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생아 10%가 난임 시술로 태어나…’난임 광폭 지원’ 절실 [친절한 의학기자]

권대익 입력 2023. 4. 2. 18:15 수정 2023. 4. 3. 08: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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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티이미지뱅크

얼마 전 제주도에 사는 A(43)씨는 자연 임신이 어려워 지난 2015년부터 서울을 오가며 모두 26차례에 걸친 시험관 시술 끝에 지난 2월 아기를 낳았다. A씨는 오랜 난임과 반복되는 시험관 시술로 고통스러웠지만 그래도 고대하던 엄마가 되었기에 7년 만에 ‘해피 엔딩’이었다.

A씨의 아기처럼 난임 시술로 태어난 아기가 지난해 전체 출생아 26만500명 중 2만1,219명(8.1%ㆍ정부 지원을 받은 경우)에 달한다. 소득이 많아 정부의 지원 없이 난임 시술로 태어난 아기는 전체 아기의 10%가량으로 추정된다.

그런데 문제는 A씨와 달리 아이를 낳고 싶어도 낳지 못해 애가 타는 부부가 매년 10%씩 늘어난다는 점이다. 난임 진단을 받은 사람은 2017년 30만2,000명에서 2021년 35만6,000명으로 늘었고, 지난해 상반기에만 21만9,300명이나 된다.

난임은 여성의 경우 배란이 잘 되지 않거나 난관이 막히거나 자궁강 내 이상 등으로 인해 되기 쉽다. 남성의 경우 정자 생성에 문제 있거나 폐쇄성 무정자증이거나 정자 운동성이 심하게 떨어졌거나 정자 형태가 좋지 않거나 선천성 잠복 고환 등이 원인으로 꼽힌다. 특히 늦은 결혼이 큰 원인으로 추정된다.

이 때문에 많은 부부가 시험관 등 난임 시술 등을 시행한다. 시험관 시술의 경우 첫 회 성공률은 15~30%이고 3~4회 누적 성공률은 25~60% 정도다. A씨처럼 3회 이상 시술해 성공한 사례도 적지 않다.

그런데 정부는 지난 2006년부터 15년간 저출산 문제를 해소하기 위해 280조 원을 쏟아부었지만 ‘출생아 24만9,000명, 합계 출산율 0.78명’으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38개 회원국 꼴찌라는 처참한 성적을 기록했다.

뒤늦게 문제 해결에 팔을 걷어붙였다. 윤석열 대통령은 지난달 28일 7년 만에 저출산고령사회위원회 회의를 주재했고, 다양한 저출산 해소 대책에 내놓았다. 윤 대통령은 그동안 저출산 해소 대책이 ‘백화점 나열식 정책’으로 정말 필요한 곳에 예산을 투입하지 못했다는 지적에 따라 ‘선택과 집중’하겠다는 뜻을 밝혔다. 참으로 다행이다.

저출산 해소 대책은 하나의 대책만으론 해결할 수 있는 얽힌 실타래다. 이에 정부다 다각적인 대책을 내놓았다. 난임과 관련해서도 △임신 준비 부부에게 무료 검사(부인과 초음파검사ㆍ난소 기능 검사ㆍ정액 검사) 시행 △여성에게는 10만 원, 남성은 5만 원 지원 △난임 시술비 지원 기준을 부부 합산 연 소득 7,000만 원에서 단계적 상향 △난임 휴가를 현행 연 3일에서 6일로 확대 △냉동 난자를 임신 위해 사용 시 비용 지원 등이다.

하지만 이 정도로는 미흡하다는 지적이다. 우선 난임 관련 예산을 획기적으로 투입해야 한다고 전문가들은 꼬집었다. 2021년 태어난 신생아 26만 명 가운데 10% 정도가 난임 시술로 태어났다. 하지만 정부의 저출산 지원 예산 46조7,000억 원 가운데 난임 예산은 0.054%(252억4,900만 원)에 불과했다. 관련 예산을 획기적으로 늘리지 않는다면 ‘언 발에 오줌 누기’에 그치게 될 것이라는 비판이다.

난임 부부가 매년 10%씩 늘어나지만 정부가 이번에 내놓은 난임 시술비 지원이 부부 합산 연 소득 7,000만 원에서 단계적으로 올리겠다고 ‘순한’ 대책에 불과했다.

현재 난임 시술 시 건강보험 적용 횟수가 제한(신선 9회, 동결 7회, 인공 5회)돼 있는데 이를 무제한적으로 확대해야 된다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현재 임신을 위한 난자ㆍ정자ㆍ배아 등의 동결은 모두 비급여에 해당된다. 미혼 여성의 가임력 보존을 위한 시술도 비급여다. 이 때문에 암 같은 질환으로 불가피하게 가임력 보존을 위해 난자 동결한다면 이를 지원하는 게 절실하다.

난임 부부는 난임 시술을 평균 7.02회(2019년 기준) 시행하고, 1회 평균 병원비는 160만 원 정도 든다. 연 소득 7,000만 원 기준을 넘긴 ‘중간층’ 부부가 정부로부터 지원받지 못하면 병원비만 1,100만 원 정도 들어야 한다. 이 같은 비용 탓에 시술을 중도에 포기하는 사례도 적지 않다. 맞벌이 부부 가운데 상당수가 아무런 혜택을 받지 못하기에 정부 지원을 받으면서 난임 시술을 하려고 휴직을 택하기도 한다.

난임 시술 병원도 272곳에 불과하다. 게다가 130곳이 서울ㆍ경기ㆍ인천 등 수도권에 몰려 있고, 나머지도 부산ㆍ대구ㆍ광주ㆍ대전ㆍ울산 등 대도시에 한정돼 있다. 이러다 보니 난임 병원이 없거나 적은 지역에 거주하는 난임 부부는 시술을 받기 위해 앞의 사례자 A씨처럼 원정에 나설 수밖에 없는 실정이다.

정부와 지방자치단체가 출산장려금ㆍ아동수당 등의 이름으로 현금 살포식 지원보다 난임 시술처럼 ‘아이를 낳으려는 의지가 있는 부부’에게 집중 지원해야 효과가 있다. 'OECD 출산율 꼴찌국'이라는 오명을 빨리 벗어나기 위해서라도 대전환이 필요하다.

난임 시술 지원이 저출산 해소 대책에 그나마 효과적이라는 사실은 입증됐다. 난임 시술비 지원 횟수나 비용 지원을 ‘광폭적’으로 확대해 난임 부부의 출산 의지를 격려해야 한다. ‘비상 시에는 비상한 대책이 필요하다’는 말이 그르지 않다.

권대익 의학전문기자 dkwon@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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