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국이기주의 전세계 급속 확산 … 자원 무기화 대비해야"

한예경 기자(yeaky@mk.co.kr) 2023. 4. 2. 17:36
음성재생 설정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경제안보 최일선' 재외공관장 4인에게 듣는 전략

◆ 매경 특별좌담 ◆

지난달 28일 서울 종로구 도렴동 외교부 청사에서 박철주 주남아프리카공화국 대사·이상덕 주인도네시아 대사·윤성덕 주제네바 대사·임훈민 주폴란드 대사(왼쪽부터) 등 4개국 대사가 한자리에 모여 의견을 나누고 있다. 김호영 기자

지정학적 갈등과 기술·전략 경쟁이 격화되는 새로운 불확실성 속에서 지난달 말 전 세계 166개국에 나가 있는 우리나라의 대사·총영사들이 4년 만에 처음으로 서울에 모여앉아 '재외공관장 회의'를 개최했다. 매일경제는 지난달 28일 경제안보 외교의 최전선에서 뛰고 있는 주제네바·인도네시아·폴란드·남아프리카공화국 대사들과 특별좌담회를 하고 우리 경제 외교의 생존 전략을 들어봤다. 코로나19 대유행과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의 여파가 여전한 가운데 각국 대사들은 "전 세계 어디를 가든 자국 우선주의가 심화되는 형국"이라는 데 의견을 같이 했다. 이들 4개국 대사는 "자원 무기화가 강화되고 글로벌 공급망이 재편되는 시기에 우리 기업들이 불이익을 받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 정부의 외교적 노력이 더욱 강화돼야 한다"고 입을 모았다.

윤성덕 주제네바 대사

세계무역기구(WTO)가 위치한 스위스 제네바에서 유럽 내 통상 이슈를 담당하고 있는 윤성덕 주제네바 대사는 WTO에서도 미·중 간에 세 대결 양상이 상당하다며 당분간 통상 질서 회복은 쉽지 않을 것이라는 현지 분위기를 전했다. 윤 대사는 "미국의 불만으로 WTO 상소 기능이 마비됨에 따라 WTO 핵심 기능 중 하나인 분쟁해결제도의 미래가 불안정한 상황이 상당 기간 지속될 전망"이라며 "WTO가 이른 시일 내에 종전과 같은 위상을 회복할 것으로 보는 전문가도 많지 않다"고 밝혔다. 최근 미국이 232조 철강 관세, 홍콩산·중국산 표기 등 미·중 간 WTO 분쟁에서 잇달아 패소하며 큰 타격을 받기도 했다.

윤 대사는 환경과 관련한 통상 현안에 특히 관심을 둬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최근 유럽에서 가장 화제가 되고 있는 게 유럽연합(EU)이 추진 중인 핵심원자재법(CRMA)인데, 미국의 인플레이션 감축법(IRA)과 마찬가지로 세계 각국이 환경을 위해 통상이 기여할 수 있는 방안이 무엇인지 찾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는 증거"라며 "하물며 인권과 관련한 다자회의에 참석해도 환경문제가 올라올 정도로 환경이 가장 뜨거운 감자"라고 지적했다. 유럽에서도 CRMA와 탄소중립산업법 등을 통해 핵심 광물에 대한 중국 의존도를 낮추고 친환경 산업 투자 유치에 총력을 기울이고 있는 만큼 우리도 대비가 필요하다는 얘기다.

윤 대사는 최근 미국 실리콘밸리은행(SVB) 붕괴와 함께 스위스의 세계적 투자은행(IB) 크레디트스위스가 재무건전성 문제로 전격 인수·합병(M&A)되면서 금융위기에 대한 불안이 가중되고 있지만 그 가능성은 크지 않다고 봤다. 그는 "스위스 정부와 유럽중앙은행(ECB) 등이 신속히 대응해 금융위기로까지 발전할 가능성은 낮다"며 "하지만 당분간은 세계 금융시장에 불확실성이 큰 상태이니 시장 상황을 예의 주시하고 모니터링을 강화함으로써 낮은 가능성에도 조심스럽게 대응해나갈 필요가 있다"고 조언했다.

