에 맞지 않다. 주파수 대가를 낮춰주고 지하철, 경기장, 일부 도심 인구밀집지 등에 테스트베드 형태로 인프라를 설치하도록 완화해줄 필요가 있다.

5G 역시 이음5G 기업들이 알뜰폰사와 비슷한 역할을 하고 있다. 이들은 특정 건물이나 서비스에 자체 5G망을 구축해 쓰고 있다. 이 생태계를 키우는 게 리얼 5G 특성과 맞다. 여기에 KB 같은 거대 알뜰폰사에 '알뜰폰+28㎓ 5G' 하이브리드 사업권을 줘서 일정 규모의 28㎓ 5G 인프라를 구축하고, 이를 특화해 알뜰폰 가입자를 늘리도록 하는 것도 방법이다. '2년만기 적금+알뜰폰 결합상품', '알뜰폰+28㎓ 서비스' 등 매력적인 상품이 등장할 수 있다.

모두가 이기는 게임의 법칙은 불가능하지 않다. 이를 통해 정부는 통신시장 경쟁 활성화와 28㎓ 5G 확산이란 숙제를 풀 수 있다. 알뜰폰 기업은 경쟁력을 키우고 통신 3사는 5G 인프라 구축부담을 나눌 수 있다. 금융사는 새 먹거리를 얻고 가입자는 다양한 상품을 더 싸고 편리하게 쓸 수 있다. 미운 오리를 '착한 메기'로 만드는 방법이다. ICT과학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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