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디폴트 겪은 그리스도 체질 개선하는데···韓 0.25→2.2 역주행

세종=이준형 기자 2023. 4. 2. 17: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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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지 '재정지속가능성' 보고서 입수
韓 중장기 보건·연금 지출 증가속
저출산→인구감소 재정여력 급감
尹정부 건전재정 기조로 전환에도
세수부족에 '빚내서 빚 막기' 우려
재정준칙 법제화 당장 시급하지만
野 비협조로 국회 못 넘고 공회전
추경호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이 지난달 31일 세종 한국개발연구원(KDI)에서 열린 ‘제2차 기재부·KDI 정책 세미나’에 참석해 발언하고 있다. 연합뉴스
[서울경제]

기획재정부 산하 한국재정정보원이 진행한 ‘재정 지속 가능성 복합 지표 연구’의 핵심은 한국의 중·장기 재정 건전성 전망이다. 특히 한국의 장기 재정 건전성 전망을 보여주는 S2는 2010년대 들어 재정위기를 겪었던 유럽 PIGS(포르투갈·이탈리아·그리스·스페인)와 같거나 나빴다. 현 기조대로라면 한국의 재정 건전성이 유럽에서 경제 펀더멘털이 가장 취약한 국가로 꼽히는 PIGS보다 악화될 수 있다는 의미다.

구체적으로 보면 한국의 나라 살림은 갈수록 나빠질 것으로 분석됐다. 단기 지표인 S0과 장기 지표인 S2를 비교하면 이 같은 추이를 쉽게 확인할 수 있다. S0과 S2는 각각 1년, 50년 후 재정 건전성을 보여주는 지표다. 한국의 S0은 0.257로 임계치(0.46)보다 낮아 안정권으로 분류됐다. 하지만 S2는 2.2를 기록하며 ‘중위험’으로 분류됐다. 10년 후를 전망하는 중기 지표인 S1 역시 중위험군인 1.0으로 추산됐다. 재정정보원은 보고서를 통해 “한국의 재정 지속 가능성에 대한 우려가 커지고 있는 상황”이라며 “중·장기적으로 보건·연금 등 재정지출 수요가 증가하고 있지만 저출산으로 인한 급격한 인구 감소로 재정 여력이 줄어들 것으로 예상되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한국과 가장 대조적 흐름을 보인 곳은 2010년대 들어 채무불이행(디폴트) 위기를 겪은 그리스다. 그리스의 S0은 0.48로 유럽연합(EU) 국가 중 단기 재정 건전성이 가장 나빴다. 하지만 S2는 -2.5를 기록하며 저위험군으로 분류됐다. S0은 물론 S1 역시 고위험군인 6.8로 추산됐다는 점을 고려하면 재정 건전성이 중기에서 장기로 넘어가는 과정에서 대폭 개선된 셈이다. 이탈리아도 S1은 고위험군인 10.3으로 상당히 높은 남유럽 수치를 기록했지만 S2는 2.1로 한국(2.2)보다 낮았다. 다른 PIGS 국가인 스페인·포르투갈도 S1과 S2가 각각 6.2(고위험)에서 2.2(저위험), 6.7(고위험)에서 0.0(저위험)으로 개선됐다.

문제는 이런 전망조차 비교적 낙관적인 시나리오에 기대고 있다는 점이다. 재정정보원은 인구 및 경제 변수를 기본 가정에 놓고 이번 연구를 진행했다. 긍정도 부정도 아닌 가정 하에 산출된 경제성장률과 인구 시나리오 등에 기반해 중·장기 재무 건전성을 전망한 것이다. 실제 재정정보원이 활용한 2040~2050년 평균 경제성장률 전망치는 0.8%다. 하지만 한국개발연구원(KDI)은 최근 생산성 개선이 부진하면 2050년 우리 성장률이 0%에 그칠 것으로 봤다.

나라 살림은 이미 악화 일로다. 정부가 경기 부양을 위해 코로나19가 확산한 2020년부터 지난해까지 재정 투입을 꾸준히 늘려온 탓이다. 이에 국가채무는 2019년 732조 2000억 원에서 지난해 1068조 8000억 원으로 최근 3년 새 350조 원 가까이 급증했다. 같은 기간 국내총생산(GDP) 대비 국가채무비율은 37.6%에서 49.7%로 뛰었다. 윤석열 정부가 지난 정부의 확장 재정 기조를 건전 재정 기조로 전환했지만 GDP 대비 국가채무비율은 2024년 50%를 돌파할 것으로 전망된다. 당장 올해 세수 여건도 좋지 않다. 올 1~2월 국세 수입은 54조 2000억 원으로 1년 전보다 15조 7000억 원이 덜 걷혔다.

만약 세수 부족 상황이 이어지면 국채 발행 등을 통해 추가로 빚을 끌어와야 한다. 현 정부 건전 재정 기조 하에 추산된 관리재정수지 목표치 등을 지키지 못할 가능성이 있다는 뜻이다. 지난해 5.1%까지 치솟은 GDP 대비 관리재정수지 적자 비율을 올해 2.6%까지 낮추는 게 정부 목표다.

상황이 이런데도 재정준칙 법제화는 제자리걸음이다. 재정준칙은 실질적 나라 살림을 보여주는 관리재정수지 적자를 GDP 대비 3% 이내로 통제하는 규범이다. GDP 대비 국가채무비율이 60%를 넘으면 이 비율을 2% 이내로 보다 엄격히 관리한다. 유럽연합 집행위원회(EC)도 국가채무비율 임계점을 60%로 잡고 있다. 정부는 지난해 하반기부터 재정준칙 도입을 골자로 한 국가재정법 개정을 추진했지만 야당의 비협조로 국회 문턱을 넘지 못하고 있다.

재정준칙이 없으면 국가채무비율이 60%를 넘어서는 것은 시간 문제다. 심지어 경제협력개발기구(OECD)는 재정준칙 미도입 시 한국 국가채무비율이 2060년 150%에 달할 것으로 내다봤다. 최악의 경우 국가채무비율이 2070년 200%를 넘어설 수 있다는 국가예산정책처의 경고도 있다.

정부 공인 재정 건전성 지표가 필요하다는 의견도 제기된다. 재정정보원은 “재정 당국이 단기·중기·장기 관점에서 재정 위험 분석 결과를 모니터링하기 위해 2년 주기로 ‘재정 위험 관리 보고서’를 작성하는 것도 고려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세종=이준형 기자 gilson@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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