임훈민 주폴란드 대사

지난해 2월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이후 한국과 급속도로 경제안보외교를 강화한 나라가 폴란드다. 우크라이나와 국경을 접하고 있는 폴란드는 최근 국방예산을 국내총생산(GDP)의 4%까지 늘리고 우리나라에서 대규모 무기 수입을 결정한 데 이어 에너지 안보 위기가 고조되며 한국형 원전 도입을 위한 업무협약(MOU)까지 체결했다.

임훈민 주폴란드 대사는 "안타깝게도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공격은 오늘도 진행 중이며 장기화될 것이라는 전망"이라며 "하지만 전후 신속한 복구를 위해서는 우리 기업도 지금부터 재건 사업에 관심을 갖고 착수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미 많은 서구 기업이 재건 사업에 참여하기 위해 기회를 모색 중이라는 얘기다.

임 대사는 "폴란드는 지난해부터 고위급 회담 등을 통해 우리 측에 여러 차례 우크라이나 재건 사업에 대한 협력을 제안해왔다"며 "우리 기업이 우크라이나 재건 사업에 참여하는 방식은 국제기구를 통한 참여, 우크라이나 정부 혹은 지방자치단체 입찰 사업에의 직접 참여 등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폴란드 기업과 파트너십을 통한 참여가 비용과 리스크를 줄이고 양국 기업의 강점을 활용하는 방안이 될 수 있을 것"이라고 조언했다. 현재 폴란드 정부는 우크라이나 재건 사업 규모를 6000억~7000억유로(약 850조~1000조원)로 예상하고 있으며 사업 참여를 희망하는 1800개 폴란드 기업을 정부 시스템에 등록시켜 무역보험을 개설해놓은 상태다.

임 대사는 특히 "현재 300여 개 한국 대·중소기업이 폴란드에 진출해 있는데, 폴란드 진출을 고려하는 기업이라면 정부가 제공하는 각종 지원 제도뿐만 아니라 지역별 고용 및 임금 동향을 상세히 알아봐야 한다"고 조언했다. 폴란드에는 우크라이나·벨라루스 등 주변국 출신 근로자가 많았는데 우크라이나 전쟁으로 우크라이나 남성 인력이 폴란드 산업 현장을 떠나 전장으로 투입되면서 인력난이 심화됐다는 것이다. 이 때문에 우리 기업은 동남·서남아시아 국가에서 인력을 도입해 생산 현장을 운영하고 있다. 임 대사는 "특히 폴란드는 진출 초창기만 해도 상대적으로 저임금 국가라는 매력이 있었지만 지금은 아니다"며 "폴란드도 임금이 높아진 상태이므로 지역별 임금 수준과 인센티브 등을 세밀히 분석해보고 투자 진출을 결정해야 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이상덕 주인도네시아 대사

아세안(ASEAN·동남아시아국가연합)의 맹주 인도네시아는 최근 니켈 등 천연자원 무기화에 앞장서고 있다. 이 때문에 자동차·석유화학·철강·배터리 등 다양한 분야에 진출한 우리 기업도 대응책 마련을 서두르고 있다. 이상덕 주인도네시아 대사는 "전 세계적인 보호주의 정책과 자국 우선주의에 기반한 세계 공급망 경쟁 상황에서 인도네시아도 예외는 아니다"며 "이런 정책 기조는 다음 정부에서도 지속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조코 위도도 인도네시아 대통령은 2020년 니켈 원광 수출 금지 정책을 펼친 덕분에 인도네시아가 배터리·전기차 등 관련 산업을 발전시킬 수 있었다고 보고 올해부터는 보크사이트·구리 등도 수출 금지를 하겠다고 발표한 바 있다. 지난해 12월 WTO에서 협정 위반이라는 판결을 받았음에도 수출 금지 조치를 다른 광물 자원으로까지 확대하겠다는 의지가 강한 것이다. 내년 2월 대선 이후 정권이 바뀌더라도 이 기조는 변하지 않을 것이라는 게 현지 분위기다.

이 대사는 "이러한 자원민족주의 심화 움직임에 우리 기업이 대응하기 위해서는 인도네시아 내 원광 채굴 등 업스트림 산업에 투자를 늘려 수출 금지에 따른 공급 제약 리스크를 줄일 필요가 있다"고 밝혔다. 이 대사는 "동시에 인도네시아 정부가 다운스트림 분야 투자를 장려하고 인센티브도 확대하고 있으므로 광물과 자원 분야 다운스트림 분야 투자도 늘려나갈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인도네시아 정부와 핵심 광물 협력을 강화하는 것은 물론이고 기업 차원에서도 업스트림과 다운스트림에 골고루 투자해야 한다는 조언이다.

올해 인도네시아 정부는 수도를 자카르타에서 보르네오섬 동부 칼리만탄주(州)로 옮기기 위한 신수도 이전 사업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현지에서 우리 기업의 건설 수주를 돕고 있는 이 대사는 "지금 가보면 허허벌판이지만 내년 8월 독립기념일 행사를 신수도에서 개최하겠다고 발표하면서 인도네시아 정부도 더욱 적극적으로 나서고 있다"며 "사업이 초장기임을 감안할 때 신수도 사업에 참여하기를 원하는 기업들은 타당성 조사를 철저하게 선행해야 할 것"이라고 조언했다. 인도네시아 정부가 1단계 사업으로 내년까지 용지 조성 및 도로 등 인프라스트럭처를 구축한 이후 2단계 개발계획 중 배후단지 개발 등 각종 인프라 사업에 한국 기업도 참여가 가능한데 인도네시아 정부가 재정 여건을 감안해 전체 사업의 약 80%를 민관협력투자사업(PPP)으로 추진한다는 방침이기 때문이다.

박철주 주남아공 대사

최근 하루에도 최장 8~10시간씩 정전이 지속되는 남아프리카공화국에서 온 박철주 주남아공 대사는 "순환 정전이 장기화될 수 있다"며 "남아공 진출을 고려 중인 기업이라면 지역에 따라 다른 전력 여건을 반드시 염두에 두어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남아공은 사하라 이남 아프리카 지역 총 GDP의 약 21.8%를 차지하는 경제 선도국으로 우리 기업의 아프리카 진출 교두보로 알려져 있다. 현재 아프리카에서 한국인이 가장 많이 진출해 있는 곳도 남아공이다. 하지만 최근 남아공에서는 전력난이 심각해져 돌아가면서 전기가 끊기는 극단적인 상황이다.

박 대사는 "병원·군부대 등 필수 시설에는 전력이 제대로 공급되고 있지만 가정에서는 순환 정전 문제가 심각하다"며 "공업용 전력은 그래도 우선순위가 있어 가동 중단까지는 아니지만 현지에 진출한 우리 기업이 일정 정도 영향을 받고 있는 실정"이라고 밝혔다. 그는 특히 "케이프타운 같은 경우에는 원전이 있어 전력난이 심각하지 않지만 전력 수요가 높은데도 화력발전소로 버티고 있는 지역은 전력난이 장기화될 수밖에 없다"며 "2021년 더반 폭동 등과 같은 불안한 치안 상황이나 최근 외국 기업에 대한 비자 발급 지연 등도 위험요소로 감안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박 대사는 또 "남아공은 특정 광물의 수출을 제한하거나 금지하는 등의 정책적 자원 무기화는 하고 있지 않지만 이미 2000년 초반 모든 광물자원을 국유화했다"며 "남아공 경제에서 광업이 차지하는 높은 비중을 고려할 때 향후 광물 자원에 대한 국가 통제는 지속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한예경 기자]

Copyright © 매일경제 & mk.co.kr. 무단 전재, 재배포 및 AI학습 이용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